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년이 넘는 전통을 가진 아산 외암민속마을의 전경(사진제공 외암민속마을 , 네이버 검색)

조선시대부터 이어진 우리나라 대표적인 6대 민속(民俗)마을을 살펴본다면 경북 안동의 하회(河回)마을, 경북의 경주의 양동(良洞)마을, 강원도 고성의 왕곡(旺谷)마을, 전남 순천의 낙안(樂安)마을, 충남 아산의 외암(外岩)마을, 제주도 서귀포의 성읍(城邑)마을 등이 있는데 그중에서도 외암마을은 500년이 넘는 전통을 가진 곳으로, 조선시대 상류주택의 모습을 잘 갖추고 있으며, 넓은 마당과 특색있는 정원이 당시 양반의 생활모습과 풍류를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초가 역시 예스러운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고, 돌담으로 연결된 골목길과 주변의 울창한 수림이 마을의 경관을 더욱 고풍스럽게 하고 있다. 특히 한 마을에 전통적인 수법의 상류(上流)·중류(中流)·서민(庶民)가옥이 함께 남아있어 마을의 형성이나 전통가옥의 연구에 매우 가치가 있다. 또 설화산(雪華山)에서 시작된 냇물이 마을을 통과하며 이루어낸 정원은 매우 특색있고 운치있어 마을 전체가 귀중한 가치를 간직하고 있다.

하늘에서 바라본 아산 외암민속마을의 전경

▶아산 외암(牙山 外岩)마을

충청남도 아산시 송악면 외암리에 위치해 있는 외암(外岩)마을은 아산시 남쪽 설화산(雪華山)의 동남쪽 기슭에 있는 관광지로 처음에는 강씨와 목씨의 뒤를 이어 마을에 정착한 평택진씨 진한평(陣漢平)과 그의 사위 전의예안이씨 이사종(李嗣宗)이 500여년 전 조선시대에 낙향하여 살았던 집성촌이다. 이후에 후손들을 통해서 반촌(班村)의 면모를 갖추게 되고, 성리학의 대가인 외암 이간(巍巖 李柬)선생이 마을에 살면서 널리 알려졌다.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곳 외암마을에는 충청지방의 고유한 격식을 갖춘 반가의 고택과 초가 및 6km가 넘는 자연석 돌담과 설화산 계곡물을 이용한 정원들이 옛모습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 특히 가옥마다 주인의 관직 또는 지역명을 따서 풍덕댁, 옥천댁, 고양댁, 참판댁(큰댁), 교수댁, 참봉댁, 신창댁(병사댁), 송화댁, 건재고택(영암군수댁) 등의 이름이 지어져 있는게 특이한 점이다. 또한 마을 주변에 장승(長丞), 물레방아, 열녀문(烈女門), 연자매(일반 맷돌보다 수십 배나 큰 연자방아), 디딜방아 등 민속자료들이 전시되어 있으며, 일부 원주민 가옥을 제외하고 나머지 가옥은 다양한 체험행사와 함께 전시형태로 보존되어 일반에 공개하고 있다. 국가민속문화유산이자 세계문화유산 잠정목록(世界文化遺産 暫定目錄)에 등재된 민속마을로, 그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외암민속마을 위의 왼쪽부터 물레방아, 디딜방아,연자방아, 다양한 장승들...
아산 외암만속마을 6km가 넘는 다양한 자연석 돌담과 길고 그늘에 내어 주는 돌담길 모습

조선 경종 3년(1723)에 이간(李柬)선생이 쓴 외암기(巍巖記)에 마을 이름을 외암(巍巖)으로 기록한 사실이 있으나 그 후 언제부터인지 같은 한자지만 획수가 적은 외암(外岩)으로 고쳐서 부르게 되었다. 외암이란 우뚝 솟은 바위란 뜻으로, 마을 입구 다리 아래 바위에 외암동천(巍巖洞天)이란 글자가 암각되어 있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정월 보름을 전후하여 느티나무제와 장승제를 지내며 매년 10월에는 전통 짚풀공예와 민속놀이 등 농촌체험을 할 수 있는 짚풀 문화제가 열린다.

