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효와 예절, 학문을 숭상한 전의예안이씨 가문의 빛낸 인물들...(사진제공 네이버검색, 전의예안이씨 화수회 문중)

전의예안이씨(全義禮安李氏)는 고려말부터 조선 시대에 걸쳐 뛰어난 인물들을 배출하며 명문가의 반열에 올랐다. 충효(忠孝), 예절(禮節), 학문(學文)을 중시하며 국가와 사회에 크게 기여했으며, 특히 문과와 무과를 넘나들며 다양한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고려 시대 몽골 침입에 맞서 싸운 이천(李阡), 문장과 시에 능했던 이혼(李混), 고려 말 조정에 여러 차례 등용된 이언충(李彦沖), 효심이 지극했던 이정간(李貞幹) 등이 있다. 조선 시대에는 이천(李蕆)이 과학기술 발전에 크게 기여했으며, 이정란(李廷鸞)은 임진왜란 때 나라를 위해 헌신했다. 또한, 이간(李柬)은 학자로서 낙론을 형성하며 조선 학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 대표적 인물(代表的 人物)

전의예안이씨(全義禮安李氏)는 조선 시대에 들어와 더욱 번성하며 명문가의 반열에 올랐다. 특히 고려의 이천(李阡), 이혼(李混), 이언충(李彦沖), 이정간(李貞幹), 조선의 이천(李蕆), 이정란(李廷鸞), 이간(李柬) 등 수많은 인물이 문과에 급제하고 고위 관직에 올라 조선 사회에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이들은 충효, 예절, 학문 등을 중시하며 가문의 명예를 드높였고, 후손들에게 귀감이 되었다.

전의예안이씨 중시조인 응양군대장군 이천장군, 이천장군을 기리는 우리나라 최초의 국산 잠수함인 "이천함", 몽골군을 격퇴하는 전투도의 모습


◾️동암수공(東巖叟公) 이천 (李阡)

고려후기 응양군대장군(鷹揚軍大將軍)을 역임한 무신으로 1256년(고종 43) 6월 몽골 제6차 침입군을 막기 위하여 수군 200여명을 인솔하고 남도로 내려가 온수현(溫水縣, 지금의 충청남도 아산)에서 적군 수십명을 죽이고 납치된 백성 100여명을 구하였다. 1992년 제작한 1,200t급 우리나라 최초의 국산 잠수함인 "이천함"은 고려말 대몽 항쟁기 온양을 점령하고 있던 몽골군을 격퇴하기 위해 전선 20여척과 수군 200여명을 이끌고 아산만을 통해 상륙작전을 감행하여 몽골군을 격퇴했던 이천(李阡) 장군의 업적을 기리며 명명 되어진 잠수함 이름이라고 한다.

중시조 7세손 이천과 세 아들의 사적을 기록하여 세운 비, 예안이씨 족보, 고려사 열전에 나오는 예안이씨 시조 이혼의 기록


◾️ 문장공(文莊公) 이혼(李混)

이혼(李混)은 시조 이도(李棹)의 8세손으로 1268년(원종 9) 17세로 과거에 급제하여 충선왕(忠宣王)까지 섬기면서 여러 벼슬을 역임하고 첨의정승(僉議政丞)을 지냈다. 호는 몽암(蒙菴)이고 시문에 능하고 단구(短句, 자수가 적은 글귀)에 더욱 재주가 있어 장·단구 몇 편의 시집이 전하고 있고 일찍이 영해부(寧海府)로 좌천되어 바다 가운데 뜬 뗏목을 가지고 무고(舞鼓, 궁중의 잔치 때에 춤과 노래에 쓰던 북의 하나)를 제작하였는데, 현재까지 악부(樂府)에 전하고 있다고 한다. 아울러 국가에 공훈(功勳)하여 예안백(禮安伯)에 봉군(封君)되었으며, 또 그의 손자(孫子) 이익(李翊)이 예안군(禮安君)에 봉해져 예안 이씨를 본관으로 삼으면서 예안 이씨가 탄생했다.

충렬(忠烈)·충선(忠宣)·충숙(忠肅)·충혜왕(忠惠王)의 4대에 걸쳐 벼슬한 명신인 전의예안이씨 9세손 문의 이언충 영정


◾️ 문의공(文義公) 이언충(李彦沖)

고려 고종 때의 장군 이천(李仟)의 손자로서 시호는 문의(文義), 자는 입지(立之), 호는 운재(芸齋)다. 그는 충렬왕 18년(1292년) 사마시에 뽑혔고, 1294년 문과에 급제하여 내시(內侍)에 속하였다가 군부좌랑(軍簿佐郎, 병부 정6품)에 승진되었다. 후에 대사성(정3품) 등을 역임했고 고려 충숙왕 8년(1321년)에 하정사(賀正使)로 원나라에 갔으며, 집의(執義, 사헌부의 종3품)를 거쳐 벼슬이 광정대부(匡靖大夫)에 이르렀다. 충렬(忠烈)·충선(忠宣)·충숙(忠肅)·충혜왕(忠惠王)의 4대에 걸쳐 벼슬한 명신이며 정당문학(政堂文學)·예문관대제학(藝文館大提學) 등을 지냈다.

