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1월 12일, 대동문화재지킴이지도사회 회원들은 충남 서산으로 답사를 떠났다. 이번 답사 2탄은 서산9경 중 제2경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 제4경 개심사 등의 백제 유적지를 중심으로 진행되었으며, 아울러 정순왕후생가도 함께 살펴보면서 회원들의 아름다운 손길로 문화재 보존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되새기면서 답사를 진행했다.
▶ 서산 정순왕후 생가(충청남도 기념물)
서산시 음암면 유계리 한다리 마을 야산 아래에 동향하고 있는 ㅁ자형 목조 전통 기와집이 있다. 조선 효종때 문신으로 승지 충청감사(忠淸監査), 예조참의(禮曺參議), 황해도 관찰사 등을 지낸 학주 김홍욱이 효종과 친분이 있었는데 김홍욱의 효성이 극진 함을 알고 그의 부친인 김적(金積)에게 하사한 집으로 추정된다. 그후 이 가옥에서 김홍욱의 4대손인 김한구(金漢耉)의 맏딸로 정순왕후(貞純王后)가 출생한다.
정순왕후는 경주 김씨 김한구의 딸로 1745년(영조 21년) 충남 서산에서 태어났고, 아주 총명하고 결단력이 강한 여성으로 알려져 있다. 1757년(영조 33년) 영조의 정비 정성왕후 서씨가 세상을 떠나자 2년 뒤인 1759년(영조 35년) 6월 22일 창경궁에서 혼례를 올리고 15세의 나이로 51세 연상인 66세인 영조의 계비가 되었다.
정조가 죽자 정순왕후 김씨는 가문의 입장에 따라 정치적으로 노론 벽파를 적극 후원했다.
그녀는 선왕 영조의 유지를 계승한다는 명분으로 벽파의 인물들을 중용했다. 그 결과 정조가 구축했던 탕평정치의 기반이 무너지고 그녀의 친정인 경주 김씨 일파와 심환지를 필두로 하는 노론 벽파의 일당체제가 성립되었다.
정순왕후의 수렴청정 기간 동안 노론벽파는 권력의 중심에서 있었지만 정조의 탕평책 혜택을 받은 시파와 남인 세력은 피바람 속에 궤멸된다. 정순왕후는 남인들이 서학(西學)으로 받아들인 천주교를 이용하여 그들을 일소하고자 했다. 일찍이 정조는 ‘정학(正學)이 밝아지면 사학(邪學)은 저절로 종식될 것이다.’라며 천주교에 유연한 태도를 취했지만, 정순왕후는 천주교를 무부무군(無父無君, 어버이도 임금도 안중에 없을 만큼 행동이 막됨)의 패륜지당으로 몰아 가혹한 조치를 취한다.
1801년(순조 1년) 정순왕후는 오가작통법(五家作統法, 한 집에서 천주교도가 적발되면 다섯 집을 모조리 처벌하는 방식)을 실시하여 천주교를 근절하라는 하교를 내렸다. 오가작통법은 본래 범죄자 검거, 세금 징수, 부역 동원을 위해 다섯 가구를 한 통으로 묶었던 호적제도인데 이때부터 천주교도 색출방법으로 변질되었다. 그해 4월, 체포된 이가환, 권철신 등이 고문 도중 사망했고, 이승훈, 정약종, 최창현, 강완숙, 최필공, 홍교만, 홍낙민, 김건순 등이 서소문 밖에서 참수되었다. 이때 자수한 중국인 신부 주문모도 군문효수(軍門梟首, 죄인의 자른 목을 올빼미가 매달린 듯하게 군문 앞에 높이 매달던 일) 되었다. 주문모에게 세례를 받은 은언군 이인의 부인 송씨와 며느리 신씨 등이 사사되었다. 은언군은 강화도령 철종의 할아버지가 아닌가. 잘먹고 잘입고 한 시대를 좌지 우지한 정순왕후가 1805년(순조 5년) 1월 12일 61세를 일기로 창덕궁에서 승하한 뒤 김조순을 비롯한 시파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이로서 정순왕후에 기대어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했던 노론 벽파가 완전히 몰락했고, 안동 김씨 세도정권이 자리 잡게 된다.
▶서산 개심사((瑞山 開心寺)
개심사(開心寺)는 운산면 신창리에 위치한 충남 4대 사찰중의 하나로써 백제 의자왕 14년인 654년에 혜감국사가 창건하여 고려 충정왕 2년인 1350년에 처능대사에 의하여 중수되었다고 전하고 있다.
