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양읍(潭陽邑) 향교(鄕校)로를 따라가다 보면, 고즈넉한 분위기 속에서 담양향교(潭陽鄕校)를 만날 수 있다. 그러나 향교로 진입하기 전, 길가 한쪽에는 특별한 표석이 서 있는데 바로 '운산 차성운 흔적비(雲山 車成雲 痕迹碑)'이다. 이 표석은 단순한 돌기둥이 아닌, 담양 향교리 생기 마을 사람들이 260년 동안 이어져 온 마을 주민들의 따뜻한 마음과 나눔의 정신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존재이다.
▶ 260년 전 보부상의 따뜻한 마음이 오늘날까지 간직한 마을 공동체 이야기
담양군 담양읍 향교리(원래 생기, 언골, 서원 마을로 구성됨) 생기마을에 위치한 운산 차성운 흔적비(雲山 車成雲 痕迹碑)에는 260년 전 보부상의 따뜻한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비문에 따르면, 차성운(車成雲)은 1762년(영조 38년) 영조가 사도세자(思悼世子)를 뒤주에 가두어 죽인 임오화변(壬午禍變)이 일어난 해에 평양에서 태어나 보부상으로 전국을 떠돌다가 담양 생기마을에 정착하여 1812년 생을 마감했다. 그는 유언으로 "내가 죽은 후 세세년년 흔적을 남겨달라"고 요청했고, 마을 사람들은 그의 뜻을 기리기 위해 벼를 심을 수 있는 토지를 매입하여 관리해왔다. 그리고 마을 주민들은 '평양영감'이라는 이름으로 계를 조직하고 제사를 지내왔으나, 6.25전쟁 이후 어려운 시기를 겪으면서 계 활동이 중단되기도 했다. 전쟁 후에도 주민들은 다시 계를 이어갔지만, 생계가 어려워 계비를 거두지 못하고 외부인의 가입을 제한하는 등 어려움을 겪었다. 그렇지만 후손들이 이어 받아 존치해 오고 있는 현실에서 평양영감 제물을 간소화하였고, 마을 주민들은 파제사(罷祭祀, 제사를 마침) 때 마을 사람은 물론 지나가는 나그네에게까지 음식을 나눠주는 등 훈훈한 정을 베풀었다고 한다.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마을 주민들은 차성운(車成雲)의 유언(遺言)과 보부상(褓負商, 봇짐장수와 등짐장수) 정신을 이어가기 위해 노력했고, 결국 제사를 폐지하고 흔적비를 세우기로 결정했다. 2014년 5월, 마을 주민들은 차성운의 흔적비를 건립하며 그의 정신을 영원히 기리기로 했다.
▶ 운산차성운흔적비(雲山車成雲痕迹碑) 비문 내용
“색향(色鄕)의 뜬 구름 타고 어찌 여기까지 왔소. 지금으로부터 250여년 전인 1762년경에 평양에서 출생하여 보부상(褓負商)으로 살아오면서 산을 넘고 물을 건너 정처없이 떠돌다 종착한 곳이 생기(生起)마을이요 한 많은 운명을 생기마을에서 1812년에 마감하였다. 가지고 있는 돈을 내놓으면서 유언으로 남긴 말이 ‘내가 죽은 후 세세년년 흔적을 남겨달라’는 말씀을 남기고 타계하셨다 한다. 그 유언을 받아 마을 책임자들께서 그 뜻을 영원히 존속하기 위해서 벼를 심을 수 있는 토지를 매입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었다. 마을 책임자들은 바로 평양영감(平壤令監) 명칭으로 계를 조직하고 존속해오다가 6.25사변이 일어나 그 이듬해부터 계 진행이 중단되었다. 마을 사람들은 이 난을 어떻게 피해 나갈까 하는 생각에 오금을 펴지 못한 채 살아가야 하는 세월이 바로 난중 그 세월이었다.
그 후 수년이 지나자 시국은 평정되어 흩어진 계원들이 재결합하여 중단된 계를 지속하였으나 전쟁 후 먹고 사는 것이 초근목피(草根木皮)에 의존할 지경인데 계비 확보는 언감생심이었다. 그리하여 계비거출을 하지 않기로 하고 외부에서 들어온 사람들을 계원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한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의 후손들이 이어 받아 존치해 오고 있는 현실에서 평양영감 제물을 간소화하였고 파제사(罷祭祀)에는 마을 사람들은 물론 지나가는 나그네까지 콩 한 조각이라도 나눠먹는다는 속설처럼 훈훈한 정을 베풀었다 하니 그 아름다운 마음을 그 누가 싫다 하였겠는가. 이것이 바로 이백여 년 이어받아온 지금의 정신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이리하여 영원히 지속하기 위해서 제사를 폐하고 흔적비로 대치한다.”
(서기 2014년 5월 일 생기마을 평양영감 계원 일동 삼가 세움)
운산차성운흔적비(雲山車成雲痕迹碑)는 단순한 비석을 넘어, 260년 동안 이어져 온 마을 주민들의 따뜻한 마음과 나눔의 정신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존재이다. 보부상 차성운(車成雲)의 유언을 시작으로, 마을 사람들은 그를 기리며 공동체를 이루고, 어려운 시기를 함께 극복하며 끈끈한 유대감을 이어왔다. 비록 제사는 폐지되었지만, 차성운의 숭고한 정신과 마을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은 흔적비를 통해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 참고문헌
1. 김성중, [기획특집/답사(6)담양오방길(누정길)], 담양뉴스, 2020.
2. 아지알파, [담양, 운산차성운흔적비], 네이버카페 성보풍수명리학회,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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