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SBS에서 일요특선 다큐멘터리 <도마의 길>을 방영했다. 이 다큐멘터리는 예수의 12제자 중 한 명인 도마가 한반도로 선교를 왔다는 주장을 담고 있는데, 이러한 주장에 대한 명확한 기록이 없음에도 공중파 방송에서 방영하는 것이 옳은지 문제를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서 말하는 도마는 예수의 12제자 가운데 하나로, 사도 토마스(Thomas)로도 불린다. 성경에서 도마는 예수가 죽은 뒤 부활했다는 다른 제자들의 말을 믿지 못하고, 그분의 손에 있는 못자국과 옆구리에 손을 넣어보지 않고는 믿지 못하겠다고 이야기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러한 모습은 신앙적인 평가와는 별개로 끊임없이 의심하고, 사실을 마주한다는 측면에서 역사학자라면 가져야 할 모습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도마가 한반도로 선교를 왔다는 내용은 역사적 사실과 직접 증거에 기반한 것이 아니다. 그저 주변 정황을 꿰어 맞추어 그럴듯하게 만들어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전형적인 음모론이자 사이비에 불과하다. 이건 마치 일본에 예수의 무덤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만큼이나 어처구니없는 내용이다.
▲ 영주 강동리 마애보살입상, 도마의 한반도 선교설을 주장하는 유물로 둔갑되었다. ⓒ 김희태
다큐멘터리에서는 경상북도 영주시 평은면 강동리에 위치한 마애보살입상을 도마가 한반도로 선교를 왔다는 증거로 제시했다. 이 불상의 오른쪽 상단에 그들이 히브리어라고 주장하는 '도마'가 새겨져 있고, 기도하는 손 모양과 발가락이 드러난 형태 등을 근거로 도마상이라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명확한 근거가 부족하다.
▲ 불상의 오른쪽 상단에 새겨진 인위적인 흔적, 그들이 히브리어라고 주장하는 부분이다. 오히려 감실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 김희태
▲ 충주 미륵대원지 석조여래입상, 입상의 주변에 있는 감실을 볼 수 있다. ⓒ 김희태
당장 영상에서조차 사무엘 아히투브(벤구리온대학교 명예교수) 교수가 해당 글자가 히브리어가 아니라고 밝히기도 했다. 오히려 선입견을 배제하고 바라보면 히브리어라고 주장하는 문자의 형태는 감실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무엇보다 해당 불상은 고려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판단되는데, 여기에 히브리어가 새겨져 있다면 연대적인 부분에서도 문제가 된다.
▲ 불상의 손 모양, 그들은 기도하는 형태의 손 모양이라고 주장하나, 이 역시 자의적인 해석에 불과하다. ⓒ 김희태
▲ 구미 황상동 마애보살입상, 그렇다면 이 불상도 도마상이라 주장할 것인가? ⓒ 김희태
또한, 기도하는 손 모양이라고 이야기한 부분은 자의적인 해석에 불과한데, 인근에서도 유사한 형태의 불상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구미 황상동 마애보살입상의 사례가 있는데, 그렇다면 이 불상도 도마상이라고 주장할 것인가?
▲ 김해 수로왕릉, 그들은 도마가 한반도로 선교 왔음을 주장하기 위해 수로왕과 왕비인 허황옥의 설화를 교묘하게 이용한다. ⓒ 김희태
▲ 납릉정문에 그려진 쌍어문, 그들은 쌍어문을 성경 속 오병이어의 한 장면으로 해석, 도마의 한반도 선교설의 증거로 활용하고 있다. ⓒ 김희태
다큐멘터리는 도마가 한반도로 선교를 왔다는 직접적인 증거를 제시하지 않았다. 대신, 수로왕릉의 납릉정문에 그려진 쌍어문을 성경 속 오병이어의 한 장면으로 해석하며, 김수로왕의 부인인 허황옥이 인도에서 왔다는 점과 경주에서 출토된 로만글라스와 십자가 문양 유물 등을 근거로 도마의 한반도 선교설을 연결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충분한 역사적 근거가 부족하다. 위의 유물이 문화적 교류의 흔적으로 주목될 수 있지만, 도마가 한반도로 왔다는 역사적 증거가 될 수는 없다.
▲ 황남대총 출토 봉수형 유리병, 로만글라스로도 불리며, 당시 유럽과 아시아 간 문화 교류의 흔적으로 주목될 수는 있어도, 도마가 한반도 선교설의 증거가 될 수는 없다. ⓒ 김희태
▲ 김해 수로왕비릉, 전승에 도마가 인도로 선교온 것을 근거로, 아유타국 출신의 허황옥과 수로왕의 결혼을 도마의 한반도 선교설의 장치로 활용하고 있다. ⓒ 김희태
실제 이광수 교수의 <인도에서 온 허왕후, 그 만들어진 신화>를 보면 아유타국으로 비정하는 아요디아가 그 시대에 존재하지 않았다고 주장한 바 있다. 또한, 인터넷에서는 도마가 수로왕에게 세례를 주었고, 허황옥과 중매를 해주었다는 확인되지 않은 주장들까지 범람하고 있다. 이쯤 되면 도마의 한반도 선교설은 학설이라 부르기도 어려운 음모론이자 사이비나 진배없는 수준이다.
도마가 한반도로 선교왔다는 주장은 현재의 역사적, 고고학적 증거로 볼 때 사실로 보기 어렵다. 오히려 과장된 해석으로 사람들에게 혼란을 주기에 충분하다. 역사적 사실과 고고학적 증거는 신뢰할 수 있는 출처를 통해 확인되어야 하며, 다큐멘터리와 같은 공중파 방송에서는 신중하게 다루어야 한다. 특정 사건이나 인물에 대한 과장된 해석이나 음모론은 사람들에게 혼란을 줄 수 있으며, 사실에 기반하지 않은 채 아니면 말고 식의 내용은 지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