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안군 승달산에 위치한 목우암과 법천사를 다녀오다

법천사의 '법천(法泉)'이란 용어도 불갑사나 법성포의 그것처럼 '불법의 샘'이란 뜻
원나라 승려 원명 제자 500여명이 와서 수행하여 도를 이룬후 승달산이라 불리게 된 사연

김오현 선임기자 승인 2023.10.13 06:36 | 최종 수정 2023.10.13 11:13 의견 1
법천사 목우암의 축성각으로 가는 계단주변에 붉게 물든 상사화 모습(사진촬영 조병필)

귀뚜라미 울음소리 낮게 깔린 대청마루에 앉아 달구경하는 우리 맘 속에 둥그런 달을 보면 더도 덜도 말고 오늘만 같아라.
추석연휴 동안 많은 사람들이 고향에 내려가 가족과 함께 명절을 보냈지만, 요즘은 국내외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추석을 맞이하여 고향에 내려가 가족과 함께 차례를 지내고, 송편을 비롯한 다양한 음식을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또한, 윷놀이, 씨름, 널뛰기 등 전통놀이를 즐기는 추석 명절은 옛날 얘기가 되어가는 느낌이다.
추석연휴를 맞아 무안군 몽탄면 달산리 승달산에 위치한 목우암과 법천사를 찾았다. 붉게 물든 상사화가 약간 바래갈 무렵이었지만, 들녘에는 벼가 누렇게 익어가면서 한가로운 가을 정취를 더해 준다. 하늘은 더없이 푸르고 하얀 뭉게구름이 초가을 정취를 더하고 따사롭게 햇살이 쏟아지고 청량한 가을바람이 피부에 와 닿는다.
목우암은 신라 성덕왕 24년(725년)에 서역 금지국의 스님 정명이 창건한 사찰로 알려져 있다. 고려 인종 9년(1131년)에 원나라 임천사의 승려 원명이 중창했다고 전해진다. 법천사는 목우암과 함께 승달산에 위치한 사찰로, 신라 성덕왕 24년(725년)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진다.
목우암과 법천사로 가는 길은 인위적 개발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아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 다양한 수종의 나무와 풀들이 어우러져 있어 산책하기에도 좋았다. 목우암에 도착하니, 붉은 단풍이 곱게 물든 상사화 군락지가 눈에 들어왔다. 상사화는 꽃이 시들면 잎이 나오는 특이한 식물로, '사랑의 꽃'이라고 불린다. 상사화 군락지를 지나 법천사로 향했다. 법천사에 도착하니, 푸른 숲을 배경으로 흰색의 대웅전이 우뚝 솟아 있었다. 대웅전 앞에서 잠시 쉬며 가을 정취를 만끽했다.

​​​​​승달산의 법천사 전경(사진제공 무안군 홈페이지)

▶ 승달산(僧達山)

무안 승달산은 전라남도 무안군 청계면과 몽탄면에 걸쳐 있는 해발 333m의 산으로, 무안의 대표적인 명산입니다. 목포의 유달산과 쌍벽을 이루는 승달산은 불교와 관련된 사적지와 풍부한 자연환경을 자랑한다. 승달산의 이름은 고려 인종 때 원나라 승려 원명이 이 산에 올라와 교세를 크게 떨쳤고 그를 찾아온 제자 500여명이 한꺼번에 깨달음을 얻었다는 데서 유래되었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노령산맥의 4대 명혈 중 하나라 하여 더욱 유명한 곳이다. 전해오는 이야기는 승려가 부처님께 절하는 모습의 명당이 있는데 이 혈에 묘를 쓰게되면 98대(3천년)에 이르도록 문무백관을 탄생시킨다는 것 때문에 지금도 불법으로 몰래 묘지를 쓰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승달산에는 법천사, 목우암, 깃대봉 등 다양한 불교 사적이 있으며, 깃대봉 정상에는 원명이 깨달음을 얻은 곳이라는 전설이 내려오는 '원명대'가 있다.
승달산은 다양한 식생이 어우러진 자연환경을 자랑한다. 깃대봉 정상에서 내려다보면 목포시와 무안군의 전경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으며, 사방으로 펼쳐진 울창한 숲과 계곡은 등산객들에게 빼어난 경관을 선사한다. 등산로가 잘 정비되어 있어 초보자도 쉽게 오를 수 있다. 대표적인 등산로는 목포대학교를 들머리로 하는 코스로, 약 3km의 거리에 깃대봉 정상까지 약 2시간 정도 소요된다.
무안지역의 문화를 이야기함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것은 해상을 통한 불교문화의 유입설이다. 무안에는 불교의 해로 전파와 관련된 기록이 있는데 무안 승달산의 법천사(목우암 )에 대한 것이다. 법천사의 '법천(法泉)'이란 용어도 불갑사나 법성포의 그것처럼 '불법의 샘'이란 뜻이니, 이는 승달산의 '승달(僧達)'과 함께 이들 사찰과 산의 이름이 불교와 깊은 연관을 지니고 있다. 이 법천사와 승달산에 얽힌 사실은 [동국여지승람] 법천사 부분과 [동국여지지] 승달산 부분에 나오는데 이를 간추려보면, "당나라 현종대인 개원(713년~741년)년간에 서역 금지국(金地國, 지금의 미얀마 남부에 있던 고대국가)의 중(스님) 정명(淨明)이 와서 법천사를 창건하였고, 뒤에 송나라의 임천사의 중 원명(圓明)이 바다를 건너와 불법을 전할 곳을 찾아 이곳에 초막(암자)을 짓고 머물렸다. 그후 임천사 500여 제자들이 그를 찾아와 이르러 모두 도를 깨우치니 그로부터 승달산이라 이름했으며 그 거처가 바로 법천사였다" 는 내용이다.
승달산은 무안의 대표적인 명산으로, 역사와 문화, 자연이 어우러진 매력적인 곳이다. 무안을 방문하신다면 양파 먹은 한우와 갯벌낙지도 드시고, 갯벌랜드, 초의선사 탄생지 탐방과 승달산을 꼭 한번 방문해 보시기 바란다.

