증인 없는 심판
민비(명상황후)의 사진에 시비가 일어난 것은 민비를 직접 만난 사람들이 세상을 뜬 다음의 일이다. 민비 생존 당시에 살아 있던 민비의 조카는 민비의 사진이 맞다고 했지만 노상궁은 민비가 아니라고 했다. 어느 것을 믿어야 할까? 이승만이 그의 저서 ‘독립정신’에 실은 민비의 사진의 주인공은 누구란 말인가? 적당한 사진을 골라서 실었다고 보기에는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다. 민비가 살아 있을 때 직접 만난 사람들이 중국, 러시아, 미국 등에서 독립 활동을 하고 있었고 민비가 아꼈다고 전해지는 고종의 둘째 아들로 귀인 장씨 소생의 의친왕(義親王) 의화군(義和君) 이강(李堈, 1877년 – 1955년)은 1919년에 신간회(新幹會) 출판부 간사로 활동한 관료이며 독립운동가로 활동했던 대동단(大同團)의 최익환(崔益煥, 1889년 – 1959년) 등과 연락하였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로 탈출하기 위하여 상복(喪服) 차림으로 변장하고 중국 만주(滿洲) 안동현(安東縣, 현재의 단동(丹東))에 갔다가 일본군에 발각되어 강제 송환되었다. 1919년 11월 상하이 망명을 도모하면서 임시정부에 밀서를 보냈다는 내용이 ‘독립신문’에 기록으로 남아있다. 이때는 1910년에 명성황후의 사진이 우리말 책자에 처음 소개된 지 9년 후의 일이다. 의화군 이강이 1955년까지 생존해 있었는데 그때까지는 아무런 문제 제기도 없었다. ‘독립정신’, ‘한국통사’, ‘대원군과 명성황후’, ‘삼천리’, ‘별건곤’등에 이르기까지 1910년부터 1932년에 이르기까지 무려 22년간 실린 사진을 전혀 보지 못했다고 봐야 할까? 실제로 명성황후의 사진이라서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것일까? 아니면 명성황후의 사진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런 문제는 다른 문제에 비해서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서 그냥 지나쳤다고 봐야 할까? 이제 사실을 증언해 줄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 서양에 소개된 민비 또는 궁녀로 소개된 다른 사진도 문제 해결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각종 설만 난무하는 가운데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진짜를 가짜로 만들었던 가짜를 진짜로 만들었던 가짜 뉴스가 생산되어 온 것도 부정할 수 없다.
오늘날에도 진짜를 가짜라고 우기면 가짜가 되고 가짜도 진짜라고 우기면 진짜가 되는 시대이다. 옛날이라고 해서 크게 다를까? 어차피 인간이 살아가는 세상이고 심리상태나 행동 패턴은 비슷하다. 우리도 일상생활에서 잘못된 것을 발견하더라도 그것을 지적하고 바로 잡으려는 경우보다 모르는 체하고 지나가는 경우가 더 많다. 민비 사진 문제도 아는 척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잡담거리는 되지만 거기에 머물러 더 이상 아무런 진전이 없다. 그 누구도 이런 문제에 휘말리고 싶지 않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 아닐까 싶다. 자기가 소장하고 있는 사진 또는 초상화가 민비라고 주장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개인적인 이해득실의 문제가 있어서 그런 주장이 설득력을 잃게 된다. 영원한 미궁으로 빠지는 것일까? 아무리 생존한 증인이 없다고 하더라도 방법을 찾아봐야 하지 않을까?
고종의 가족사진
사진을 바탕으로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없을까? 1917년에 촬영된 것으로 알려진 고종의 가족사진이다. 왼쪽부터 순헌황귀비 엄씨 소생의 영친왕, 민비 소생의 순종, 고종, 순종의 계비 순정효황후, 복녕당 귀인 양씨 소생의 덕혜옹주가 앉아있다. 인물 사진을 클로즈업해 보았다. 등장인물들의 인상착의와 분위기는 느낄 수 있다. 1863년에 연행사가 중국에 갔을 때 촬영된 사진, 1875년 신미양요, 1876년 강화도 조약 당시에 외국인들이 촬영한 사진을 제외하면 개화기의 조선에서 사진이 소개된 것은 1880년대 중반의 일이다.
