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춘곡(賞春曲)'으로 한국 문학사에 빛을 낸 정극인(丁克仁)

- 안빈낙도의 삶을 실천한 조선 선비, 정극인
- 조선 시대 문신 정극인, 최초의 가사 작품 '상춘곡' 지어

김오현 선임기자 승인 2024.11.23 12:09 | 최종 수정 2024.11.23 12:14 의견 2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칠보면 무성리 원촌 마을 에 있는 정극인 동상과 정극인의 초상화(사진촬영 오현)

조선 전기 문신이자 학자인 정극인(丁克仁)이 최초의 가사 작품인 '상춘곡(賞春曲)'을 지어 한국 문학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그의 호는 '불우헌'으로, 안빈낙도의 삶을 살며 후학 양성에 힘썼다. 젊은 시절 과거에 여러 번 낙방하고, 세종 대의 흥천사 중건에 반대하여 함경도로 귀양을 간 정극인(丁克仁)은 이후 처가가 있는 태인에 들어와 정자 불우헌(不憂軒)을 짓고 은거했다. 이 시기에 그는 '상춘곡(賞春曲)' 외에도 '불우헌가(不憂軒歌)', '불우헌곡(不憂軒曲)' 등 다수의 작품을 남겼다. 특히 최초의 가사(歌辭) 작품인 '상춘곡(賞春曲)'을 통해 한국 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으며, 안빈낙도의 삶을 실천하며 후학들에게 귀감이 되었다.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칠보면 무성리 원촌 마을에 있는 정극인 동상, 태산선비문화사료관 등을 살펴보는 기아국가유산지킴이 회원과 가족들 모습

▶ 최초 가사 '상춘곡(賞春曲)'을 지은 정극인(丁克仁)

정극인(丁克仁, 1401~1481)은 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학자, 본관은 압해정씨(押海丁氏, 영광정씨), 자는 가택(可宅), 호는 불우헌(不憂軒)이다. 경기도 광주(廣州) 두모포리 태생인데 처가가 있는 전라북도 태인현(泰仁縣) 고현동에서 기거하였다. 1429년(세종 11) 생원시에 합격하고 여러 번 과시에 응하였으나 실패하였다. 1437년 세종이 흥천사(興天寺)를 중건하기 위하여 대규모 불사를 일으키자 태학생(太學生)을 이끌고, 그 부당함을 항소했다가 함경도로 귀양을 가게 된다. 이후에는 다시 태인으로 낙향하여 불우헌(不憂軒)이란 정자를 짓고 문인으로서의 삶과 인근의 자제들을 가르치는 일에 전념한다. 뒤늦게 성균관의 천거를 받아 광흥창 부승(廣興倉 副丞)으로 출사했다가 1453년(단종 1) 문과에 급제하여 1469년(예종 1) 사간원 정언(司諫院 正言)에 이르렀으나 단종이 왕위를 찬탈당하자 사직하고 고향에서 후진을 가르쳤다.

1472년 교육에 힘쓴 공로로 뒤늦게 삼품 교관(三品 敎官, 일정한 직무 분담이 없는 벼슬, 명예직)이 내려지자 감격하여 불우헌가와 불우헌곡을 지었다.최초의 가사작품 ‘상춘곡(賞春曲)’, 단가 ‘불우헌가(不憂軒歌)’, 한림별곡체 ‘불우헌곡(不憂軒曲)’ 등을 남기고 안빈낙도(安貧樂道)하면서 81세로 별세하였다. 예조판서(禮曹判書) 겸 예문관대제학(藝文館大提學)에 추증(追贈)되었으며, 태인(泰仁) 무성서원(武城書院), 고흥 안동사(雁洞祠)에 배향(配享)됐고 그가 불우헌파를 열었다. 두 아들을 두었는데 장남 삼준(三俊)이 창원으로, 차남 칠현(七賢, 27세손)이 고흥으로 이거해 고흥 입향조(入鄕祖)가 되었으며, 조선 수군 판옥선의 아버지이자 충무공 이순신(忠武公 李舜臣)의 멘토였던 정걸장군(丁傑將軍)이 5대손인 내손(來孫)이다.

