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 76호 난중일기속의 <독송사(讀宋史)>내용을 고증하다

-출처가 명나라 학자 구준(丘濬)의 글임을 밝힘

노승석 전문위원 승인 2024.02.13 18:00 의견 0
국보 76호 난중일기 소유자 최순선 제공, 문화재청 현충사 사진, 불허복제


이순신의 《난중일기》를 보면, 옛 고전을 인용한 내용들이 상당수 적혀 있다. 이를 통해 이순신은 고전에 해박한 독서가임을 알 수 있다. 특히 《난중일기》에 적힌 <독송사(讀宋史)>는 중국의 사서인 《송사(宋史)》를 읽고서 쓴 독후감으로 널리 알려져 왔다. 이 글은 초고본 《난중일기》에 정유년 10월 8일자 일기 뒤에 적혀 있고, 《이충무공전서》에는 <잡저>에도 수록되어 있다.

이 <독송사>는 전란 중에 모함과 시기를 받는 상황에서 이순신의 간절한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만큼 이순신에게 있어서는 매우 중요한 글이다. 이 글도 역시 어디에서 인용했을 것이라는 생각에 그 출처가 항상 궁금하였다. 그러던 차에 3년 전 중국의 고전적 자료를 추적하다가 <독송사>의 원문이 그대로 수록된 책자를 발견했는데, 그것이 바로 명(明)나라 때 학자인 구준(丘濬 1420∼1495)이 지은 역사서 《세사정강(世史正綱)》이라는 책이었다. 아래 내용은 <독송사>의 글이다.

“아, 슬프도다. 그 때가 어느 때인데, 강(綱)은 떠나고자 했던가. 떠난다면 또 어디로 가려했던가. 사람의 신하 된 자가 임금을 섬김에는 죽음만이 있고 다른 길은 없다. 이러한 때를 당하여 종묘 사직(나라)의 위태함은 겨우 머리털 하나로 천균(千鈞, 3만근)을 당기는 것과 같아서, 바로 사람의 신하된 자가 몸을 던져 나라에 보답할 때이니, 떠나간다는 말은 정말 마음속에서 싹트게 해서는 안 될 것이로다. 하물며 이를 감히 입 밖에 낼 수 있겠는가. <중략>

우선 그들의 계책을 따르되 자신이 그 사이에 간여하여 마음을 다해 사태를 수습하고 죽음 속에서 살 길을 구한다면, 만에 하나라도 혹 구제할 수 있는 이치가 있을 것이다. 강(綱)은 계책을 여기에서 내지 않고 떠나기를 구하고자 했으니, 이것이 어찌 사람의 신하된 자로서 몸을 -던져 임금을 섬기는 도리이겠는가. (정유년Ⅰ 10월 8일 이후 기록)

《신완역 난중일기 교주본》(노승석 역주)

위 글은 남송(南宋) 때 고종(高宗) 조구(趙構)의 신하인 이강(李綱)이 좌상이 되어 항금정책을 주장하다가 화의파의 반대로 국방정책에 지장을 받게 되자, 결국 나랏일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떠날 것을 청한 것에 대해 구준이 비판한 내용이다. 자신의 뜻이 주변인들과 맞지 않는다고 떠나기보다는 미봉책이라도 반대파의 의견을 따르면서 그 속에서 사태를 먼저 수습하는 것이 신하의 도리라고 강조한 것이다. 이 <독송사>는 친필 원본인 《난중일기》초고본에 실려 있어 일부 번역한 난중일기 초역본 등에는 나오지 않는다.

조선의 학자 이구(李榘 1613∼1654)도 <독송사>와 관련된 내용으로 〈이강이 떠나기를 구하다(李綱求去)〉라는 글에서 구준이 이강에 대해 ‘남의 신하가 임금을 섬김에는 죽음만이 있고 다른 길은 없다[人臣事君, 有死無貳]’도 말한 것을 인용하였다. 여기에 적힌 8글자도 추적한 결과, 송나라 학자 이방(李昉)의 《문원영화(文苑英華)》에서 확인되었다. 이는 국가를 위해 신하는 일편단심으로 임금을 섬겨야함을 강조한 것이다.

이순신은 젊은 시절부터 뛰어난 학식과 행정능력을 갖고 있다보니 시기와 질투를 많이 받았다. 36세 때인 전라좌수영의 발포 만호시절 감사 손식(孫軾)이 참언을 듣고 혼내주려고 병서(兵書)를 외우고 진영(陣營) 그리게 했으나 오히려 정교한 필법에 감탄한 일화가 있었다. 전란 중에는 원균의 투서와 모함으로 선조와 조정 대신들로부터 신임을 얻지 못하였고 백의종군처분을 받은 억울한 상황에도 이순신은 어느 누구도 원망하지 않고 자신에게 주어진 소임을 다하였다.

이순신의 국난극복을 위한 한결같은 우국충정의 마음은 구준이 지은 <독송사>글에 담겨 있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통해 당장은 자신이 인정받지 못할지라도 대의(大義)를 위해서라면 상대와의 원만한 타협으로 현실적인 방법을 모색해 나가는 자세가 중요함을 알 수 있다. 역사의 뒤안길에서 이순신의 충정과 맥락을 함께하는 <독송사>글의 의미는 항구여일한 충정을 강조한 교훈적인 글로 후대에 길이 남을 것이다.

글 : 노승석

고전학자. 동국대 여해연구소 학술위원장

《신완역 난중일기 교주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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