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100세가 된 어머니를 위해 색동옷을 입고 재롱 춤을 추는 효자 이정간의 모습과 세종대왕의 "가전충효 세수인경(家傳忠孝 世守仁敬)" 이라는 여덟 자의 어필(사진제공 네이버 검색, 전의예안이씨 화수회 문중)

“사람은 모름지기 착하게 살아야 한다.” 어린 시절,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어머니의 말씀이지만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과연 얼마나 착하게 살고 있을까? 조선 세종대왕 때에 살았던 전의예안이씨(全義禮安李氏) 효정공이정간(孝靖公 李貞幹)은 80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100세가 된 어머니를 위해 색동옷을 입고 재롱 춤을 추는 등 남다른 효행을 실천한 인물이다. 세종대왕(世宗大王)은 그의 효심(孝心)에 감탄하여 상을 내리고 벼슬을 올려주었으며, ‘효정공(孝靖公)’이라는 시호까지 내렸다.

효정공 영정(위 좌), 세종대왕의 벼슬과 어필 하사(위 우), 효도를 다하기 효정공의 모습(아래)


◼️ 효정공(孝靖公) 이정간(李貞幹)

효정공 이정간(孝靖公 李貞幹, 1360~1439)의 본관은 전의예안이씨(全義禮安李氏), 자는 고부(固夫), 시호는 효정(孝靖), 아버지는 원종공신(原從功臣) 이구직(李丘直)이고, 어머니는 정대부인(貞大夫人) 경주김씨(慶州金氏)이다. 이정간(李貞幹)은 어려서부터 글재주가 뛰어났으나 과거를 보기 위한 공부는 힘쓰지 않았다. 아버지의 음덕(蔭德)으로 벼슬에 올라 종3품 사헌부집의(司憲府執義)를 거쳐 1405년(태종 5) 강화부사(江華副使)가 되었다. 강화부사를 역임하는 동안 목장에 호랑이가 뛰어들었는데, 아무런 피해 없이 호랑이를 포획하여 비단을 하사받기도 하였다. 그 후 사헌부의 요직과 내외의 관직을 두루 역임하였고, 강원도관찰사에 이르러 100세의 노모(老母)를 봉양하기 위해 사직하고 향리에 은거하였다. 자신도 80세의 고령이면서도 어머니를 즐겁게 하기 위해 색동옷을 입고 재롱 춤을 추어 어머니를 즐겁게 하는 등 출천지효(出天之孝, ‘하늘이 낸 효자’라는 뜻 )로 이름을 날렸다. 어머니 경주김씨를 위해 1429년(세종 11) 경수연(慶壽宴, 장수를 축하하기 위해 베푸는 잔치)과 1432년(세종 14) 영친연(榮親宴, 과거에 급제한 사람의 부모를 영화롭게 하기 위하여 그 고을 수령이 베풀어 주는 잔치)을 베풀었는데, 이때 손님들이 지은 축시(祝詩)를 1509년(중종 4) 후손 이계복(李繼福)이 경수시집(慶壽詩集)으로 간행하였다. 1682년(숙종 8) 후손 이만봉(李萬封)이 행록(行錄) 등을 보충하여 재간행하였으며, 이 책을 1918년 후손 이근용(李根容)이 무오속고(戊午續稿)를 보충하여 다시 펴냈다. 현재 충청북도 청원군 오창읍 양지리에 위치한 송천서원(松泉書院)에서 배향하고 있으며, 경양사(驚陽祠)에서 신위를 모시고 있다.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오창읍에 있는 목양사(위)와 송천서원의 전경(아래)

◼️"가전충효 세수인경(家傳忠孝 世守仁敬)"

