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壬辰倭亂)은 우리 민족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지만, 동시에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수많은 영웅들을 탄생시켰다. 그중에서도 진무성(陳武晟) 장군은 충무공 이순신(忠武公 李舜臣) 곁에서 맹활약했지만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 중에 한 사람으로 나라를 지키는데 헌신한 인물이다.
진무성(陳武晟) 장군은 1566년 전라남도 고흥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무예를 익히며 용맹을 떨쳤다.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이순신(李舜臣) 장군 휘하에서 활약하며 옥포해전(玉浦海戰), 당포해전(唐浦海戰) 등 여러 해전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다. 그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전라남도 고흥군 두원면 신송리에 무열사(武烈祠)가 세워졌다.
▶ 진무성(陳武晟)장군의 삶과 업적
진무성 (陳武晟, 1566 ~1638)장군의 본관은 여양(驪陽, 현 충남 홍성군), 자는 사규(士赳), 호는 송계(松溪)이며 고려조의 문인으로 유명한 진화(陳澕)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증참판 진인해(陳仁海)이다.
어려서부터 부모에게 효도하고 의협심이 많으며, 글을 배우면서도 무예를 좋아하였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전라좌도수군절도사 (全羅左道水軍節度使) 이순신(李舜臣) 휘하의 군관으로 있으면서 옥포(玉浦)·적진포(赤珍浦) 등의 해전(海戰)에서 사도첨사(蛇渡僉使) 김완(金浣) 등과 더불어 많은 왜병을 참획(斬獲, 베어 죽이거나 사로잡음)하였으며, 그 해 6월 당포해전(唐浦海戰)에서 중위장 권준(權俊)이 쏜 화살에 맞아 왜장(도쿠이 미치유키)이 쓰러지자 첨사(僉使) 김완(金完)과 함께 적선에 올라 적장인 도쿠이 미치유키(得居通幸)의 목을 베고 적선을 불태우는 등 이순신(李舜臣)이 장계에 기록할 만큼 큰 공을 세우기도 했다. 또한 1593년 6월 제2차 진주성 싸움이 한창일 때 현장의 전세를 탐지하기 위해 단신으로 잠입한 일이 있었다. 이때 변복으로 왜장을 자칭한 후 적진을 뚫고 들어가 의병장 김천일(義兵將 金千鎰) 등을 상견(相見)한 뒤 돌아오는 길에 또 왜병 여러명을 참살함으로써 이순신(李舜臣)으로부터 맹장(猛將)이란 칭찬을 들었다.
1597년 원균(元均)이 이순신을 대신하여 통제사가 되고 적의 재침으로 수군이 열세에 몰렸을 때에도 동요하지 않고 화공으로 적선을 무찔러 애국충절의 기개를 보였다. 뒤에 임진왜란의 전공으로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에 책록되었으며, 34세가 되던 1599년에 비로소 별시(別試) 무과에 급제하고, 유원진첨사(柔遠鎭僉使)·경흥부사(慶興府使)·통제영우후(統制營虞候) 등의 무관요직을 두루 거쳤다.
1623년(인조 1) 경상도도호부사, 1627년(인조 5) 구성부사(龜城府使)를 지낸 뒤 1638년(인조 16) 향리에 돌아와 7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사후에 바로 호조참판(戶曹參判)에 추증되었다가 1647년(인조 25)에 호조참판겸 오위도총부총관(戶曹參判兼五衛都摠府摠管)이 가증(加增)되었다.
▶ 고흥 무열사(高興 武烈祠)
종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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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기념물 |
명 칭 |
고흥무열사 |
지 정 일 |
1981년 10월 20일 |
소 재 지 |
전남 고흥군 두원면 신송리 540 |
무열사(武烈祠)는 임진왜란때 충무공 이순신 휘하에서 뛰어난 무용을 떨친 맹장 진무성장군(陳武晟將軍, 1566 ~1638)의 본관은 여양(驪陽), 자는 사규(士赳), 호는 송계(松溪)이며 충의와 공덕을 추모하기 위해 1826년 (순조26)에 호남 유림의 발의와 영남 유립의 협찬으로 당시 흥양현인 대서면 상남리에 용강사(龍岡祠)로 창건하였고, 1868년(고종5)에 서원철폐령으로 용강사(龍岡祠)는 훼철되어 1882년(고종19) 후손들의 노력으로 현위치(전라남도 고흥군 두원면 신송리 531번지)에 사우를 부설 이원하면서 명칭을 무열사(武烈祠)라 개칭하고 장군의 영정을 이안(移安)하였다. 1941년 대대적인 중건이후 1971년에 국고보조를 받아 또 한차례 중수를 거쳤으며 1981년에 전라남도 지방문화재기념물 제58호로 지정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무열사(武烈祠)에 남겨진 유물로는 진무성 장군이 사용했던 칠성보검(七星宝劍, 검신 한면에 북두칠성이 은상감 되어 있고 용문양이 새겨져 있음), 일산(日傘, 햇볕을 가리기 위하여 세우는 큰 양산) 등의 유물과 함께 다양한 고문서들이 보존되어 있다. 이러한 유물들은 임진왜란 당시의 역사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진무성(陳武晟) 장군은 임진왜란이라는 위기 속에서 나라를 위해 헌신한 알려지지 않은 영웅이다. 그의 숭고한 정신은 오늘날에도 우리에게 귀감이 되고 있으며, 고흥 무열사(高興 武烈祠)는 단순한 사당을 넘어, 우리 역사의 소중한 유산을 간직한 곳이다. 고흥 무열사(高興 武烈祠)를 방문하여 진무성(陳武晟) 장군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고, 우리 역사의 소중함을 되새겨 보는 것은 어떨까?
🔳 참고 문현
1. 진정용, [증보 무열사지],무열사, 2001.
2. 권영한, [여양진씨], 청남 권영한의 네이버 블로그, 2014.
3. 최응천, [고흥무열사], 국가유산청,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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