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봉서원
고봉 기대승, 영남의 거유 퇴계를 상대로 4단7정을 13년 간 논하다.
전문기자 이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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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21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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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봉서원은 조선 시대 때 4단7정(四端七情) 논쟁으로 유명한 호남지방의 선비인 고봉 기대승(1527∼1572)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사당으로 인조 24년에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였고 효종은 ‘월봉(月峯)’이라는 이름으로 사액하였다. 선생은 지역과 문벌을 바탕으로 당파가 심하던 때에 호남을 넘어 유학의 본산인 영남의 사림에 까지 이름을 떨친 인물이다. 퇴계 이황과 13년 간 편지를 주고받으며 학문을 논하던 일 하며 조선 성리학의 태두인 회재 이언적 선생의 신도비를 지어 올리기도 했다.
월봉서원의 초기에는 이곳은 선생을 중심으로 좌우에 박상, 박순, 김장생, 김집 등 조선의 명신들을 함께 배향하고 있는 ‘월봉서원’의 강당이었다. 월봉서원은 선생의 사후에 그를 추모하기 위해 큰아들인 기효승이 선조 11년에 세운 것으로 정조대왕이 ‘빙월당’이라 이름을 지어 내리기도 했다. 빙월당은 현재 광주광역시기념물로 지정되어 있으며 장판각에는 『고봉집(高峯集)』 목판 474판이 보관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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