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10월 21일 코로나 이후 처음으로 기아청소년문화재지킴이의 공식 활동을 시작하다

코로나 이후 처음, 20여명의 청소년들과 학부모들이 참여하여 문화재 지킴이활동을 진행
벽진서원 처음 알고, 문화재 지키는 일 중요성 깨달아

김오현 선임기자 승인 2023.10.23 07:44 의견 0

코로나 이후 청소년과 학부모가 함께 하는 지킴이활동 단체사진(사진촬영 김오현)

2023년 10월 21일 광주광역시 서구 벽진서원에서 코로나 이후 3년만에 기아청소년문화재지킴이의 공식 활동을 시작하였다. 20여명의 청소년들과 학부모들이 함께 참석하여 벽진서원을 찾았고, 문화재 모니터링과 정화활동을 진행했다.


문화재 모니터링은 벽진서원의 건물과 유물, 시설물 등을 점검하고, 훼손이나 위험요소가 있는지 확인하였다. 청소년들과 학부모들은 벽진서원 내부의 건물과 유물, 주변 등을 꼼꼼히 살펴보았다. 정화활동은 벽진서원 주변의 쓰레기와 잡초를 제거하는 활동으로 배수로, 계단을 청소하고, 옹벽 사이에 자라는 잡초와 잡목들을 제거제거했다.

코로나 이후 3년만에 처음으로 진행하는 청소년문화재지킴이활동 진행 안내와 환영 인사를 하는 김오현 회장(사진촬영 이화길)

벽진서원 문화재 모니터링을 진행하는 이형만 부회장과 참석자들 사진1(사진촬영 문형진)


청소년들은 이번 활동을 통해 조금이나마 회재(懷齋) 박광옥(朴光玉)선생의 학덕과 절의정신, 애국충정 등을 알게 되었고, 문화재를 지키는 일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또한, 가족들과 함께 뜻깊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기아청소년문화재지킴이는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활동을 이어갈 예정이고 청소년들이 문화재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문화재를 지키는 일에 앞장설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다.

벽진서원 문화재 모니터링을 진행하는 이형만부회장과 참석자들 사진 2(사진촬영 문형진)

벽진서원 전경(사진제공 벽진서원)



▶ 벽진서원(碧津書院)

벽진서원은 임진왜란의 공신 회재(懷齋) 박광옥(朴光玉)선생의 영정과 위패를 모시는 서원이다. 사당과 학문의 전당인 강당 중앙의 벽진서원, 후손들의 보본(報本)정신을 새긴 숭본당(崇本堂), 모현당(慕賢堂)이라 하여 후학들의 추모도리를 담았다. 또한 회재유집목판(광주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3호)을 소장하고 후손들에게 선생의 학덕과 절의정신, 애국충정을 전승하는 교육장으로 선생의 유산과 종중의 뜻을 모아 서기 1999년 6월에 완공하였다.


1999년 운리영당은 도시개발로 인하여 훼손되었고 본손 종중에서 운리사(雲裏祠)로 재건하여 제향해오고 있다. 2017년 의열사 복원이 무산되자 유림 대표들과 학자들의 발의로 의열국전(義烈國典) 향유(鄕儒) 제향을 복원하고자 운리사를 벽진서원으로 개칭하였다.

참석한 청소년과 학부모들의 벽진서원 내의 정화활동 사진 1(사진촬영 이화길)



▶ 회재유집(懷齋遺集)목판(광주광역시 유형문화재 제 23호)

회재유집 목판(69매)은 회재 박광옥(1526~1593)선생의 유집을 1799년(정조23) 8대손 박성일이 편집하여 서문없이 목판본을 처음으로 간행하였고, 뒤에 1847년(헌종13) 7대손 박승언이 부록을 추가하여, 9대손인 박난혁(1807-1885)이 홍직필에 서문을 받았으나 목판본으로 판각되지 않은 상태이다. 1983년 회재유집을 중간하면서 홍직필의 서문과 김호영의 서문이 추가되고 강인환의 발문으로 종친회에서 발행한 회재유집이 현존하고 있다. 목판은 양면으로 판각되어 총 69매이다.


시는 기대승. 고경명, 김언거, 이항 등 수많은 교우들과 주고받은 것으로 이 중 만사와 친지들과 화답한 시, 각 지역 방문시의 감회를 시로 표현한 내용이 주를 이룬다. 풍영정 팔경시를 비롯한 무등산 증심사, 방장산(지리산), 불회사, 중흥사, 희경루, 선암역 등이다. 잡저(雜著)는 한문수양재이설과 오공설, 서(序)는 족보서, 선도향약서, 기(記)는 향교비음기, 봉서(封書)인 임진행재소 상소 등이다.

