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후기 정원의 백미 석파정에서 만추를 느끼다
대원군이 사랑한 정원 석파정 그리고 서울미술관
김지연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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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01 09:45 | 최종 수정 2024.11.02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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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파정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부암동 산 16-1 번지 일대에 약 2,050여 평에 조성한 조선 말기의 정원이다. 1974년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서울 성곽 북서쪽 밖의 수려한 자연경관을 배경으로 북악산과 인왕산이 만나는 경사지 중턱에 조성되어 있다.
원래 이곳은 조선 경종 때 조정만이 만든 한수운렴암을 김흥근이 인수하여 '삼계동정사'라는 이름으로 마련한 별서였다. 당시 서울 지역의 세도가들은 자연경관이 수려한 곳에 별서를 조성하는 것이 유행이었다. 게다가 김흥근은 안동김씨로 권력과 부를 누린 인물이다.
삼계동정사는 장안에서 명승지로 소문이 나서 흥선대원군은 이를 팔기를 요구했으나 번번히 거절만 당했다. 어느 날 대원군은 이를 차지하기 위한 묘책을 생각해 냈다. 왕이 된 자신의 아들 고종을 동반하고 찾아가 하루 동안 빌려줄 것을 청하여 머물게 되었다.
그 후 김흥근은 임금이 와서 놀던 곳을 신하가 감히 다시 찾을 수 없다 하여 삼계동정사를 떠날 수 밖에 없었다. 결국 대원군의 소유가 되었고, 이때부터 대원군의 호인 '석파'를 따서 석파정이 되었다.
사실 석파정은 정원 내의 중국식 정자를 일컫는 용어였는데, 어쩌다 보니 정원 전체를 아우르는 이름이 되었다.
석파정의 정원 조성양식은 중국식을 그대로 도입했는데, 다른 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사례로 꼽힌다.
당시 사대부들 사이에서 청나라 양식이 유행했다는 점과 김흥근의 평소 과시하기 좋아하는 성격과도 연관이 있다. 그가 사신으로 청나라에 다녀온 후, 외래 양식을 접한 경험이 있어 정원에 반영되었을 것이다.
석파정은 대원군 사후에는 이씨 왕족들이 세습해서 사용하다가 한국 전쟁이 끝나고 천주교에서 운용하는 고아원으로 사용 되었다. 그후 병원과 여러 명의 개인소유자를 전전했다.
2006년에 유니온제약 안병광 회장이 석파정 입구에 개인 미술관을 건립해 '석파정미술관'으로 이름 짓고 2012년 개관했다. 이후 안병광 회장은 석파정도 인수했다. 전엔 미술관과 석파정을 별도로 입장했는데 현재는 통합입장권으로 같이 관람하게 만들었다.
서울미술관에 진입하면 우선 추사 김정희의 글씨와 신사임당의 초충도와 같은 조선시대 예술작품과 김환기, 천경자, 유영국, 김창열 등 한국 근현대 미술의 거장들을 만날 수 있다.
설립자 안병광 회장이 한 눈에 반해 미술관 설립하게 되는 동기 부여를 해준 이중섭의 대표작 <흰소>도 볼 수 있다. 또한 이중섭(1916~1956)의 미공개 편지화도 처음으로 공개돼 주목받고 있다.
한국전쟁으로 가족과 헤어져 있던 이중섭은 일본에 있던 아내와 아이들에게 100여통의 편지를 보냈다. 글과 함께 그림을 담은 편지는 그의 남다른 가족애를 전해주며 관람객들의 심금을 울린다.
깊어가는 가을, 서울미술관에서 미술작품들을 보고 나와 조선 후기 최고의 정원 석파정을 감상하시길 추천한다. (통합 성인 입장료 2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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