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7월 유엔무역개발회의, UNCTAD가 우리나라의 지위를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 그룹으로 변경했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1964년 UNCTAD 설립 이래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지위를 변경한 첫 사례가 됐다. UNCTAD는 개발도상국의 산업화와 국제 무역 참여 증진을 지원하기 위해 설립된 유엔 산하 정부 간 기구로 195개 국가를 회원국으로 두고 있으며, 우리나라는 1964년 3월 가입했다.
유구한 역사와 빛나는 전통문화로 한때 동방의 군자국으로 칭송되였던 한국이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으로 세계 최빈국으로까지 쇠락했다가 70년만에 선진국이 대열에 들어선 것은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울 만큼 한국인의 피땀어린 노력으로 성취한 자랑스러운 일이다.
2022년 문화체육관광부가 한국갤럽에 의뢰해 조사한 여론조사결과 한국인 스스로도 선진국이라고 느끼는 국민이 전체의 66%가 된다고 한다. 이 여론조사에 따르면, 한국과 한국문화에 대한 자긍심이 매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한국 대중문화 우수하다 응답비율 96.6%로 한류(일명 K-culture)에 큰 자부심을 갖고 있다.
또한 2019~2023년 국가이미지 조사에 따르면 대한민국의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외국인이 78.4%로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K-콘텐츠 수출액 역시 2022년 기준 역대 최고인 132억 달러를 달성해 긍정 평가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한국인에 대한 호감도’ 평가도 긍정이 74%로 전년(71.3%)보다 2.7%포인트 올랐다. 외국인들은 한국인에 대해 ‘부지런하다·성실하다’, ‘질서·규율을 잘 지킨다’, ‘활동적이다’ 등의 이미지를 떠올렸다고 한다.
과연 이대로 우리는 선진국 국민으로 만족스럽게 행복할 수 있을까. 부끄럽게도 우리 주변을 돌아보면 과연 한국이 문화선진국이 맞을까 회의적인 생각이 들 때가 많다. 흔히 ‘졸부’로 비하되는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갑자기 잘 살게 되었다고 주변을 살피지 않고 깔보거나 잘난채 하는 부류들이다. 그러나 갑자기 부자가 되어 바로 상류층으로 인식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부자가 되었다고 해서 아비투스(Habitus: 계층별 생활양식, 문화, 교양 등)도 갑자기 변할 리는 없기 때문에 기존 상류층으로부터 견제나 배척을 당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서양이 500여년에 걸쳐 이룩한 르네상스, 산업화, 민주화 등을 고도의 압축성장으로 단기간에 이룩한 대한민국은 어찌보면 졸부가 된 것이다. 진정한 선진국이 되려면 이에 맞는 선진 국민의식도 갖춰야 하지 않을까.
이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여 한국을 대표하는 도시, 수도 서울의 공공미술작품의 부실한 관리 실태를 꼬집고자 한다. 시대를 막론하고 그 나라의 문화적 성취의 정점을 찾고자한다면 예술작품을 보아야 한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오늘날 소중한 문화유산으로 가치를 인정받는 작품들도 고미술품이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필자는 그중에서도 예술적인 도시미관을 만드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는 공공미술작품의 문제를 이야기 하고자 한다.
잘 사는 선진국 답게 한국은 일정 규모의 건축물을 신축할 때 공공미술작품을 설치하게 하고 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구축·관리하는 공공미술포털(www.publicart.or.kr)에 의하면 문화예술진흥법으로 건축물미술품 설치를 규정한 1994년부터 현재까지 약2만4천점의 작품이 전국에 설치되었다. 매년 1천억원에 가까운 금액의 새로운 작품이 설치된다고 한다. 규모만 보면 과연 문화선진국이라 할만하다.