민비 생존 당시가 사진 촬영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는 시점이기 때문에 많은 사진이 남아있지는 않다. 다행스럽게도 1900년 이후에는 황실의 사진이 제법 남아있다. 민비 사후에 촬영된 인물사진을 통해서 합리적인 답을 도출해 낼 수는 없을까? 문제를 찾아내고, 문제의 본질을 정리하고, 자료를 바탕으로 역추적해서 문제를 풀어가는 일을 평생해온 필자에게는 좋은 연구 소재이다.
1888년경 촬영된 고종과 세자 (후일의 순종)의 사진, 1900년경에 촬영된 대원수예복을 입은 대원수 황제(고종)와 원수 황태자(후일의 순종)의 사진을 보면 분위기가 비슷하다. 어디가 어떻게 비슷하냐고 묻는다면 딱히 집어서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어딘가 모르게 서로 닮아 보인다고밖에 이야기할 수 없다. 사진을 보는 순간 머릿속으로 온갖 시뮬레이션을 하면서 비슷한 점과 다른 점을 찾아가면서 자기 나름대로 합리화 과정을 거쳐서 지극히 주관적인 판단을 하게 된다. 만약 고종과 순종의 사진이 함께 찍은 사진이 아닌 개별적으로 촬영된 사진이라면 어땠을까? 아마도 두 사진 간의 관계성을 생각해 내지 못했을 수도 있다. 적어도 같은 사진에 두 인물이 함께 찍혔다는 것은 물리적으로는 특정 시각, 특정 장소에 있었던 일이었음을 말하고 있으므로 자연스럽게 두 인물 간의 관계와 사연이 한정되어 판단의 불확실성을 상당 부분 해소해 주게 된다.
사진은 타입 캡슐이다. 고종과 배우자, 자녀들의 사진을 모아서 비교 분석해 보면 합리적인 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데이터가 한자리에 잘 정리된 상태로 모이지 않으면 데이터 간의 상관관계가 잘 보이지 않으며 데이터를 분석한 당사자는 자신만의 결론을 얻었다고 하더라도 다른 사람들에게는 전혀 설득력이 없게 된다. 주관적인 판단의 근거를 어떻게 객관적인 판단 근거로 표현할 수 있을까? 아마도 인상이나 느낌보다는 정량적으로 수치화해서 표현하는 방법을 고려하는 것이 좋을 듯싶다.
고종의 배우자와 자녀들
고종은 민비를 포함하여 13명의 배우자가 있었으며 그중에서 8명의 배우자로부터 13명의 자손을 두었다. 적출로는 민비와의 사이에 4남 1녀를 두었으나 모두 어릴 때 사망하고 순종만 살아남아 황위를 잇게 되었다. 자녀를 둔 배우자의 사진은 순헌황귀비 엄씨와 복녕당 귀인 양씨의 사진이 남아있으며 자손들의 사진은 순종, 영친왕, 의친왕, 완자 이육, 왕자 이우, 덕혜옹주가 남아있다. 이러한 사진들을 근거로 민비의 사진을 역추적할 수 없을까?
배우자와 자손의 사진이 남아있는 순헌황귀비 엄씨와 영왕, 복녕당 귀인 양씨와 덕혜옹주의 사진을 바탕으로 순종의 사진을 바탕으로 이제까지 거론됐던 민비 사진 중에서 유전학적으로 민비 사진일 가능성이 있는 것을 특정해 보고자 한다.