어머니 생신 때 색동옷을 입고 춤을 추는 모습과 효심이 지극한 아름다운 이야기를 아시고 세종대왕이 벼슬과 가훈을 내려주셨다고 함


◾️ 효정공(孝靖公) 이정간(李貞幹)

이천(李阡)의 현손(玄孫, 고손자)이며 이언충(李彦沖)의 재종손(사촌 형제의 손자)으로 세종 때 강원도관찰사(江原道觀察使)를 지내고 노모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여 중추원사(中樞院使)에 임명되고 왕으로부터 사연(賜筵, 나라에서 잔치를 베풀어 주는 일) 및 궤장(几杖, 국가에 공이 많은 늙은 대신에게 내려 주던 방석이나 지팡이)을 하사받았다. 이정간(李貞幹)의 어머니가 102살까지 사셨는데 어머니 생신 때가 되면 생신을 잘 차려드리고 색동옷을 입고 춤도 추면서 노모를 극진히 봉양하였다. 이에 세종대왕이 정2품인 중추원사(中樞院使)로 벼슬을 높이고 "가전충효 세수인경(家傳忠孝 世守仁敬)" 여덟 자의 어필(御筆)을 내려, 오늘날 전의 이씨 문중 후손들은 이 문구를 가훈으로 전하면서 나무로 새겨 족보 첫머리에 수록하고 있다.

장영실(蔣英實), 김조(金銚) 등과 함께 각종 천문학 기계와 화포 따위를 제작하여 과학 발전에 기여한 무신이자 과학자인 익양공 이천장군


◾️익양공(翼襄公) 이천(李蕆)

이천(李蕆)은 조선전기 충청도 병마도절제사(兵馬都節制使), 평안도 도절제사(都節制使) 등을 역임한 무신이자 과학자이다. 1393년(태조 2) 17세의 나이로 별장이 되었고, 1402년(태종 2) 무과에 급제했다. 세종 때는 왜구 척결에 공을 세워 충청도 병마도절제사로 임명되어 병선 제작에 힘썼다. 장영실(蔣英實), 김조(金銚) 등과 함께 대소 간의, 앙부일구 등의 해시계와 혼천의를 제작했고, 경자자(庚子字), 갑인자(甲寅字)를 만들어 인쇄술의 발달에 공헌하고, 각종 천문학 기계와 화포 따위를 제작하여 과학 발전에 기여하였다.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 이정란의 공적을 기리는 사당인 충경사 전정


◾️충경공(忠景公) 이정란(李廷鸞)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공을 세웠다. 1592년 임진왜란때 왜군이 웅치 전투에서 관군과 의병을 무찌르고 전라도에 침입하자 64세의 노구로 부민을 거느리고 전주성을 지켰고 이 공으로 태상시첨정(太常寺僉正)에 올랐고 군기시정(軍器寺正)을 거쳐 수원 부사와 공주목사(公州牧使)가 되었으나 진휼과 농정이 허술하다는 이유로 파직되었다. 1597년 정유재란(丁酉倭亂) 때에는 왜군이 전주성을 포위하여 큰 혼란이 일어나자 수성부장(守城副將)이 되어 전주성을 지키다가 전주부윤(全州府尹) 이 죽자 전주부윤(全州府尹) 겸 삼도소모사(三道召募使)로 제수되었다.

외암마을의 대표적 학자 이간(李柬) 선생의 묘지, 비석 및 제사 모습


◾️ 문정공(文正公) 이간(李柬)

조선 영조 때의 문신으로 학자로 자는 공거(公擧), 호는 외암(巍巖)·추월헌(秋月軒)이다. 강문팔학사(江門八學士, 조선 숙종 때 권상하의 문하에 있던 여덟 사람의 유학자)의 한 사람으로 인(人)·물(物)·성(性)은 모두 같다는 인물성동론(人物性同論)을 주장하고 낙론을 형성하였다. 문집으로 외암유고(巍巖遺稿)가 있다.

전의예안이씨(全義禮安李氏)는 고려 말부터 조선 시대에 걸쳐 뛰어난 인물들을 배출하며 명문가의 반열에 올랐다. 무신(武臣), 문신(文臣), 과학자(科學者)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하며 국가와 사회 발전에 기여했고, 충효(忠孝)·예절(禮節)·학문(學文)을 중시하는 가풍을 세워 후손들에게 귀감이 되었습니다. 특히 고려의 이천, 이혼, 이언충, 이정간, 조선의 이천, 이정란, 이간 등은 각자의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기며 가문의 명성을 드높였다.

🔳 참고문헌

1. 그링자, [전의이씨 예안이씨 시조 이도 사당과 묘지], 네이버블로그 'C4 헤리티지캠핑', 2021.

2. 전의이씨부정공파TV, [역사다큐멘터리 천년 가문의 뿌리를 찾다], 전의이씨부정공파종문회, 2023.

3. 春和, [전의·예안 이씨 화수회 문중의 역사], 전의·예안 이씨 화수회, 2024.

4. 신민식, [한국주요성씨 전의(全義) 이씨], 세계성씨연맹,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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