마을 입구 다리 아래 바위에 '외암동천'이란 암각화, 외암 이간 선생 불천위 제향, 초가집 풍경


◼️ 외암마을 전의예안이씨(全義禮安李氏) 입향조 이사종(李嗣宗)

외암 이간(巍巖 李柬)선생이 쓴 외암기(巍巖記)에는 "전의예안이씨(全義禮安李氏) 가 온양에 들어와 살게 된지 이미 5세가 되었다" 고 하였는데, 외암마을 전의예안이씨(全義禮安李氏)의 입향조는 이사종(李嗣宗)으로, 그는 조선 명종 때 장사랑을 지낸 이연의 둘째 아들이다. 이사종(李嗣宗) 때부터 전의예안이씨(全義禮安李氏)가 외암마을에 살기 시작했으며, 이들은 전의이씨(全義李氏)에서 분파된 가문이다. 예안이씨(禮安李氏)의 시조는 이익(李翊)이며, 이익의 증손인 이온(李韞), 이온의 둘째 아들 이시(李恃), 이시의 둘째 아들 이성간(李成幹), 이성간의 둘째 아들 이연(李涎)을 거쳐 이사종(李嗣宗)에게 이어진다. 조선 명종 때 장사랑(將仕郞, 종9품 문관의 품계)을 지낸 이연(李涎)에게는 세 아들이 있었으나 둘째 아들인 이사종(李嗣宗) 계열만 번창하여 예안이씨(禮安李氏) 온양파의 파조가 되었다. 경기도 수원 화성 출신인 이사종은 아산 지역 토호 세력인 평택 진씨 참봉 진한평의 큰 딸과 혼인하여 외암마을에 정착하였다. 이후 예안이씨 집안에서는 매년 음력 3월 15일에 진한평에 대한 제사(외손봉사)를 드리고 있다고 한다. 이사종(李嗣宗)은 자가 언윤(彦胤)이며, 승훈랑(承訓郞)으로 수성금화사별제(修城禁火司別提)를 지내 집안에서는 ‘별제공(別提公)’으로 불린다. 그의 묘는 송악면 유곡리 봉수산 종산에 있으며, 후손들은 송악면 외암리를 중심으로 지역 사회에 기반을 마련하고 가문을 번성시켰다.

외암민속마을의 다양한 서민층 가옥인 초가집(위). 중류층 가옥(중), 상류층 가옥(아래) 등 모습


◼️ 아산 외암마을 전의예안이씨(全義禮安李氏) 주요인물

17세기 이후 아산에서 유력한 가문으로 성장한 전의예안이씨는 이간(李柬)대에 이르러 크게 이름을 떨쳤는데, 이간(李柬)은 호락논쟁의 중심에 있던 성리학자로 조선사회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했던 인물이다. 그의 둘째 아들 인계 이이병(麟溪 李頤炳)은 부친의 글을 모아 "외암유고(巍巖遺稿)"를 간행했고, 이간의 6대손인 이성렬(李聖烈)는 문과에 급제하여 응교(應敎), 대사성(大司成), 참찬(參贊,정2품)까지 지냈고 독립운동에 관여했으며, 이간의 5대손인 이정렬(李貞烈)은 과거에 급제하여 이조참판(吏曹參判, 종2품)에 까지 올랐으며 고종황제(高宗皇帝)로부터 '퇴호거사(退湖居士)'라는 호를 받았다. 명성황후(明成皇后)의 이모의 손자였던 그는 명성황후(明成皇后)의 총애를 받았으며, 관직에서 물러난 후 칠은계(七隱契)를 조직하여 충남 일대의 항일운동에 영향을 미쳤다. '참판댁(參判宅)'으로 불리는 이정렬(李貞烈)의 집은 고종(高宗)의 하사금으로 지어졌으며, 1984년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아산 외암마을 전의예안이씨(全義禮安李氏) 가문은 이간(李柬), 이이병(李頤炳), 이성렬(李聖烈), 이정렬(李貞烈) 등 뛰어난 인물들을 배출하며 아산 지역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다.

설화산에서 내려오는 맑은 개울, 나무다리, 석양에 물든 외암인속마을의 전경

5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충남 아산(牙山) 외암민속(外巖民俗)마을은 조선시대 양반 가옥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아름다운 마을이다. 국가민속문화유산(國家民俗文化遺産)으로 지정된 이곳은 돌담길, 울창한 수림, 그리고 설화산(雪華山)에서 시작된 냇물을 이용한 아름다운 정원이 어우러져 마치 한 폭의 그림을 연상하게 한다. 이간(李柬)선생은 호락논쟁(湖洛論爭)으로 조선 사회에 큰 영향을 끼친 성리학자이다. 외암마을은 이간(李柬)선생의 발자취를 따라 조선시대 양반들의 삶과 풍류를 느껴볼 수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조선시대의 삶과 문화를 체험하고,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힐링하는 특별한 경험을 통해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어 보시라!

🔳 참고문헌

1. 착한 산적, [아산, 외암민속마을에 가다], 네이버블로그 '산수유의 일상', 2021.

2. 이춘화, [전의·예안 이씨 화수회 문중의 역사], 전의·예안 이씨 화수회, 2024.

3. 한이정, [한국의 명고을 -외암리 민속마을], 네이버카페 이정역학연구회, 2025.

4.이규정, [외암마을 유래], 외암민속마을 홈페이지,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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