"가전충효 세수인경(家傳忠孝 世守仁敬)" 이라는 여덟 자의 어필(御筆)은 세종대왕께서 효정공 이정간(孝靖公 李貞幹)에게 내린 어필로 전의예안이씨(全義禮安李氏)에서는 족보의 첫장에 새겨 가훈(家訓)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정간(李貞幹)이 강원도관찰사로 재임하던 중, 100세의 노모를 봉양하기 위해 사직하고 향리에 은거하면서 자신도 80세의 노령이면서 어머니 앞에서는 색동옷을 입고 재롱 춤을 추어 어머니를 즐겁게 하는 등 하늘이 내린 효자로 이름을 날렸다. 세종대왕께서 이 사실을 알고 이정간(李貞幹)을 정2품 중추원사(中樞院使)에 올리고, 노모는 정대부인(貞大夫人)으로 봉하였다. 또한 당시 우의정(右議政)이던 맹사성(孟思誠)은 시를 지어 효성을 칭송하였다. 그리고 안석(案席, 앉을 때에 벽에 세우고 몸을 뒤쪽으로 기대는 방석)과 궤장(几杖, 임금이 국가에 공이 많은 늙은 신하에게 주는 안석과 지팡이)을 하사하고 어필을 내렸는데 "가전충효 세수인경(家傳忠孝 世守仁敬)"의 여덟 자를 풀이하면 "충(忠)과 효(孝)를 가문에 전하고, 어질고 공경하는 정신을 대대로 지켜 나가라.”라는 뜻으로 이는 후대에 전의예안이씨(全義禮安李氏)의 가훈으로 전승되었다.

세종대왕 영정(좌), 궤장·안석(우 위), "가전충효 세수인경(家傳忠孝 世守仁敬)" 이라는 전의예안이씨 가훈(우 아래)


세종대왕(世宗大王)의 어필은 조선후기 문신 이정로(李正魯) 집안이 보관하고 있는 전의예안이씨(全義禮安李氏) 족보에서 발견되었는데 새겨진 글씨가 세종대왕의 친필이라 여겨진 것은 아니었다. 이정간(李貞幹)을 배향한 충청북도 청주 송천서원(松泉書院)에 있는 서원행록(書院行錄)에 세종대왕(世宗大王)이 친필로 "가전충효 세수인경(家傳忠孝 世守仁敬)"이라는 여덟 자를 이정간(李貞幹)에게 내렸다.”라는 내용을 보고 조선어학회 이극로(李克魯)가 1937년에야 족보를 확인하여 어필을 찾아내었다. 족보에 수록된 어필은 세종대왕의 친필로 추정되는 ‘세종대왕어사희우정효령대군방문(世宗大王御賜喜雨亭孝寧大君房文)’와 같은 필체를 사용하고 있지만, 실제 세종의 글씨가 아니라 모사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이정간(李貞幹)의 효행은 동각잡기(東閣雜記, 국가의 정치와 명신의 행적을 기록한 야사)와 청강선생후정쇄어(淸江先生鯸鯖瑣語, 풍속·습관·문물제도의 연혁과 고사 등이 실려 있음)에 실려 있다.

목양사 충효제(위), 효정공이 손수 심은 은행나무(가운데 좌), 효정공의 비석(가운데 우), 전의예안이씨의 세장비(아래)
11世 효정공의 위패(위 좌), 추모비(위 우), 묘소의 전경(아래)


오늘날에도 이정간의 효행(孝)은 우리에게 효(孝)의 참된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그는 단순히 부모를 공경(恭敬)하는 것을 넘어, 부모의 마음을 헤아리고 즐겁게 해드리는 것이 진정한 효심(孝心)을 보여주었다.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가족의 의미가 퇴색되고 있는 현실 속에서, 이정간(李貞幹)의 이야기는 가족 간의 사랑과 존경심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그의 효심(孝心)은 단순한 과거의 이야기가 아닌, 오늘날 우리가 다시 한번 되새겨야 할 가치임을 강조하고 있다. 효정공 이정간(孝靖公 李貞幹)의 아름다운 마음을 본받아 더욱 따뜻한 세상을 만들어 나가기를 바래본다.

🔳 참고문헌

1. 이윤용, [전의이씨],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청주, 2006.

2. 안홍민, [가전충효 세수인경],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2010.

3. 임덕수, [전의이씨 효정공 이정간 사례], 페이스북, 2020.

4. 뿌리 찾는이, [전의 예안 이씨 문중의 유래와 조형물], 네이버블로그 '한국의 성씨와 족보 이야기',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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