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 살리려면 ­정의 새로 정립, 정책 전환해야

전통한지업체 수 1996년 64개소 ? 2021년 19개소로 감소, 폐업 이어져
한지법률 없고, 일부 시군조례는 태국산 닥을 사용해도 한지에 해당 돼

박동석 발행인ㆍICPSC이사장 승인 2023.05.29 15:17 의견 0

현직 경상북도인재개발원장(박후근)이 7년간 발로 뛰어 연구한 박사논문을 토대로 「세계 최고의 종이, 한지 : 정책이 필요하다」(선출판사) 책자를 발간하여 주목받고 있다.

세계 최고의 종이 한지 도서 표지 (자료 저자 박후근 제공)


박원장은 이 책을 통해 한지에 관한 개별법이 없는 상황에서‘정의’마저 제대로 정립되지 않은 점 등 문제점을 지적했고, 전통한지의 ‘품질표준화’와 ‘공공부문 사용의무화’등 전통한지 진흥 정책대안을 제시했다. 또한, “지금은 한지정책의 대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주장했다.

현 경상북도인재개발원 박후근 원장 (사진 저자 제공)


이 책에서 제기한 전통한지의 현황과 정책적인 문제점은 다음과 같다.

➀ 전통한지업체의 폐업이 지속되어, 업체 수가 1996년 64개에서 2021년 19개로 감소했다. ➁ 한지에 관한 개별법이 없고, 한지에 관한 정부 차원의 ‘정의’조차 정립되지 않았다. 전주시·의령군·안동시에서는 ‘전통한지’와 ‘지역한지’를 다르게 정의하여‘수입산 닥 사용’ 및 ‘기계장치를 이용’하여 만든 종이도, 한지에 포함될 수 있는 여지를 남겼다. ➂ 2021년 정부의 한지 실태조사에서는 국내산 닥이 아닌 수입산 닥, 목재펄프를 주원료로 하여 만든 것까지도 한지에 포함했다. ➃ KS(한국산업규격)의 한지품질규격은 부실한데다 2006년 이후 등록업체가 한 군데도 없다. ➄ 창덕궁을 비롯한 4대궁궐 창호지에 한지를 일부만 사용했다. 공공부문의 한지 사용은 행정안전부의 정부포상 증서를 비롯한 일부 외에는 찾기 어렵다. ➅ 2017년 1월부터 2021년 6월까지 총 341억 원의 국고보조금, 지방비가 한지에 집행됐지만 전국 19개 한지 업체에 지원된 금액은 7억 원에도 미치지 못한다. ➆ 한지가 이탈리아와 루브르 박물관 등에 문화재 수리·복원용으로 인증됐다는 보도자료와 언론기사가 있었지만 뚜렷한 수출 성과는 없다. 국내 지류문화재 수리용 한지의 품질규정이 없다. ➇ 과학적인 데이터 분석 결과, 현재 제조한 최고 품질의 한지는 2백년 이상 보존된 정조 친필편지에 사용된 한지 보다 품질이 현저히 떨어진다. ➈ 실생활에서 전통한지를 찾아보기 어렵다. 사실상 전통한지는 역사와 박물관에서만 존재한다. ➉ 산림청 등 관련부처에서는 닥나무의 섬유 특성에 관한 의미 있는 연구가 없다.


아울러 전통한지 진흥을 위해 다음과 같이 6가지 정책대안을 제시했다.

➀ 전통한지의 정의를 새롭게 정립해야 한다. 이를 토대로 기초 통계조사를 해야 한다. 한지의 주원료를 ‘국내산 닥’으로 하고, 제조기술은 ‘손으로 만든 것’으로 한정해야 한다. ➁ 전통한지 품질의 표준화를 도모해야 한다. ➂ 공공부문에서의 전통한지 사용 의무화가 도입되어야 한다. ➃ 한지 품질개선을 위해 정부 차원의 노력이 필요하다. ➄ 기록용·서화용으로 한지사용을 확대해야 한다. 또한, 국고보조금 집행액 중 일정 부분(10% 이상) 만이라도 전통한지 소비 진작에 사용돼야 한다. ➅ 전통한지 진흥을 위해 부처별 노력과 범정부적인 협업이 요청된다.

저자 박후근 박사학위 논문 표지 (자료 저자 제공)


이 책에는 ‘전통한지를 진흥시켜 민족문화를 창달’하자는 취지에서 100% 전통한지에 그린 수묵화가 작품 9점을 실었다.

박사학위논문을 지도했던 충남대 국가정책대학원 배관표교수는 “박후근 박사는 우리나라 최고의 한지 정책 연구가로 학계에서 인정받고 있다.”면서 “저자가 소명의식을 갖고 이 한 권의 책에 한지 정책의 모든 것을 담은 만큼, 한지를 살리는데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라고 말했다.

전통한지의 역사와 제조기술, 닥나무 연구 등 40년 이상 한지를 연구했고, 2015년에 행정자치부의 한지 자문위원을 맡았던 김호석화백은 “박원장은 현장에서 답을 구했고 문화 발전을 저해하는 문제점을 정확하게 파악했으며 해법 또한 매우 구체적”이라면서, “전통문화의 원형을 찾고 복원함은 물론 나아가 국가가 활용할 수 있는 수요처를 확보한 것은 큰 성과이다. 연구 성과가 현실화되어 한국문화가 진일보하는 계기가 되기를 소망한다”고 말했다.

저자인 박후근 경상북도인재개발원 원장은 “한지의 정의를 새로 정립하고, 정책을 전환해야 할 시점이다”라고 주장했다. 또한, “고려지·조선지 수준 이상으로 품질을 높여 명실공히 한지가 세계 최고의 종이로 자리매김 했으면 좋겠다”면서,“이 책이 한지정책 추진에 참고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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