문제는 이 작품이 설치된 이후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작품선정과정과 작품성에 대한 논란도 있으나 오늘의 주제는 아니므로 다루지 않기로 한다.) 대부분의 작품이 부실하게 관리되고 있어서 오히려 잘 관리된 작품이 드문 지경이다. 매년 지자체에서 작품의 관리실태를 파악한다는데 실제로는 잘 관리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관리실태에 대한 문제 제기가 꾸준히 이뤄저 관련법령도 개선되고 지난 24년 7월에는 미술진흥법도 발효되었는데 왜 현실은 아직 이 모양일까. 진정한 문제는 어떤 법이나 제도의 부실이 아니라 선진국이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은 낙후된 시민의식에 있기 때문이다. 공공미술작품의 부실관리 실태를 통해 드러나는 진실은 한국인에게 바로 선진국민이 갖춰야할 교양이 부족하다는 사실이며 한국의 시내 중심가의 공공미술작품들이 이 사실을 소리없이 아우성하며 광고하고 있는 것이다. 코로나 이후 서울에 외국인 관광객이 부쩍 많이 찾아오는데 이런 작품들이 서있는 곳을 지날때마다 공공미술작품의 부실한 관리를 보면서 한국인으로써 부끄럽기 짝이 없다.
야외에 노출된 미술작품은 부식과 오염, 대기환경문제와 풍화에 따라 자연적인 손상이 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당연하게도 주기적이고 체계적인 관리가 필요하다. 자동차도 하다못해 한달에 한 번이라도 세차를 해야하는데 아름답게 보여야 하는 시각예술작품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이외에도 작품을 훼손하는 요인으로는 광고스티커 부착이나 아예 광고판으로 가리는 등의 행위, 낙서나 의도적인 파손 등의 인위적인 훼손이 되는 경우가 있다. 또한 조경수, 간판, 냉각팬 등 시설물로 작품을 가리거나 심지어 방치된 쓰레기 등 주변환경 부실관리 문제 역시 빼놓을 수 없다. 아예 작품이 구석진 공간에 방치되거나 망실되는 경우도 있다.
이제 몇몇 작품의 실례를 들어 반성의 시간을 가져보고자 한다. 수없이 많은 부실관리 작품의 극소수에 불과하며, 관리자나 소유자 누구 한 사람을 비난하고자 하는 의도가 아니라 문제의식을 갖지 못하고 방치하고 있는 선진국민 답지못한 우리 스스로를 반성해 보자는 뜻이다. 대부분의 작품이 제작 설치된 이후 한 번도 청소를 안한듯 관리가 부실하다. 이제부터라도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해서 공공미술작품을 유심히 들여다 보고 개선을 요구해주길 바란다.
이 작품은 무슨 사연인지 강남역 인근 빌딩사이에 철창 감옥에 갇혀 있다. 작품위치가 놀랍게도 서울 강남 번화가의 한복판이다. 이 여인상은 한국미술사에 큰 획을 그은 조각가 고 김영중 선생의 작품이라고 한다. 김영중 선생이 한국미술협회 이사장으로 재임시에 미술계발전을 위해 건축물미술품의 법제화에 앞장섰다고 하니 더욱 아이러니 하다. 동상이 제발 나를 꺼내 달라고 소리치고 있는 것만 같다. 누군가 나서서 꼭 빛을 보게 해주었으면 한다. 미술작품을 사랑하고 아끼는 선진국민 다운 소양이 절실히 필요하다.
앞서 문화체육관광부의 발표자료에서 보았듯이 한국인들은 스스로 문화자긍심이 강하고 교양의식이 높다고 한다. 특유의 빨리빨리 문화로 나쁜 점을 찾고 개선하는 것도 빠르다. 필자는 비록 현재의 공공미술작품의 부실한 관리사례를 꼬집어서 선진국의 위상에 맞는 시민의식과 문화적 교양을 갖추자고 강하게 문제를 제기하였지만, 전혀 비관적이지 않고 오히려 우리 한국인은 이 문제도 곧 남다른 해법으로 세계적인 모범사례로 문제를 해결하리라는 희망을 갖고 있다. 단지 여태까지는 대중문화에 대한 관심에 비해서 여타 다른 소외되고 있는 문화들에 대해서 문제인식을 못하고 있을 뿐이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때에 최근 공공미술의 체계적 유지관리를 추진하는 창업기업이 생겨났다니 바람직한 일이다. 얼마전 마포구 일진빌딩에 위치한 네덜란드 건축디자인그룹 MVRDV의 미술작품을 성공적으로 보수한 아트와나(artwana.com)가 대표적이다. 이런 기업들이 활동이 선진시민의식 함양을 위한 전국민적인 계몽운동으로 이어지고 공공미술유지관리의 세계적인 모범 사례를 만들어내어 진정한 문화선진국이 되길 기원한다.
ICPSCⓒ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