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들의 지혜가 담긴 보물창고

미리벌민속박물관을 찾아서

장창표 논설위원 승인 2024.02.19 11:29 의견 3

시간 속으로의 여행은 언제나 가슴을 설레게 한다. 밀양시 초동면 초동중앙로 439(옛 범평초등학교), 1998년 개관한 미리벌민속박물관은 먼 옛날로의 시간여행을 가능하게 하는 소중한 민속문화 공간이다.

성재정 미리벌민속박물관장은 민속품 수집에 한평생을 바쳐 오늘날의 이 보물창고를 만들어 낸 주인공이다. 4,800여 평(坪)의 폐교를 리모델링 한 6개의 전시실에는 가구, 농경문화, 각종 생활용품 등 수백 점의 민속품이 전시되어 있어 우리 조상들의 숨결과 생활 속의 지혜(智慧)를 엿볼 수 있다. 성 관장은 “귀중한 전통 민속품이 사라져가는 것이 못내 아쉬워 1970년대부터 전국을 돌아다니며 수집하고 또 수집하기를 30여 년, 선조들의 삶을 혼자 보는 게 안타까워 민속박물관을 열었다”라고 말했다.

미리벌민속박물관 입구

미리벌민속박물관은 문화관광부에 등록된 개인 민속박물관으로, 조선 시대 사대부 가문과 여염(閭閻)집의 일상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손때묻은 정겨운 생활용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정문에는 귀중한 전시품을 지키려는 듯 돌장승 두 개가 입구에 서 있고, 각 전시실엔 가구, 목물(木物), 고문서, 비단, 조각보, 골무, 복식(服飾), 옹기, 농기구 등 각종 생활용품이 자리를 잡고 있다.

조선 후기에 사용했다는 아(亞)자 모양의 난간이 있는 평상(平床)이 눈길을 끈다. 그 옆에는 반닫이, 삼층장 등 수납 가구와 자개로 멋을 낸 빗접도 있다. 주로 부엌에서 사용했던 찬장, 뒤주, 교자상, 소반, 떡살 등 생활 도구들도 만날 수 있다. 이 밖에도 등잔, 화로, 재떨이, 담뱃대, 비녀, 거울, 다리미, 맷돌은 나이 드신 분들에게는 어린 시절의 추억을 떠오르게 하는 소중한 생활용품들이다. 한쪽에는 초등학교 사회 교과서에 나오는 각종 민속품도 한자리에 따로 전시해 학생들의 체험학습이나 현장학습의 장(場)이 되고 있다.

통로에 전시된 농기구들

이곳 민속박물관의 가장 큰 특징은 옛날 조상들이 사용했던 생활 민속품의 종류가 다양한 것은 말할 필요가 없고, 각종 전시물을 유리 상자 속에 넣지 않고 그대로 노출(露出)시켜 관람객들이 직접 민속품을 만져보고 느낄 수 있다는 점이다. 각 전시실의 특징을 간략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제1전시실의 주제는 사랑방 가구이다. 사랑방은 남자들의 공간으로 선비가 글을 읽기도 하고, 손님을 맞이하는 곳이다 보니 가구들이 단순하고 간결하다. 사랑방에 가장 잘 어울리는 반닫이로 문이 반만 닫힌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주로 책이나 문서, 옷 등을 보관했는데, 장식은 적지만 나뭇결을 살려 가구 자체의 배어난 아름다움이 돋보인다. 만석꾼이 엽전(葉錢)을 보관하던 돈궤는 문을 위로 연다고 해서 ‘윗닫이’, 문을 들어서 연다고 ‘들닫이’라 부르기도 한다.

제2전시실의 주제는 여자들이 사용하던 안방 가구가 주를 이룬다. 여러 문양 경첩으로 한껏 멋을 낸 가구들로 얼핏 봐서는 어느 것이 장(欌)이고 어떤 것이 농(籠)인지 구별하기 쉽지 않다. 장은 층이 분리되지 않고 하나로 구성되었고, 농은 각 층이 분리되는 형태를 말한다.

제3전시실의 주제는 부엌 가구이다. 입구에는 곡식을 보관하던 뒤주가 있는데, 물고기 모양 자물통을 채운 게 시선을 끈다. 한쪽 벽면에는 사기그릇과 소반, 소쿠리가 가득하다. 눈에 들어오는 게 소반(小盤)이다. 소반은 작은 상으로 둥그런 것과 네모난 것이 있다. 둥그런 것은 흔히 '개다리소반'이라 부르며 신분이 낮은 사람에게, 사각 소반은 신분이 높은 이들을 대접할 때 사용했다.

부엌 가구 전시실

제4전시실은 소품 가구 전시실이다. 가구 외에 일상에서 쓰이는 용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등잔, 화로, 재떨이, 담뱃대 등 남성이 주로 사용하던 것들과 비녀. 거울, 다리미, 맷돌 등의 여성용 소품들을 전시한 공간이다.

제5전시실은 초등학교 교과서 단원에 나오는 민속품으로 꾸며졌다. 떡 만들 때 문양을 새기는 떡살, 옛사람들의 밥그릇, 대나무로 엮은 닭장, 가마솥 등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던 물건들이 많다. 여인들이 시집갈 때 타던 가마와 그 옆에 작은 요강이 놓여 있다. 가마를 타고 갈 때 급한 볼일을 보기 위한 것이다.

제6전시실은 특별기획 전시실이다. 그동안 이곳 박물관 소장품을 중심으로 다양한 특별기획전을 열었는데, 2004년 「옛것이 아름답다. 우리 것이 아름답다.」 전을 시작으로 2015년 국립민속박물관·미리벌민속박물관 공동기획전으로 「목가구, 삶을 담다.」 전 등이 개최되었다. 지금은 2022년에 소정 박옥자 선생이 이곳에 기증(寄贈)한 「궁중 민화 기증 특별전」이 전시되고 있다.

이 밖에도 이곳에서는 다양한 체험활동을 할 수가 있다. 직접 부채를 꾸며보는 ’한지 부채 꾸미기‘에서부터 ’도자기 만들기‘, ’대나무 연필꽂이 만들기‘ 등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준비되어 있다. 운(運) 좋게 관람이 예약된 경우엔 방문객의 눈높이에 맞춘 관장님의 구수한 해설로 그 당시 우리 조상들의 생활방식에 대한 의문을 하나씩 쉽게 풀어나갈 수도 있다.

이곳에 전시된 우리의 민속품 하나하나에는 선조들의 삶과 지혜가 깃들여 있기에 이것들을 통해 우리 것의 소중함을 일깨우고 아름다운 우리의 전통문화를 계승할 수 있는 작은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소박한 바람을 가져본다.

K-헤리티지 뉴스 논설위원 장창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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