​​​​​법천사 입구쪽의 붉은 단풍이 곱게 물든 상사화 모습(사진촬영 조병필)

▶ 법천사의 유래

법천사는 불법이 샘솟는 듯하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으로 대한불교 조계종 제22교구 본사인 대흥사(大興寺)의 말사이다. 553년 백제 성왕 30년에 덕이(德異) 또는 덕예(德隸)라고 하는 승려가 창건했다는 설과 725년(성덕왕 24년)에 서역 금지국(金地國, 지금의 미얀마 남부에 있던 고대국가)에서 온 정명(淨明)이 창건했다고도 한다. 법천사가 위치하고 있는 이 곳은 옛날에는 영축산이라고 하였는데 원나라 임천사 원명조사(圓明祖師)의 제자 500여명 수도승이 와서 수행하여 도를 이룬후 승달산이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법천사는 한때 안빈ㆍ예봉ㆍ연담 대사 등 비롯한 수많은 고숭대덕을 배출한 우리나라 4대 성지의 하나인 호남의 대명승ㆍ가람이었다. 그 후 여섯 차례의 중창이 있었으나 1856년에 폐해가 되고 목우암만이 남았는데 현재 옛 법천사 대웅전에 모셨던 삼존불상의 입상만이 목우암에 보존되어 옛 선인들의 우아한 조각예술의 향취를 느끼게하며 전라남도 문화재자료로 등록되어 있다. 그 후 1951년에 곽활연 비구니 스님께서 목우암에 주석하셨는데 열반 하실 즈음 이 곳 법천사 옛터에 인법당과 현 대웅전 자리에 요사 1동을 건립하셨고, 그의 뒤를 이어 제자이신 강지원 비구니스님께서 페허가 된 법천사 도랑을 개간하여 26년 동안 수행해 오시다가 스님의 원력(부처에게 빌어 원하는 바를 이루려는 마음의 힘)으로 1990년 법천사 대웅전을 건립하고 산신각 복원과 삼존불을 조성ㆍ봉안하고, 1994년 단청불사를 마침으로써 법천사 대웅전을 완성 하였다고 한다.

법천사 목우암 법당 정면(사진제공 문화재청 모바일자료)

▶ 법천사 목우암(牧牛庵)

종 목 :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82호
명 칭 : 법천사 목우암
지정일 : 1984.02.29
소재지 : 전라남도 무안군 몽탄면 법천길 482-85