불우헌집의 상춘곡, 시비, 정읍시 태인면 원촌마을 골목길에 있는 정극인의 벽화, 정극인의 묘지 전경(사진제공 네이버 검색)

▶ 최초 가사 ‘상춘곡(賞春曲)’

가사(歌辭)는 조선에서 시조와 함께 유행했던 문학 양식으로, 가사 문학이라고도 부른다. 가사의 발생도 어느 때부터인지 그 시대를 확정하기는 어려우나, 지금까지의 통설은 조선 성종 때 정극인(丁克仁)의 상춘곡(賞春曲)을 그 효시[최초의 가사작품을 고려말 나옹화상(懶翁和尙)의 '서왕가(西往歌)'로 보는 견해도 있음]로 삼고 있다. 이렇게 상춘곡에서 본격적 궤도에 오른 가사 문학은 차천로(車天輅)의 강촌별곡(江村別曲), 오세문(吳世文)의 역대가(歷代歌), 송순(宋純)의 면앙정가(俛仰亭歌) 등을 거쳐 정철(鄭澈)과 후기의 박인로(朴仁老)에 걸쳐 대성하니 이른바 가사 문학의 황금 시대를 이루었다. 상춘곡(賞春曲)은 가사 문학의 효시가 되는 작품으로 불우헌집[不憂軒集, 조선 정조 때 정극인의 후손 정효목(丁孝穆)이 정극인의 글을 모아 엮은 문집]에 실려 전한다. 이는 작가가 태인(泰人)에 돌아가 살 때의 봄의 경치를 읊은 것으로, 속세를 떠나 자연에 몰입하여 봄을 완상하고 인생을 즐기는 지극히 낙천적인 노래이다. 형식은 운문(韻文)이면서도 산문(散文)에 가깝다는 점 등에서 가사문학의 특징을 알 수 있다. 내용은 서사(序詞)·춘경·상춘(賞春)·결사 4분단으로 구성되었는데, 제1단은 산림에 묻혀서 자연을 즐기는 자신을 풍월주인(風月主人)으로 노래하였고, 제2단은 봄경치를 완상하며 흥취에 젖어든 정황을, 제3단은 산수구경을 하며 술에 취한 즐거움을, 제4단은 자연귀의와 안빈낙도를 노래하였다.

수간모옥(數間茅屋)을 벽계수(碧溪水) 앏픠 두고,

송죽(松竹) 울울리(鬱鬱裏)예 풍월 주인(風月主人) 되어셔라.

▶ 초가 몇 간을 푸른 시냇가 앞에 지어 놓고,

소나무 대나무 울창한 숲속에서 풍월 주인이 되었도다. - <상춘곡> 가사 일부

2019년 기아국가유산지킴이 회원과 가족들이 "국가유산지킴이날" 행사 참여와 태인지역 문화유산 무성서원과 피향정, 무성리 원촌 마을에 있는 정극인 유적지 등을 답사했던 사진 1
2019년 기아국가유산지킴이 회원과 가족들이 "국가유산지킴이날" 행사 참여와 태인지역 문화유산 무성서원과 피향정, 무성리 원촌 마을에 있는 정극인 유적지 등을 답사했던 사진 2

정극인(丁克仁)은 단순히 조선 시대의 문신을 넘어, 한국 문학사에 큰 획을 그은 인물이다. 특히, 최초의 가사 작품인 '상춘곡(賞春曲)'을 통해 한국 문학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상춘곡(賞春曲)'은 자연 속에서 봄을 만끽하며 삶의 여유를 노래한 작품으로, 조선 가사 문학의 효시(嗃矢)로 평가된다. 이 작품은 자연과 인간의 조화, 안빈낙도(安貧樂道)의 삶 등 조선 시대 사대부(士大夫)들의 이상적인 삶을 반영하며, 후대 가사 작품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 참고 문현

1. 이완우, [한글 가사가 처음 쓰인 곳,한글

문화의 터전이었네], OhmyNew's, 2024.

2. 얼쑤, [가사 상춘곡(歌辭 賞春曲)], 얼쑤의 허튼 발림, 2024.

3. 위키백과, [가사(歌辭)문학], naver me,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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