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지킴이가 안동지킴이의 초청으로 안동지역 하회마을, 화천서원, 부용대 등 역사탐방 1탄

공동체 정신으로 마음의 근육을 키우다

김오현 선임기자 승인 2024.01.21 07:00 | 최종 수정 2024.01.21 11:09 의견 1
기아지킴이 하회마을 입구에서 단체사진(사진촬영 박정세)


기아지킴이 회원과 가족들을 모시고 안동문화재지킴이 초청으로 하회마을 - 화천서원과 부용대 - 소산마을의 삼구정과 청원루 - 내앞마을 백하구려 - 도산서원 - 임청각 - 봉정사 등 다양한 안동 문화재들을 살펴보고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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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회마을 고택 골목에서 추억사진 한컷과 양진당, 충효당 전경

풍산류씨의 시조 류절(柳節)은 고려 초에 수주(樹州 : 경기도 부평군)에서 호장(戶長)을 지냈다고 한다. 류절의 증손자 류백(柳伯)이 1290년(충렬왕 16년) 은사(恩賜)로 급제하여 전서(典書)를 역임하였다. 류종혜(柳從惠)가 조선 초에 공조전서(工曹典書)를 역임하고 낙향해 하회(河回)마을에 이거하였다.
풍산류씨가 하회마을에 정착하게 된 계기는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풍수지리적 요인이다. 하회마을은 낙동강 상류인 화천이 마을을 감싸 안고 흐르는 태극 모양 혹은 연꽃이 물에 떠 있는 형상으로 예로부터 좋은 땅으로 여겨져 왔다.
두 번째는 정치적 요인이다. 풍산류씨의 입향조인 류종혜는 고려 말 공조전서(정 3품 장관급)를 지낸 인물로, 조선 건국 이후에는 풍산현으로 낙향하여 정착하였다. 이는 조선 초기의 정치적 혼란을 피하고자 한 것으로 추측된다. 풍산류씨가 이곳에 정착하면서 하회마을은 더욱 번성하게 되었고, 이후 겸암 류윤룡(謙唵 柳雲龍, 1539~1601년), 서애 류성룡(西厓 柳成龍, 1542∼1607년) 등 당대의 명문가들이 배출되면서 하회마을은 조선의 대표적인 양반마을로 자리 잡게 되었다.

하회마을의 평화로운 모습과 그윽한 정취들...


▶안동(安東) 하회(河回)마을

종 목 국가민속문화재 제122호
명 칭 안동 하회마을
지정일 1984. 01. 14
소재지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


‘하회(河回)’라는 이름은 마을 주위를 감싸 안고 흐르는 낙동강의 모습이 ‘회(回)’자와 비슷하다고 하여 붙여졌는데, 풍수지리학적인 관점에서는 마을이 물 위에 떠 있는 연꽃의 형상과 같다 하여 길지(吉地)로 꼽는다. 이와 관련하여 과거 이 마을에서는 담장을 만들 때 돌을 섞지 않았다고 하는데, 마을이 물에 가라앉지 않기를 바라는 풍수의 관점에서 그렇게 한 것이라고 한다. 처음에는 김해허씨(金海許氏)와 광주안씨(廣州安氏) 중심의 씨족마을이었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점차 이들 두 집안은 떠나고, 풍산류씨(豊山柳氏)가 중심이 되어 터를 닦아 그 후 600년 동안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씨족마을이다.

안동 하회탈과 하회마을 그림같은 풍경들...
하회마을 기와지붕에 자란 와송과 마을 전경


고유의 '하회별신굿탈놀이'로 유명한 이 마을은 크게 남촌과 북촌으로 나눌 수 있으며 유서 깊고 제법 크기를 갖춘 많은 문화재를 잘 보존하고 있다. 특히 별신굿에 쓰이던 탈들은 국보로 지정되어 있는데, 그 제작 연대를 고려 시대로 추정하고 있어 마을의 역사가 뿌리 깊음을 짐작할 수 있다. 또한 대표적 가옥이라 할 수 있는 양진당(보물), 충효당(보물), 화경당 고택(국가민속문화재), 염행당 고택(국가민속문화재), 옥연정사(국가민속문화재), 겸암정사(국가민속문화재) 등 많은 건축들은 조선시대 사대부가의 생활상과 발달된 집 구조 등을 연구하는데도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사각사각 낙엽 밟는 기쁨과 담장 넘어 무엇이 있길래 저럴까?
하회마을 당산나무에 소원 달기와 우물속에는 무엇이 있을까?


