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산군의 괴강어귀에 새워진 취묵당은 충청북도 문화재 자료로 조선 중기 김시민 장군의 손자인 김득신이 세운 독서재이다. 괴산읍 능촌리 산기슭에 있는 취묵당(醉墨堂)을 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농로를 가다가 길을 잘못 들어 차를 빼고 다시 돌아 나와 산길을 걸어 올라가니 길이 없었다. 다시 돌아 좁은 농로를 지나 취묵당을 찾았다.

김득신의 서재 취묵당

취묵당에서 바라본 괴강이 아름답다. 취묵당은 비교적 보존상태가 양호하며 괴강의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더불어 정자 건축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내부에 편액(扁額)과 기문(記文), 시문(詩文)이 걸려있으며 취묵당 기둥에는 오언절구(五言絶句)로 쓰인 한시(漢詩)가 있었다. 자료를 찾아 한글로 올려 보았다.

차가운 구름 고목을 감싸더니

가을 산에 하얗게 비가 내리네

저녁나절 강에 풍랑이 일어

어부들이 급히 배를 돌리돌리네

이어서 취묵당에서 충민사까지 걸었다. 충민사(忠愍祠)는 임진왜란 때 순절한 충무공(忠武公) 김시민을 모신 사당으로 1978년에 조성되었다, 원래 충무공의 사당은 효종 3년 진주에 세워졌으나 조선 말기에 훼철(毁撤)되었다, 이후 원주에서 순절한 숙부 김재갑의 사당인 충열사에서 같이 제사하였다. 현재의 충민사는 충주댐의 건설로 1976년 김시민의 묘소를 현재 위치로 이전하고 새로 지은 것이다. (사당 앞 현판에서) 사당을 걸었다. 인적이 없어 고즈넉하다. 사당 위에 나라를 지킨 김시민 장군의 묘가 있어 목례(目禮)하였다하였다. 진주대첩의 영웅 김시민 장군의 넋이 충민사 앞의 달천(疸川)에 조용히 흐르고 있었다.

김시민 장군의 사당 충민사


● 김득신(金得臣, 1604-1684)은 조선 중기의 문인이다. 그는 공부를 열심히 하였지만, 학습 내용을 오래 기억하지 못하여 공부가 힘들었다. 밥을 먹을 때도, 보행할 때도 계속 책을 놓지 않으며 책 한 권은 11만 3천여 번이나 읽고 다른 책들은 2만여 번 읽는 등 엄청난 노력으로 59세의 나이로 성균관에 합격하였다. 김득신 묘비에는 이런 글이 적혀 있다. “재주가 남만 못하다 스스로 한계를 짓지 말라. 나보다 어리석고 둔한 이도 없겠지만, 결국에는 이름이 있었다. 모든 것은 힘쓰는데 달려있을 따름이다.” 생전에 시(詩)에 명망이 있었으며 문집인 ‘백곡집’에 시와 산문들이 전하고 있다.

● 김시민(1554-1592)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진주 목사가 되어 사천 고성 김해 등지에서 적군을 대파하고 진주에서 3,800명의 병력으로 2만 대군과 싸워 승리를 거두었다. (사당의 설명 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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