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했던 가을 단풍철이 지나고 높은 산엔 어김없이 회색빛 가지들만 햇살에 비치는 11월 말이다. 주말을 이용해 밀양시 단장면 감물리 용소(龍沼)마을에 있는 봉황(鳳凰)이 날아들었다는 상스러운 죽봉대(竹鳳臺)와 신선이 장기를 두었다는 신기한 장기판이 새겨진 바위를 찾아 나섰다.
단장면 감물리(甘物里)의 지명유래는 이곳의 샘물이 차고 달았다고 하여 감물(甘物)로 부르다가 일제강점기에 감물(甘勿)로 바뀌어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다. 감물리 마을로 가는 방법은 단장면 초입에서 안법 마을을 거쳐서 가는 길과 삼랑진읍에서 만어사 방향으로 가다가 오른쪽 산 고개(당고개)를 넘어서 가는 2가지 방법이 있다. 감물리의 남쪽 산기슭에 있는 용소마을은 이 부근에서 가장 큰 자연 마을이다. 마을 남쪽으로는 구천산(九天山, 630m)이 솟아 있고, 동남쪽 골짜기를 따라 당고개를 넘으면 삼랑진 우곡리(牛谷里)에 이른다. 용소라는 지명의 유래는 옛날 마을 앞에 깊은 늪이 있었는데, 그곳에 살고 있던 용(龍)이 물가로 나와 하늘로 날아가 버렸다는 전설과 용이 날아갔다는 마을 동쪽 산봉우리에서 해마다 가뭄이 들면 기우제(祈雨祭)를 지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지금도 이 마을 앞에는 연못이 하나 남아 있는데, 아무리 큰물이 지거나 가물어도 수량이 일정하다고 하여 용소(龍沼, 큰 샘)로 불리고 있다.
용소의 자연 마을로는 점골, 용소, 당고개가 있으며 예전에는 샛밭도 있었다. 샛밭 마을은 당고개에서 동쪽으로 약 2km쯤 떨어진 금오산 약수암 주변으로 첩첩산중이라 밖에서는 잘 보이질 않는다. 한때 이곳엔 만석꾼 임씨(林氏) 일족이 3대 부자로 살았다고 하는데, 6.25 전쟁 때 공비(共匪)들의 은신처가 되면서 밖으로 이주하게 되었다고 한다. 용소에서 약간 벗어나 지역에 있는 죽봉 마을은 대뱅이로 부르는데, 죽방(竹坊), 죽봉(竹鳳), 죽봉(竹峰)으로도 불린다. 이곳에는 품질 좋은 대(竹)가 많이 난다고 그렇게 불리는데, 예전에는 마을 주민들이 이곳의 대나무를 잘라 송지장에 내다 팔았다고 한다. 그래서 마을 뒷산을 죽봉산(竹鳳山) 또는 죽봉(竹峯)이라고 부른다. 이 마을에는 예전부터 밀성 박씨, 평산 신씨, 연주 현씨, 평해 황씨 등이 모여 살았는데 지금은 이사 가고 몇 집밖에 남지 않았다.
이 마을 앞에는 인공으로 쌓은 것 같은 경치 좋은 자연 석대(石臺)가 있는데, 이곳 대밭에 봉황(鳳凰)이 날아와 깃드는 곳이라 하여 죽봉대(竹鳳臺)라 부르고 있다. 봉(鳳)은 수컷, 황(凰)은 암컷인데 벽오동나무 위에서 살며 예천(醴泉, 나라가 태평할 때 단물이 솟는다는 샘)을 마시고 천년에 한 번 열리는 대나무 열매만을 먹고 산다고 한다.
죽봉 마을로 향하는 오르막 도로는 경사가 심하여 자동차도 요란한 엔진소리를 내며 낑낑거린다. 조금 더 오르니 왼쪽 산 중턱에 큰 바위가 내려다보고 있어 마치 이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守護神)처럼 느껴진다. 진입로가 좁고 가파르다 보니 운전에 신경이 곤두선다. 이런 상태로 한참을 오르니 대밭이 보이고 좁다란 오솔길이 눈에 들어온다. 죽봉대 초입에는 마른 낙엽들이 수북이 깔려있고 한 사람 정도 지날 수 있는 오솔길 끝에 죽봉대가 우뚝 솟아 있다. 아무리 봐도 신기하다. 두 개의 바위 위에 큰 바위 하나가 얹혀있으니 신선(神仙)이 올려놓은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죽봉대 바위 주위에는 여러 글자가 새겨져 있으며, 신선이 장기를 뒀다는 장기판도 그려져 있다. 바위에 새긴 장기판은 국내에서도 몇 곳이 없다. 단양팔경의 사인암(舍人巖) 밑 바위, 강릉의 바루봉, 거창의 양지리(인풍정), 함양의 남호리(청풍정), 남원의 대상리, 무주(은산리, 장덕리, 철목리), 안성의 선유암, 양산의 반룡대, 임실의 오지리, 제천의 방학리 등에서 발견되고 있다. 죽봉대 아래 바위에는 다음과 같은 글씨들이 새겨져 있다.
“密城人 朴炅台 昭和 2年 3月(밀성인 박경태 소화 2년 3월)”
“竹鳳臺 正三品 通政大夫 平海黃公 諱在顯(죽봉대 정삼품 통정대부 평해황공 휘재현)….”
박경태는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지만. 바위에 새겨진 소화(昭和) 2년은 일제강점기인 1927년으로 이 무렵에 새긴 것으로 짐작할 뿐이다. 황재현도 어떤 사람인지 알 수가 없으나 벼슬이 정3품 통정대부로 높은 신분의 당상관이다. 그의 아들 황종주(黃宗周)가 1852년에 태어나 1894년 진사시(進士試)에 합격한 것을 보면 19세기 초기 사람임을 알 수 있다.
죽봉대 정상에는 마을 주민들이 당제를 지내던 터가 남아 있고, 그 주위에는 당산나무로 보존되고 있는 큰 소나무가 있다. 지금은 대밭이 많이 없어지고, 7~8호의 민가가 남아서 꾸지뽕나무를 키우고 있다. 죽봉대를 비롯한 이곳 주변은 밀양에서도 잘 알려지지 않은 소중한 유적지(遺跡地)이다. 죽봉대의 유래나 지리적 위치 등으로 보아 우리가 모를 신비스러운 이야기가 깃들여 있을 것 같아, 좀 더 고증(考證)하여 역사·유적 관광자원으로 개발해도 좋을 듯하다.
K-헤리티지 뉴스 논설위원 장창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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