2010년 7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한국인의 전통적인 삶이 그대로 전승되고 있는 생활공간이며, 주민들이 세대는 이어 삶을 영위하고 있는 '살아있는 유산'으로 세계인들이 지키고 이어가야 할 보편적 가치를 지닌 것으로 평가하여 하회마을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하였으며, 2022년 11월에는 마을에서 전승되어 오고 있는 '하회별신굿탈놀이'가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에 등재 되었다. '한국 정신문화의 수도'라 불리는 안동에 수많은 문화유산들이 있지만 그 중 가장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고, 찾고 싶어하는 곳이 하회마을이다.

화천서원 전경


▶ 화천서원(花川書院)

종 목 경상북도 기념물
명 칭 안동 화천서원
지정일 2009. 11. 23
소재지 경상북도 안동시 광덕솔밭길 72(풍천면)


안동 화천서원은 조선 중기 때 문신이자 학자인 류운룡을 모신 서원이다. 류운룡(柳雲龍, 1539~1601년)의 학덕을 흠모하던 지역 유림들이 1786년에 세웠다. 건립 후 겸암(謙菴) 류운룡(柳雲龍)을 주향으로 하고 동리(東籬) 김윤안(金允安)과 류성룡의 손자이면서 류운룡의 학문을 계승한 종손자인 졸재(拙齋) 류원지(柳元之)를 배향하고 100여 년 이상 춘추로 향사를 지내오다가 1871년 서원 철폐령에 의해 강당과 주사만 남기고 훼철됐다. 서원의 훼철을 아쉬워하던 후손들은 1966년부터 기금을 모아 사림들의 공론으로 1996년에 복설하여 지금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서원은 정문, 강당, 동재와 서재, 내삼문, 사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화천서원의 문루인 지산루에 올라 밖을 내다보면 넓게 펼쳐진 모래사장과 굽이쳐 흐르는 낙동강이 한 눈에 들어온다.
화천서원은 강당과 주사를 제외한 건물들이 1996년에 복설한 것으로 강당에서 19세기 이전의 오랜 양식을 부분적으로 찾아 볼 수 있으나 전체적으로 볼 때 건축적인 측면보다는 부용대 우측에 옥연정사와 함께 초점 경관을 이루고 있는 학문적 장소성이 강한 건축유구라는 점에 비중을 두어 기념물로 지정하기로 한다.

부용대에서 바라본 하회마을 뷰...


▶부용대(芙蓉臺)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 안동하회마을의 서북쪽 강 건너 광덕리 소나무 숲 옆에 있는 해발 64m인 절벽이다. 부용대는 '연꽃을 내려다보는 언덕'이라는 뜻이다. 이곳에서 내려다보면 하회 마을이 물 위에 떠있는 한 송이 연꽃처럼 보이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 태백산맥의 맨 끝부분에 해당하며 정상에서 마을 전체를 조망할 수 있고 절벽 아래로 흐르는 깊은 소와 강 건너 보이는 마을의 평화로운 모습과 그윽한 정취에 탄성이 절로 나온다.

하회마을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부용대 절벽 위에서 기아지킴이들... (사진촬영 고경임)


부용대(芙蓉臺)라는 이름은 중국 고사에서 따온 것으로 부용(芙蓉, 연꽃부ㆍ연꽃용)은 연꽃을 뜻한다. 처음에는 북애(北厓)라 했는데 이는 하회의 ‘북쪽에 있는 언덕’이라는 뜻이다. 아래로 낙동강이 굽이쳐 흐르는 부용대 절벽 아래에 류운룡, 류성룡 형제는 겸암정사와 옥연정사를 잇는 좁은 벼랑길이 있는데, 형제는 이 길을 서로 왕래하며 우애를 다졌고 학문에 힘쓰며 제자들을 가르쳤다고 한다. 하회마을의 옛 선비들은 부용대에서 매년 음력 7월 선유줄불놀이를 즐기고, 배를 띄워 시를 짓기도 했다.

하회마을에서 추억의 흔적을 남기는 기아지킴이들...


이번 역사탐방을 통해 안동의 오랜 역사와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안동지킴이 김호태 이사장과 관계자들에게 따뜻한 환대에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
앞으로도 기아지킴이와 안동지킴이는 지역은 다르지만 각자의 위치에서 우리 문화유산 지킴이로써 활동을 이어나갈 계획이다.

#하회마을 #김오현


🔳 참고문현
1. 김호태, [사람과 문화], (사 )안동문화지킴이, 2022~2023.
2. 권기창, [감성충전 안동여행], 안동시 홈페이지 자료, 2023.
3. 최응천, [나만의 문화유산 해설사 자료], 문화재청 모바일자료, 2023.
4. 권기찬, [하회마을 소개], 안동시 홈페이지,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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