유전학적 특징과 민비 모습의 역추적
민비로 주장된 사진과 초상화 4종류와 고종, 순종, 순헌황귀비 엄씨 – 영친왕, 복녕당 귀인 양씨 – 덕혜옹주의 사진을 정리해 보았다. 순헌황귀비 엄씨와 영친왕은 목이 짧은 점과 입술 모양이 유전학적으로 비슷해 보인다. 복녕당 귀인 양씨 – 덕혜옹주의 사진에서는 이목구비가 유사하게 느껴진다. 어디까지나 주관적인 판단이므로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주장도 아니다. 순종의 사진으로부터 민비로 주장된 사진과 초상화 4종류 중에서 어느 것이 민비의 사진이라고 주장해도 무방할 정도의 특징이 있는지 계량화해 보고자 한다.
얼굴의 비율을 수치화해 보면 각각의 인물사진의 특징을 알 수 있다. 필자의 회사에서 개발한 이미지 분석 소프트웨어 PicMan을 사용하여 각각의 인물 사진에서 두 눈동자 간의 거리를 화소 단위로 측정하고 두 눈동자를 연결하는 직선과 수직 방향으로 모발이 시작되는 부분까지의 거리와 입술까지의 거리를 화소 단위로 측정하여 두 눈동자 간의 거리와의 비율을 계산하였다. 더 많은 특징을 수치화할 수 있으나 그림이 너무 복잡해지는 관계로 대표적인 예를 소개하였다.
우선 순헌황귀비 – 영친왕의 입술까지의 길이 비율은 약 1.0으로 거의 같다. 복녕당 귀인 양씨 – 덕혜옹주의 경우에도 입술까지의 길이 비율이 약 1.0으로 같게 나타났다. 고종의 경우에는 약 1.2이나 자녀들은 모두 어머니 얼굴의 특징을 이어받았다. 순종의 경우에는 입술까지의 길이 비율은 약 1.2로 영친왕과 덕혜옹주보다 20% 정도 큰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러한 정보를 바탕으로 역으로 유추해 보면 민비의 사진이 존재한다면 입술까지의 길이 비율이 1.2 정도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민비로 주장된 사진과 초상화 4종류에 대해서도 같은 측정을 해 보았다. 고개를 아래로 숙인 사진 B는 1.1로 약간 작게 나왔지만 나머지 사진과 초상화는 약 1.2 정도인 것으로 확인되었다. 순헌황귀비와 복녕당 귀인 양씨의 1.0보다 크다. 사진 B도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면 입술까지의 길이 비율이 약 1.2 정도로 측정되었을 개연성이 높다. 각종 출판물에서 여인의 인물 사진을 무작위로 추출해서 실었다고 가정해 보자. 두 눈동자의 거리를 기준으로 했을 때 눈동자를 잇는 수평선으로부터 입술까지의 길이 비율이 1.2가 될 확률은 얼마나 될까? 순헌 황귀비와 복녕당 귀인 양씨의 경우가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민비라고 주장되는 모든 사진과 초상화에서 그 비율이 1.0 이상일 확률은 상당히 작을 것이다. 민비로 주장되는 사진 A, B, C는 여인의 다른 연령대의 사진으로 느낌은 다를 수 있으나 눈동자를 잇는 수평선으로부터 머리카락이 시작되는 영역까지의 길이 비율이 약 1.3 이상으로 이마가 상당히 넓은 특징이 있다. 동일인의 다른 연령대의 사진일 개연성이 매우 높다. 사진 A, B, C의 입술 모양도 비슷해 보인다. 사진 B와 어린 시절 순종의 입술 모양이 비슷해 보인다. 입술의 양옆이 입술의 가운데보다 아래쪽으로 처진 것이 특징적이다.
다음 칼럼에서는 사진의 배경 이미지에 따른 착시현상을 고려한 민비로 주장되는 사진을 비교하면서 독자 스스로가 결론에 도달할 수 있도록 하려고 한다. 착시현상을 배제한 사진으로 보면 각각의 사진들이 어떻게 보이는지 살펴보는 기회를 얻도록 할 예정이다.
<유우식 문화유산회복재단 학술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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