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 김정희 선생의 영정, 부인 전의예안 이씨에게 쓴 한글 편지(사진제공 네이버검색, 국가유산청)
조선 후기 대표적인 예술가이자 학자였던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는 예술적 재능뿐만 아니라 아내를 향한 애틋한 마음을 담은 편지로도 유명하다. 그는 부인에게 38통의 한글 편지를 남겼으며, 편지에는 아들(양자) 손자의 탄생, 혼사, 회갑 등 집안 대소사를 챙기고 아내의 안부를 궁금해하는 마음과 노환과 질병으로 고통을 호소하는 내용 등의 다양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의 처가인 외암마을에는 그의 흔적이 남아있는 건재고택(建齋古宅)이 있다. 이곳에는 그의 친필 현판과 유물들이 보관되어 있다.
추사선생의 제주도 유배지에서 그린 세한도 전체 모습(사진제공 네이버검색, 김오현)
▶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 유배지에서 아내에게 보내는 애틋한 사랑의 편지
외암마을은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 1786 ~ 1856)의 처가로도 유명하다. 추사(秋史)선생은 첫째 부인 한산이씨(韓山李氏)가 혼인 5년 만에 타계하자 3년상을 마치고, 1808년 23살에 전의예안이씨(全義禮安李氏) 이간(李柬)선생의 증손 이병현(李秉鉉)의 딸과 혼례를 올리게 되고, 외암마을을 자주 찾은 것으로 알려졌다.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와 그의 부인 전의예안이씨(全義禮安李氏)의 사랑 이야기는 조선시대의 낭만적인 러브 스토리 중 하나이다. 둘 사이에는 자녀는 없었지만, 추사는 부인에게 애틋한 마음을 담아 많은 한글 편지를 보냈다. 현재까지 전해지는 추사의 한글 편지는 총 40통으로, 이 중 38통이 부인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추사적거지
추사 김정희선생 유배지 전경
추사선생의 북한산 진흥왕 순수비 탁본, 북한산 전경, 순수비 등의 모습
추사(秋史)는 당쟁으로 인해 10년이 넘는 유배 생활을 했는데, 이 때문에 아내에 대한 그리움과 애틋함이 더욱 깊어졌다. 편지에는 아내에 대한 사랑뿐만 아니라 가족의 안부를 묻는 내용, 집안의 대소사를 챙기는 모습, 아내의 소식을 기다리는 애타는 마음, 자신의 건강과 고통을 호소하는 내용 등 다양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때로는 평양 기생과의 염문을 해명하거나, 까다로운 입맛 때문에 음식을 보내달라는 부탁, 며느리에게 제사 방법을 가르치라는 당부 등 재미있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부인 이씨 역시 남편을 위해 정성을 다했다. 특히 추사는 식생활과 잠자리에 매우 까다로웠는데, 이씨는 옷가지와 밑반찬은 물론이고 때로는 인절미까지 만들어 제주도로 보냈다. 추사는 첫 번째 부인과 사별한 경험 때문에 이씨의 건강을 늘 걱정했지만, 그러나 젊어서부터 병을 앓던 부인 이씨는 이러한 추사의 애틋함을 뒤로한 채 1842년 11월 13일에 세상을 떠났다. 그 소식을 알 리 없는 추사는 그 다음날인 14일과 18일에 또다시 부인의 건강을 염려하는 편지를 연달아 보냈고, 뒤늦게 비보를 접하고는 깊은 슬픔에 잠겼다. 그는 부인의 죽음을 애도하는 시 '‘도망처가(悼亡妻歌)’'를 통해 다음과 같이 애끓는 마음을 표현했다. "내세에는 부부가 바꿔 태어나 내가 죽고 그대가 살아 나의 이 슬픔과 고독을 그대가 알게 하리."라고 말하며 부인을 향한 애끓는 마음을 표현했다.
