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성거사지 오층석탑에서 단체사진(김낙현 촬영)
일주일 동안 계속 내린 폭설로 광주시민은 힘든 날들이었다. 다행히 광주문화유산지킴이 활동이 진행되는 일요일은 눈도 그치고 햇볕까지 쨍쨍하다 기온은 차지만 체감온도는 좋은 날이다. 회원들과 시민 등 20여 명이 참여하여 광주공원, 관덕정, 사직공원을 탐방하며 지킴이 활동을 실시하였다.
희경루에서 단체사진(김낙현 촬영)
◆ 일제강점기 때 구공원이라 했던 광주공원을 하얀 눈길 싸목싸목 걸으며 국가유산을 만나보고 2023년 9월 복원된 희경루에 올라서니 찬바람이 매섭다. 역시 누각은 여름에 찾아햐 할 곳이다.
(전) 광주 성거사지 오층석탑 출토 사리장엄
◆ 광주공원에서 활동하면 꼭 가는 곳 성거사 설화의 한 장면인 (전) 광주 성거사지 오층석탑이 있다. 성거사를 지을 때 자꾸 무너지자 지나가는 도승이 광주공원이 거북의 형상이라 거북이 움직이지 않도록 거북의 목 부위에 탑을 세우라 하여 이곳에 석탑을 세우니 절이 무너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찰은 사라지고 없지만 이곳 석탑에서 발견된 사리장엄으로 사찰의 연대를 알 수 있다.
광주공원 비석군
◆ 사적비군에는 행주대첩을 승리로 이끈 권율장군의 도원수충장권공창의비가 있는가 하면 일제국권침탈 협력자인 윤웅열, 이근호, 홍난유의 비가 누워있다. 시민들은 역사를 알고 잊지 않는다.
광주 관덕정 모습
◆ 일제강점기 구공원이었던 광주공원에서 신공원인 사직공원으로 향한다. 광주향교에서 횡단보도를 건너 서현교회 옆길로 500m 정도 걸으면 한국 전통기예인 국궁장으로 광주활터의 중심이 되어 온 광주 관덕정이 나온다. 관덕정은 1960년대 초 한국의 전통적 건축과 현대화의 접목을 시도한 근대 건축물로 2017년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철근콘크리트조에 전통목구조인 간결한 지붕선과 서까래가 표현되었으며 사직공원을 바라보는 남향건물로 사장(射場)은 남북으로 길게 위치하며 처마 아래 공간이 사대(射臺)가 된다.
광주 관덕정(光州觀德亭)은 사정(射亭)으로 이전의 역사를 살펴보면 국가 기관으로서 1451년(문종 1)부터 1896년(고종 33)초 까지 기록을 통해 광주읍성 내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일제강점기에 광주읍성이 헐리고 도심이 개발되면서 함께 해체되었다. 광복 이후 광주천변 광주공원에 대환정(大歡亭)이 건립되었고 주로 활터로 쓰였기 때문에 광주 시민들은 관덕정이라고 불렀다. 지금의 광주 관덕정은 지역인사와 사우(射友)를 중심으로 기금을 모아 1963년에 건립되었다. 1965년 제46회 전국체육대회에서 국궁 경기를 진행하는 등 지역에서 전통 국궁을 이어가는 데 문화의 중심 역할을 하고 있다. 전남궁도협회가 관리하다가 1984년 광주시에 기부채납되었다. 2024년부터 광주광역시체육회에서 운영하고 있다. 마침 활을 쏘고 있는 분들이 있어 잠시 국궁에 대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시간도 갖었다.
◆ 관덕정에서 사직단까지 오르는 길은 그늘져 눈이 녹지않아 조심스럽게 걸어야 했다.
현재 광주 사직단의 모습
◆ 현재 양림동, 사동, 서동 등 세 동네에 걸쳐 있는 사직공원은 원래 사직제社稷祭를 지내던 곳이다. 사직공원이란 이름도 여기서 유래했다. 사직제는 토지의 신인 사社와 곡식의 신인 직稷에게 지내던 제사로 농업이 나라의 최대 산업이었던 전통시대의 국민적 관심이 반영된 것이다. 그리고 이런 사직제를 지내기 위해 설치한 것이 사직단이었다. 일제강점기에는 이 사직단의 흙을 쌓아 올린 단 위에서 사람들이 씨름하는 등 신성함을 잃어버린 사직단은 해방 후에도 방치됐고 1970년대 그 일대에 동물원까지 들어서게 됐다. 그러나 공원 내 동물원이 주변주민들에게 민원을 사고 동물원 자체도 비좁아 1990년대 초엽 지금의 우치동 동물원 자리로 이전했다. 이후 광주시는 1993년 사직단을 복원했고 1백여 년 만에 사직제가 부활하기도 했다. 현재 사직단은 그때 복원된 것이다. 그런데 복원된 광주 사직단은 원형과 많이 달라 안타까움을 준다. 현재 사직단은 제단이 하나로만 되어 있으나 원래 제단은 사단과 직단 등 두 개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런 모습은 1872년에 그린 광주지도에도 묘사되어 있다.
국가유산 주변 정화활동을 하는 광주문화유산지킴이 회원과 시민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