법천사는 원나라 승려인 원명이 세웠다는 기록과, 신라 성덕왕 24년(725년)에 서역 금지국(金地國, 지금의 미얀마 남부에 있던 고대국가)의 승려인 정명이 세우고, 고려시대 인종, 의종 연간(1131년~1162년)에 남송(문화재청 자료는 원나라 승려) 임천사의 승려 원명이 고쳐 지었다. 그때 제자 500여명이 찾아와 도를 깨달았다고 하여 산 이름을 승달산이라 했다고 한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원명 스님이 꿈에 백운산에 있는 총지사에서 소가 한 마리 나와 이 암자에 이르는 것을 보았다. 잠에서 깨어난 스님이 이것을 이상히 여겨 암자에 가 보니 계곡 바위에 소발자국 흔적이 있었다고 한다. 이 발자국을 따라와 절을 지어서 이름을 목우암이라고 붙였다고 한다. 한편, 원명 스님이 이 암자를 풀을 엮어 지었다는 전설도 내려온다.
현재 목우암 내에는 법당, 요사채, 축성각이 있다. 법당 내부에는 목조아미타불삼존불이 있고 그 앞에 숙종 7년(1681년)에 만든 석등이 있으며 목우암 입구에는 조선 후기에 만든 부도 5기가 있다.

무안 목우암 목조아미타여래좌상(사진제공 문화재청 모바일자료)

▶ 무안 목우암 목조아미타여래좌상

종 목 :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70호
명 칭 : 무안 목우암 목조아미타여래좌상
지정일 : 2022.11.10
소재지 : 전라남도 무안군 몽탄면 법천길 482-85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은 높이가 114.5㎝인 조선후기 제작된 중형 불상으로, 얼굴과 앉은키의 비례가 1:3.1로 인체비례와 유사하며, 어깨가 넓어 당당한 신체를 가지고 있다.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은 17세기 전반에 제작된 여래상에 비해 하반신의 높이가 높아졌으나 상반신과 하반신이 적당한 비례로 안정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머리에 뾰족한 나발(螺髮)과 경계가 불분명한 육계(肉髻)가 표현되고, 육계 밑에 반원형의 중간계주(中間髻珠)와 정수리에 상단이 둥근 원통형의 정상계주(頂上髻珠)가 있다. 긴 장방형의 얼굴에 반개한 일자형의 눈, 코와 입 주위를 얕게 파내 부피감을 준 뺨과 턱, 살짝 외반(外反)한 귓불과 이갑개, 이륜, 이주가 물음표 모양인 두툼하고 뭉툭한 귀를 가지고 있다. 목에는 삼(三)자형으로 도식화 된 삼도(三道, 삼악도의 줄임말로서 여기서 삼도는 지옥도 · 축생도 · 아귀도를 말함)가 새겨져 있어 17세기 전반의 불상에서 볼 수 있는 표현과 차이가 있다. 양손은 무릎 위에 엄지와 중지를 맞대고, 오른손이 손등을 위로 하고, 왼손은 손바닥을 위로 하는 수인(手印, 모든 불·보살의 서원을 나타내는 손의 모양)을 취하고 있다. 아미타불은 대의 안쪽에 편삼(偏衫, 승려의 옷으로 상반신을 덮고 왼쪽 어깨에서 오른쪽 옆구리에 걸친 옷)을 입고, 오른쪽 어깨를 덮은 대의 안쪽 옷자락이 V자형으로 겨드랑이까지 늘어지고, 나머지 대의자락이 팔꿈치와 배를 지나 왼쪽 어깨로 넘어간다. 복부에 오른쪽 어깨에서 수직으로 내려온 옷자락이 편삼과 겹쳐 있다. 하반신을 덮은 대의 자락의 경우 복부 중앙에서 바닥으로 한 가닥의 대의자락이 윗부분이 좁고 아랫부분이 넓게 펼쳐진 비파채와 유사한 형태로 늘어져 있다. 이와 같은 대의자락의 처리는 조각승 희장이 만든 기년명(紀年銘, 비석이나 기물에 제작이나 사용 따위의 연대를 기입한 명문) 불상에서 주로 나타나는 표현이다. 왼쪽 측면 대의자락은 동일한 너비로 길게 늘어져 앞뒤로 “ㅅ”자를 그리며 펼쳐져 있다. 가슴을 덮은 승각기는 상단이 대각선으로 접혀 간략하게 처리하였다.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의 바닥면은 역삼각형이고, 중간에 사각형이 복장공이 있는데 인위적으로 뜯어내서 바닥 중간이 많이 훼손되어 있다. 불상 내에서는 조성발원문을 비롯한 복장물이 발견되어 제작시기와 봉안 사찰 및 조각승을 비롯한 연화질(緣化秩, 특별한 불교 행사나 일에 참여한 사람들의 명단) 등을 알 수 있다.