유선시보, 일로향각, 무량수각 등 추사체의 현판들과 추사선생의 조상화
▶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의 처가(妻家)외암마을의 건재고택(建齋古宅)
조선시대 대표적인 정원인 아산 건재고택(建齋古宅, 국가민속문화유산)은 외암리마을 중심부에 위치한 옛집으로, 1869년 영암군수를 지낸 이상익(李相翼, 1848-1897) 선생이 지었다. 이상익(李相翼)선생은 외암 이간(巍巖 李柬)선생의 5대손이며 건재고택(建齋古宅)이 자리 한 터가 바로 이간(李柬)선생이 태어난 곳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건재고택은 설화산을 진산(鎭山)으로 하여 산세에 따라 서북향으로, 또 설화산 계곡에서 흐르는 물을 집 안으로 유입하여 수경을 이루게 하였고 화재에도 대비한 독특한 구조를 자랑한다. 건재고택(建齋古宅)은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 선생의 처가로도 유명하다. 첫째 부인 한산이씨(韓山李氏)와 사별한 3년 후 외암 이간 선생의 현손녀와 23살에 재혼한 추사(秋史)선생은 이곳에 머물며 "일로향각(一爐香閣, 한 마음을 화로에 넣고 담금질해 향기를 만든다), 유선시보(唯善是寶·착한 일을 베푸는 것이 보물), 무량수각(無量壽閣·만수무강의 뜻)" 등의 친필 현판을 남겼고, 40여 점의 유물을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아산외암마을 건재고택의 전경과 외암마을 전체 전경
아산외암마을 건재고택 여러 모습들...
건재고택(建齋古宅)은 오랜 기간 소유권 분쟁을 겪었다. 건재고택(建齋古宅)의 후손인 원소유자의 채무(債務) 문제로 미래저축은행으로 소유권(所有權)이 넘어갔고, 이후 미래저축은행의 부실 대출 사태로 예금보험공사가 관리하게 되었다. 수차례 경매가 진행되었지만 유찰과 명도소송으로 지연되다가 2019년, 경매 낙찰(競賣 落札)을 통해 아산시로 소유권(所有權)이 귀속되어 시민의 품으로 돌아왔다. 아산시의 노력으로 건재고택(建齋古宅)은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시민들에게 개방되었고,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 선생의 숨결이 살아 숨 쉬는 문화 공간으로 자리매김했다. 건재고택(建齋古宅)은 아름다운 정원과 함께 추사(秋史) 선생의 예술혼을 느낄 수 있는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충남 예산 추사 김정희 선생 고택 앞에서...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는 학문과 예술에 뛰어났을 뿐 아니라, 아내 전의예안이씨(全義禮安李氏)에게 애틋한 마음을 표현하는 로맨티시스트(romanticist)이기도 했다. 김정희(金正喜)는 40통의 한글 편지를 남겼는데, 며느리에게 보낸 2통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아내 전의예안 이씨(全義禮安李氏)에게 쓴 것이었다.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의 편지는 단순한 안부 편지를 넘어, 그의 인간적인 면모와 아내에 대한 깊은 사랑을 보여주는 소중한 자료이다. 또한,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의 처가인 외암마을은 아름다운 정원과 함께 추사(秋史) 선생의 친필 현판과 유물들이 보관되어 있어서 예술혼을 느낄 수 있는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 참고문헌
1. 김영조, [아내에게 38통의 애틋한 한글편지를 보낸 추사], 우리문화신문, 2017.
2. 백승종, [예안 이씨 부인과 추사 김정희 - 특별한 로맨스], 유튜브영상 목철TV, 2021.
3. 견오, [아산 건재고택 신선의 정원 그리고 외암마을 추사 김정희 처가 이야기], 네이버블로그 '코디의 세상이야기', 2022.
4. 박경귀, [건재고택, 500년 역사의 살아있는 민속박물관 아산외암마을], 아산시청,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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