굶주림을 해결하기 위해 탄생한 현대의 구황작물 라면 이야기

- 1963년, 당시 10원이라는 저렴한 가격으로 서민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던 라면
- K푸드의 선봉장 역할을 하며 전세계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은 한국라면

김오현 선임기자 승인 2024.08.30 14:00 | 최종 수정 2024.09.01 19:18 의견 0

1963년 9월 15일에 대한민국 최초로 출시된 삼양라면의 모습(사진제공 삼양식품)

대한민국 최초의 인스턴트 라면은1963년 9월15일에 삼양식품(三養食品)에서 판매하기 시작하여 2024년 기준으로 60년째를 맞이 하였으며 출시 당시 국물 맛은 본래 닭고기 육수였으나 곧 쇠고기 베이스로 변경되었고, 현재는 훈제햄을 넣고 끓인 느낌인 햄맛 베이스로 정착되었다. 또한 당시 가격은 10원이었고 시간이 흐르면서 가격이 인상되었고, 라면에 대한 초기의 거부감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혼분식장려정책과 함께 소비가 급증했다. 특히 라면은 1980년대에 100원으로 한 끼를 해결할 수 있을 정도로 서민들에게 경제적인 식사로 자리잡았다. 오늘날 한국라면은 K푸드의 선봉장 역할을 하며 전세계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는 대표음식으로 성장하였다.

1963년부터 2014년까지의 삼양라면 포장 변천사

▶우리나라 최초의 라면 역사(歷史)

우리나라 사람들이 제일 좋아하는 음식 중에 하나가 라면이다. 이 라면이 만들어진 이유는 6.25 전쟁 후, 극심한 식량난에 시달리던 대한민국 사람들은 미국에서 받은 원조 밀가루를 통해 끼니를 해결해야 했다. ‘한국 라면의 아버지’이라 부르는 삼양식품(주) 전중윤(全仲潤) 사장은 남대문시장을 지나다 배고픈 사람들이 한 그릇에 5원하는 꿀꿀이죽(미군 부대에서 나오는 음식물 찌꺼기를 이용해 만든 잡탕의 일종이며 돼지 사료에 빗대 '꿀꿀이죽'이라 함)을 사먹기 위해 길게 줄을 선 모습을 본다.

1964년 5월 20일 경향신문의 '꿀꿀이죽을 아십 니까'의 기사 사진과 '한국 라면의 아버지' 고 전중윤 삼양식품 명예회장의 모습(사진제공 경향신문)


그리고 전 사장은 당시 동방생명(현 삼성생명) 부사장으로 일본 출장에서 우연히 라면을 접하게 된다. 이를 계기로 전중윤 사장은 서민들의 허기를 달랠 수 있는 해결책이라고 생각한 그는, 모든 것을 걸고 라면 사업에 뛰어들었다. 라면을 만드는 기계를 사기엔 비싸고 기계를 스스로 만들 수 있는 기술력도 없고 당시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였던 한국에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전중윤(全仲潤) 회장을 일본 라면 하나를 들고 당시 김종필 중앙정보부장을 찾아 가서 라면에 대해서 설명하고 서민들의 배고픔을 해결해야 된다고 설득 끝에 미국 농림부 차관의 일부인 5만 달러를 지원 받는다.

일본 묘조식품의 오쿠이 사장와 전중윤 삼양식품 명예회장, 최초 도입된 라면 생산기계(사진제공 삼양식품)

그 길로 일본으로 건너 갔지만 일본도 어렵던 시절, 라면 제조시설을 국교도 없는 한국에 선뜻 팔려고 나서는 사람은 없었다. 여러 곳을 수소문하다 전 사장은 묘조식품(명성식품) 식품의 오쿠이(奧井) 사장을 만나, 한국의 식량 사정을 이야기하며 도와달라고 청한다. 그렇게 해서 전 사장은 일본 현지에서 라면제조의 전 공정을 배우지만 일본인 기술자들은 끝내 면과 수프의 배합 비율은 가르쳐 주지 않아서 끝내 비율을 못 배우고 서울로 돌아오는 날, 오쿠이 사장은 비서실장을 시켜 공항에서 봉투 하나를 전해주었는데 비행기 안에서 뜯어보라는 그 봉투 안에는 기술자들이 펄펄 뛰며 비밀로 했던 면과 수프의 배합비율이 적혀 있었다. 그렇게 우여곡절(迂餘曲折) 끝에 1963년 9월15일에 삼양 ‘치킨라면’ 이란 이름으로 출시된다. 그러나 당시 일반인들에게 라면은 생소할 뿐이어서 초기 반응이 시큰둥했지만, 1960~70년대 정부의 혼분식장려정책(混粉食奬勵政策) 덕분에 점차 많은 사람들이 소비하게 되었다. 그 결과 1966년에는 240만 봉지, 1969년에는 1,500만 봉지로 급격하게 생산량이 증가했으며, 초창기 매출액의 300배에 달하는 성장을 이루었다. 가격은 1963년 출시 할때는 10원이었으며 이후 1970년에 20원으로, 1978년에는 50원, 1981년에는 100원으로 인상되어 한 끼 식사를 해결할 수 있었고, 라면은 단순한 식품을 넘어, 배고픈 국민들에게 힘과 위로를 주는 존재가 되었다. 전중윤 사장의 열정과 끈기 덕분에 탄생한 라면은 오늘날 우리 식탁에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음식이 되었다.

1970년대 구봉서선생과 곽규석선생의 '형님 먼저 아우 먼저' 및 안성댁으로 불렸던 강부자선생의 라면광고(사진제공 네이버 검색)
현재 한국에서 생산되는 약 500개 종류의 라면이 출시되고 마트매장에 진열된 다양한 라면 모습들..


라면은 단순한 식품을 넘어 한국인의 삶과 문화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존재로 자리매김했다. 고 전중윤(全仲潤) 회장의 열정으로 탄생한 라면은 6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국민들의 사랑을 받으며 한국인의 소울푸드로 자리잡았다. 라면의 성공 스토리는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 수 있다는 희망을 주며, 앞으로도 다양한 모습으로 진화하며 우리의 식탁을 풍요롭게 만들 것이다.

🔳 참고문헌

1. 지영준, [라면완전정복], 네이버 블로그 라면정복자피키, 2020.

2. 임화, [삼양라면의 역사], 네이버 블로그 궁금한 모든 것, 2023.

3. 신현숙, [63년 라면 외길 '삼양식품' '라면 신화' 전중윤 회장], 청년일보,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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