목우암 삼존불(사진제공 문화재청 모바일자료)

▶ 목우암삼존불

종 목 :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172호
명 칭 : 목우암삼존불
지정일 : 1988.12.21
소재지 : 전남 무안군 몽탄면 법천길 482-85

전라남도 무안군 몽탄면 달산리 목우암의 ㄷ자형 법당 안에 모셔진 삼존불(三尊佛)로, 양 옆에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협시로 서 있어 본존불이 아미타불임을 알 수 있다. 삼존불은 나무로 만들었으며 보존 상태는 비교적 양호한 편이다.
본존불은 갸름한 타원형의 얼굴에 미소가 감돌고 있는 온화하고 부드러운 인상이다. 손은 엄지와 가운데 손가락을 맞대고 있는 모양으로 아미타불의 일반적인 손모양을 표현하였다. 양 어깨에 걸친 옷은 오른쪽 어깨에서 몇 가닥의 옷주름이 등 뒤로 넘어가고 있으며, 배 아래에는 U자형 주름이 표현되고 있는데 그 사이에는 속옷 자락이 보인다. 앉아있는 다리의 무릎 폭은 비교적 넓으며, 어깨에서부터 내려오는 옷자락이 무릎 중앙에서 겹쳐지고 있다.
양 옆의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은 머리에 보관(寶冠)을 쓰고 있으며, 화려한 옷으로 장식되어 있다. 대세지보살은 왼손에 상자를 가볍게 쥐고 있으며, 관세음보살은 왼팔에 옷자락을 걸치고 오른손은 길게 늘어뜨려 물병을 들고 있다.
조선 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이 작품은 U자형의 옷주름이나 연꽃모양의 속옷 자락, 잔잔한 미소가 감도는 타원형의 얼굴 등에서 아직은 조선 초기의 양식이 남아 있다. 아미타본존불에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협시보살로 있는 특이한 예를 보여주고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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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천사 돌장승은 애틋하면서도 맑은 미소가 매력인 할아버지 장승(사진제공 문화재청 모바일자료)

법천사 돌장승은 애틋하면서도 맑은 미소가 매력인 할머니 장승(사진제공 문화재청 모바일자료)

▶ 법천사 석장승

종 목 : 전라남도 민속문화재 제24호
명 칭 : 법천사 석장승
지정일 : 1987.06.01
소재지 : 전남 무안군 몽탄면 달산리 856번지

법천사 가는 길목에는 석장승이 얌전하고 수줍은 모습으로 서 있다. 상쾌하면서도 조용한 길목을 외로이 지키고 있는 두 장승은 조각 기법이 유사하다. 투박한 자연석을 거칠게 다듬어 황소눈, 주먹코, 조용한 웃음을 표현했으며 여릿한 슬픔과 애잔함을 담고 있는 표정이다. 오른쪽에 있는 것이 할아버지 장승이고 왼쪽이 할머니 장승으로, 둘다 키가 1.7m 남짓한데 아랫도리에 서낭당처럼 돌이 많이 쌓여있다. 몸에 별다른 명문도 없고 윗부분에 얼굴을 새겼을 뿐이다. 할머니 장승은 동그란 눈에 물방울 같은 코를 하고, 조그만 입에 보일듯 말듯 한 웃음을 머금고 있다. 할아버지 장승도 기본적으로 같은 모습이지만 코가 많이 상해 있다. 마을 사람들이 아들을 얻기 위해 코를 자주 갈아서 마셨기 때문이라고 한다.
법천사 입구에 서 있는 한 쌍의 돌장승으로, 절의 영역을 표시함과 동시에 수문장으로서, 절을 지키고 경내의 살생과 나무채취를 막는 구실을 한다.
남장승의 높이는 170cm, 너비 48cm이며, 여장승은 높이 166cm, 너비 41cm이다. 투박한 돌을 거칠게 깎아 만든 두 장승은 커다란 황소눈에 주먹코이다. 입은 다물고 있지만 미소를 짓고있는 모습에서 시골의 노인을 떠올리게 한다. 아들을 낳기 원하는 사람들이 장승에 고사를 지내거나 장승 코를 갈아서 깨끗한 물에 타 마시기도 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조선 인조(재위 1623년 ∼ 1649년) 무렵 원명스님이 법천사를 중창(원래의 절을 고쳐 새로이 함)할 당시에 함께 세워놓은 것으로 추정된다.

🔳 참고문헌

1. 이태헌, [녹색의 땅 전남으로 초대], 전라남도, 2007.
2. 한정희, [무안ㆍ무안사람들], 경인문화사, 2011.
3. 조상열, [남도의 숨결따라], 대동문화재단, 2015.
4. 최응천, [나만의 문화유산 해설사 자료], 문화재청,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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