대웅전의 기단만이 백제 때의 것이고 건물은 조선 성종 6년(1475년)에 산불로 소실된 것을 조선 성종 15년(1484년)에 다시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보물 제143호인 대웅전은 창건 당시의 기단 위에 조선 성종 15년(1484년)에 중창한 다포식과 주심포식을 절충한 건축양식으로 그 작법이 미려하여 건축예술의 극치를 이루고 있다. 현재의 대웅전 목조건물의 연대에 대해서는 1941년에 해체공사를 실시하였을 때 발견된 묵서명에 의하여 성종 15년(성화 20년 갑진, 1484년)에 중창된 건물임이 판명되었다.
개심사 연못은 직사각의 기하학형 연못으로 전형적인 백제계 연못으로 부여 정림사지 백제 직사각형 연못이 그 원형이다. 연못가에 있는 경지(鏡池)라는 표석은 마음 비추고 마음 닦으라는 의미다. 가로로 걸친 외나무 다리를 건너면 곧바로 개심사 영역이다.
개심사의 보물로는 계초심학인문 목판(誡初心學人文 木板) 8판, 제143호 대웅전, 제1264호 개심사 영산회괘불탱, 제1619호 목조아미타여래좌상 등이 있으며 문화재로는 명부전, 심검당이 지정되어 있다.
또한 전국에 수많은 벚꽃 명소들 중에서 왕벚꽃 과 겹벗꽃도 유명 하지만 특히 전국 제일 청벗꽃 명소로 꼽히는 곳 입니다.
▶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瑞山 龍賢里磨崖三尊佛像)
종 목 |
국 보 |
명 칭 |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 |
지정일 |
1962.12. 20 |
소재지 |
충남 서산시 운산면 마애삼존불로 65 -13 |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가야산 계곡을 따라 들어가면 층암절벽에 거대한 여래입상을 중심으로 오른쪽에는 보살입상, 왼쪽에는 반가사유상이 조각되어 있다. 흔히 ‘백제의 미소’로 널리 알려진 이 마애불은 암벽을 조금 파고 들어가 불상을 조각하여 형성되었다.
연꽃잎을 새긴 대좌(臺座) 위에 서 있는 여래입상은 살이 많이 오른 얼굴에 반원형의 눈썹, 살구씨 모양의 눈, 얕고 넓은 코, 미소를 띤 입 등을 표현하였는데, 전체 얼굴 윤곽이 둥글고 풍만하여 백제 불상 특유의 자비로운 인상을 보여준다. 옷은 두꺼워 몸의 윤곽이 드러나지 않으며, 앞면에 U자형 주름이 반복되어 있다. 둥근 머리광배 중심에는 연꽃을 새기고, 그 둘레에는 불꽃무늬를 새겼다.
머리에 관(冠)을 쓰고 있는 오른쪽의 보살입상은 얼굴에 본존과 같이 살이 올라 있는데, 눈과 입을 통하여 만면에 미소를 띠고 있다. 천의를 걸치지 않은 상체는 목걸이만 장식하고 있고, 하체의 치마는 발등까지 길게 늘어져 있다.
왼쪽의 반가상 역시 만면에 미소를 띤 둥글고 살찐 얼굴이다. 두 팔은 크게 손상을 입었으나 왼쪽 다리 위에 오른쪽 다리를 올리고, 왼손으로 발목을 잡고 있는 모습, 오른쪽 손가락으로 턱을 받치고 있는 모습에서 세련된 조각 솜씨를 볼 수 있다.
반가상이 조각된 이례적인 이 삼존상은『법화경』에 나오는 석가와 미륵, 제화갈라보살을 표현한 것으로 추정된다. 본존불의 묵직하면서 당당한 체구와 둥근 맛이 감도는 윤곽선, 보살상의 세련된 조형 감각, 그리고 공통적으로 나타나 있는 쾌활한 인상 등에서 6세기 말이나 7세기 초에 만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 곳은 백제 때 중국으로 통하는 교통로의 중심지인 태안반도에서 부여로 가는 길목에 해당하므로, 이 마애여래삼존상은 당시의 활발했던 중국과의 문화교류 분위기를 엿볼 수 있게 하는 작품이라 하겠다.
대동문화재지킴이지도사회는 충청남도 서산 답사에는 회원 20여 명이 참여하여, 서산의 대표적인 간월암, 해미읍성, 해미순교성지, 정순황후생가, 개심사,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 등을 둘러보았다.
이번 답사 참가자들은 서산의 다양한 문화재들을 둘러보며, 한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 또한, 문화재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문화재를 지키기 위한 노력에 동참할 것을 다짐했다.
대동문화재지킴이지도사회는 앞으로도 다양한 답사 활동을 통해 문화재의 소중함을 알리고, 문화재 보존에 앞장설 계획이다.
🔳 참고문현
1. 이완섭, [문화관광 자료 ], 서산시청 홈페이지 , 2023.
2. 편세환, [서산문화재 자료 ], 서산문화원, 2023.
3. 최응천, [나만의 문화유산 해설사 자료], 문화재청,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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