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령문화재지킴이봉사단 후원, 서해문화포럼, ‘제13차 웅천 집성당(集成堂) 학술대회’ 성황

김완집 도유사 충남의병기념관 건립에 따른 충청의 의병 성지로 견인할 것 천명

임인식 시민기자 승인 2023.12.01 13:59 | 최종 수정 2023.12.04 19:08 의견 0

김태흠 도지사의 충남의병기념관 건립에 따른 보령시 웅천읍 집성당(集成堂)의 재조명 활동이 보령문화재지킴이봉사단의 끈질긴 연구 노력으로 결실을 보아 지난 30일(목) 오후 2시부터 웅천복지관 2층대강당에서 보령시(시장 김동일)가 주최하고 서해문화포럼(대표 임인식)의 주관으로 보령예총 및 보령문화재지킴이봉사단과 도만호김성우장군역사지킴이와 집성당의 후원으로 국내 최고의 향토사학자 이해준 공주대학교 명예교수(한국서원학회장)와 이영석 군사학 박사(한국의병연구소장)등 쟁쟁한 석학들이 집성당을 새롭게 조명하며 보령시민의 염원으로 도지정 문화재 승격을 기원하며 충청의 의병성지로 견인하며 집성당 창건 의의를 조명했다.

특히, 이날은 보령시불교사암연합회장 동국스님과 황의승 웅천읍장, 이종문 문화교육과장, 이영우, 명성철 전도의원, 이태형 웅천읍 이장협의회장, 김의수 도만호 김성우장군역사지킴이 사무국장, 임시재 풍천임씨정승공파 대종회장 김화식 선생 후손, 김용 예총사무국장, 김일태 민화향기 대표, 오병율 보성오씨효자비건립위원, 신현성 변호사, 유림등 100여명이 참석하여 웅천읍 주민의 뜨거운 관심을 보이며 박용서 전 서해문화포럼 회장의 사회로 진행 되었다.


그동안 묻혀있던 보령 웅천의 집성당(集成堂) 처럼 문화유산은 우리 계레의 삶의 예지와 숨결이 깃들어 있고 소중한 보배이자 인류문화의 자산이다. 문화재는 모두 민족 문화의 정수이며 자산이고 그 기반이라 하지만 유독 역사적 가치에 비해 이처럼 등한시 되어 있는 보령의 집성당(集成堂)은 지난 3.1운동 100주년을 정점으로 새롭게 주목받고 있지만 지역민들의 무관심속에 오직 몇몇 뜻 있는 인사들에 의해 보령의 정체성 확보와 웅천읍의 생명감을 찾기 위해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한편 집성당은 보령 독립운동의 산실이며 구심점으로 전국 유일 보령의 강학기관으로 존재했고 집성당은 현재 보령시 향토문화유적 2호로 1991년 등록 되었으며 보령시 웅천읍 대천리 산 14번지에 자리 하고 있다.

연혁으로는 1898년3월 화서학파 삼희당 윤석봉 선생의 주도하에 옛 남포현을 중심으로 보령, 서천, 홍성, 청양, 부여등 인근 지역유림들에게 통문(通文)을 발하여 350여명이 참가(동참록(同參錄 참조)하여 주자의 영정과 우암송시열의 사상을 집대성하여 기리고자 제례를 갖추기 위한 사당으로 시작 되었다.

1905년8월 남포군수 이석재(李錫宰)는 초가집에서 기와집으로 개축도 하였고, 당직1명 과 유사1명, 공납[호포와 환곡]과 잡세[도정과 무명잡세]등을 일체면탈(세금면제) 한다는 완문책자(完文冊子:이조때 관아에서 부동산 따위의 처분에 관해 발급하던 증명서) 를 발급하였다.

또한 후학들을 강학(講學)하기위한 수칸의 한화당(寒華堂)을 건립하였는데, 특히 이곳에서는 항일위정척사 사상을 강론 하였으며 지산 김복한 선생을 영향으로 1906년 민종식이 주도한 홍주의병에도 이곳출신 문도들이 많이 참가하였다.

1910년 11월 집성당 창건자 윤석봉은 홍주의거에 참여했다 피체되어 투옥으로 인한 지병이 악화되어 사망케 되었는데, 일제 강점기때는 민적부(호적부)에도 신고를 기피하여 무적자(無籍者)로 일생을 마쳤다,

1919년에는 집성당 배출인물중 옥재 백관형이 파리장서운동에 김지정과 참여 서명하였다. 특히 백관형은 1916년 만동묘에서 항일연설로 3개월간 옥고도 치렀고, 3.1운동에도 참여는 물론, 조선독립 애원서 작성서명 등등으로 피체되어 서대문 감옥에서 수형한 기록들이 남아있다.

아울러 1926(병인)년 8월에는 돈암이응복이 집성당 유지보수를 위한 속수계를 결성하여 석채례 제수나 기타 집성당 유지보수에 힘썼으며 1929(기사)년 2월 이교헌의 2차중수기가 있고 1957(창건후재정유)년 9월 임성순의 3차중수기가 있으며1991(신미)년12월10일 보령시향토유적 제2호(313-83-0612)로 지정됐다.

이후 집성당은 부동산등기등록번호=>3438-00612를 취득후 1993(공부자탄강2544계유)년 오재섭의 중수(4차)기에 의하면 김학현군수가 주축이 되어, 중수 단청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전한다.

그리하여 집성당은 단순한 주자, 송자(우암 송시열)를 모시고 제사만을 지내는 사우(祠宇)가 아니고, 항일의 병의 사상을 가진 보령 서천 홍성 청양 등 인근의 선비들이 모여 활동하던 곳으로 일제강점기에 지역의 유일한 정신적 지주역활을 한 곳으로 높이 평가 할만 하다.

특히 일제강점기에 윤석봉, 백관진, 유준근, 김복한, 유호근, 조구원, 신응선등 항일 유림들이 서로 교류하며 항일 의지를 심화(深化)하였던 곳으로서, 현재는 매년 2회 음력으로 2월과 8월중정일에 석채례(釋菜禮)을 올리며 옛 선열들의 숭고한 덕을 기리는곳으로서, 오늘날 후손들이 선조들의 애국심을 선양(宣揚)하는 장소로도 가꾸어 나가야 할 것이다.

초청 강사로 참여한 이해준 박사와 이영석 박사는 올해로 창건 125주년을 맞은 집성당의 창건부터 현재까지를 진단하며 집성당 경내에 유림들의 강학(講學) 장소였던 한화당(寒華堂)복원과 독립애국포장 유림들의 추모비 건립을 비롯하여 파리장서 서명비 등의 건립을 기원하고 오늘을 살아가는 시민으로서 나라 사랑에 대한 충성심 고양과 미래의 후손들에게 선현들의 애국활동의 산실(産室) 이었음을 전해주기 위해 보령의 최고의 자랑으로 정신문화 교육장으로 활용되기를 맺음말로 전했다.

한편, 제1회 집성당 학술대회를 지켜본 김완집 도유사는 오랜 역사를 이어온 보령 땅에는 소중한 문화유산이 살아 숨쉬고 도유사로서 평생 고향에서 소원을 이루웠다며 보령시민의 높은 관심으로 보령시민의 정신과 얼을 함께 계승하며 그동안 보령문화원을 중심으로 자료는 있었지만 이렇게 읍단위에서 전문 학술대회를 개최한데 김동일 보령시장과 보령문화재지킴이 봉사단을 비롯하여 시민들게 감사인사를 표하고 집성당 창건 정신과 독립운동의 역사적 평가를 충남도 및 대한민국의 자랑으로 만들고 싶다고 인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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