광주광역시 유형문화재 회재유집목판(사진제공 벽진서원)


부록(附錄) 하권(下卷)은 임인도내유사청정포상소문, 임인건사시유생상순찰사서, 하권(下卷)은 임인도내유사청정포상소문, 임인건사시유생상순찰사서, 의열사김충장공배향시제문, 의열사중수상량문, 청시상소, 행장, 묘표 등이다. 별부(別附)는 11편의 친필을 목판에 새긴 것으로 이 본문은 앞 시문의 내용 중에 있는 시들이다. 임진왜란 전후를 연결하는 시대사 연구와 박광옥의 교우 관계 및 인쇄기술 발사를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 회재(懷齋) 박광옥(朴光玉)1526년(중종21)~1593년(선조26)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음성(陰城)이며 자는 경원(景瑗), 호는 회재(懷齋)이다. 사예 곤(鯤)의 아들이며 전라도 광주에 세거(世居)하였고 10세 때 정황(丁潢)의 문하에 들어갔다. 1546년(명종1)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며, 광주 선도면(船道面, 현 서구 매월동)에 집을 지어 개산송당(蓋山松堂)이라 이름하고 문화생들과 함께 성리학을 연구하였다.

회재 박광옥선생 영정 (사진제공 벽진서원)


향약을 실시하고 기대승(奇大升), 박순(朴淳), 이이(李珥) 등과 교유 하였다. 1568년 광주목사 유경심(柳景深)을 도와 광주향교를 중수하고 학헌(學憲), 학규(學規)를 제정하였다. 1568년(선조1) 학행으로 천거되어 내시교관(內侍敎官)에 임명되었으며, 1574년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종부시주부(宗簿侍主簿)가 되었다. 운봉현감(雲峰縣監)이 되었을 때 황산대첩비(荒山大捷碑)를 세웠다. 1578년 전라도, 충청도의 도사(都事)를 거쳐 1579년 예조정랑(禮曹正郞), 1580년 지평(持平)이 되었으며, 그 뒤 성균관 직강(直講), 영광군수, 밀양부사를 역임하였는데 영광과 밀양에 송덕비(頌德碑)가 세워졌다. 뒤에 광주 전주의 교수와 사예(司藝), 사첨시정(司瞻寺正), 봉상시정(奉嘗寺正) 등에 재직하였다. 1589년 정여립옥사(鄭汝立獄事)가 일어나자, 전에 정여립의 이조정랑직 진출을 막은 이경중(李敬中)을 탄핵한 죄로 삭탈관직 당하기도 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는 신병으로 관직에서 물러나 있었는데, 고경명(高敬命), 김천일(金千鎰) 등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으며 의병도청(義兵都廳)을 세워 맹주(盟主)로 추대되었지만 고령과 노환으로 출전할 수 없게 되자, 의병도청을 설치하고 의병의 무기와 군량을 모아 조달하였다. 당시 전라감사 이광(李洸)의 무능을 탄핵하였으며 새로 목사에 부임한 권율(權慄)을 도와 많은 공을 세웠다. 의병활동의 공로로 다시 관직에 올라 나주목사로 재임하다가 돌아가셨다. 1620년(선조 35) 광주 벽진촌(碧津村)에 세워진 벽진서원(碧津書院)에 제향되었는데, 그 사당은 뒤에 사액 의열사(賜額 義烈祠)로 바뀌었다. 운봉(雲峰)의 용암서원(龍巖書院)에도 제향되었다.

참석한 청소년과 학부모들의 벽진서원 내의 정화활동 사진2(사진촬영 문형진)

참석한 청소년과 학부모들의 벽진서원 내의 정화활동 사진3(사진촬영 이화길)



기아청소년문화재지킴이는 광주광역시에 거주하는 청소년들이 문화재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문화재를 보호하는 일에 앞장서기 위해 기대한다. 이번 행사를 시작으로 앞으로도 다양한 문화재 보호 활동을 통해 청소년들에게 문화재의 소중함을 알릴 계획이다.


행사에 참여한 고2 문청연 학생은 "벽진서원에 대해 처음으로 자세히 알게 되었고, 문화재를 지키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어요. 앞으로도 문화재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또한 자녀와 함께 참여한 학부모는 "청소년들이 문화재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직접 활동에 참여하는 모습을 보니 뿌듯하고 앞으로도 청소년들이 문화재를 지키는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이번 기아청소년문화재지킴이의 공식 활동을 통해서 우리 지역 청소년들이 문화재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문화재 보호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는 데에 큰 의미가 있다. 앞으로 기아청소년문화재지킴이가 지역 청소년들의 문화재 사랑을 확산시키는 데에 기여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벽진서원 문화재지킴이 활동 사진들...(사진촬영 김오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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