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민 칼럼] 한가위 유래와 성묘의 의미

문화일보 게재 칼럼 (1997. 9. 8.)
박광민(朴光敏-한국어문교육연구회 연구위원)

편집국 승인 2023.10.01 18:32 | 최종 수정 2023.10.01 18:36 의견 0

한가윗날 산마루에 둥실 떠 오른 맷방석만한 보름달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신비하다. 가난했던 조상들께도 한가위는 모처럼의 넉넉한 명절이었을 것이다.

한가위에 대한 최초 기록은 三國史記(삼국사기) 儒理尼師今(유리잇금)편에 보인다. 「왕께서는 이미 六部를 정해 이를 둘로 가른 후 王女 두 사람으로 하여금 각각 部內 여자들을 거느리고 편을 짜게 하여 칠월 십육일부터 매일 궁전 뜰에 모여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길쌈을 하게 하여 팔월 십오일이 되면 공의 많고 적음을 헤아려 진 쪽은 이긴 쪽에게 술과 음식을 대접하고, 함께 어우러져 노래와 갖가지 놀이를 하였는데 이를 일러 嘉俳(가배)라고 하였다.
이 때 진 쪽의 한 여자가 일어나서 춤을 추며 노래하기를, ‘會蘇會蘇(회소회소)’ 하는데 그 소리가 자못 슬프고도 처량하였다. 다른 사람들이 그 소리를 좇아 노래하니 이를 회소곡이라 하였다.」

「會蘇」는 ‘會’에서 ‘모이다’라는 뜻을 취하고 ‘蘇’에서 음을 취한 吏讀(이두)말로서 ‘모이소, 모이소’하는 말인데 이긴 쪽이든 진 쪽이든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한 달 동안이나 길쌈에 시달린 여인네들이 함께 모여 부른 哀歡(애환)의 노래였을 것이다.

길씸 (김홍도 풍속화)

尼師今(잇금)은 ‘尼’에서 ‘이[齒]’를, ‘師’에서 ‘ㅅ’을, ‘今’에서 ‘금[자국]’을 취한 것으로 ‘잇금’으로 읽는데 ‘麻立干(마립간)’을 ‘말한’이라 읽는 것과 같다. 삼국사기에, 南解王(남해왕)께서 돌아가시니 태자 儒理(유리)가 뒤를 이어야 하는데 大輔(태보) 脫解(탈해)가 평소 덕망이 높아 유리태자가 임금 자리를 그에게 양보하고자 하니 탈해가 말하기를, “神器大寶(신기대보)는 용열한 이가 감당할 수 없습니다. 제가 듣기를, ‘聖智(성지)가 있는 분은 이빨이 많다’고 합니다. 떡을 깨물어 시험해 보는 것이 좋겠습니다.”라고 하므로 두 사람이 떡을 깨물어 시험해 보니 유리태자의 이빨자국이 더 많은지라 좌우 신하들이 유리태자를 받들어 왕위에 나아가게 하고 號(호)를 尼師今(잇금)이라고 하였다.
金大問(김대문)은, “尼師今(잇금)은 方言(방언)인데 齒理[치리-이빨자국]를 말하는 것이다(三國史記或云, 尼師今, 言謂齒理也.)”󰡕라고 하였다. 「理」는 「자국」이라는 뜻이다. 尼師今(잇금)은 齒師今․尼叱今․齒叱今이라고도 쓰며 讀音(독음)은 모두 「잇금」으로 읽는데 漢字(한자)를 直讀(직독)하여 ‘이사금’이라 읽는 것은 잘못이다.

‘嘉俳(가배’는 한자음을 빌어 「가운데」를 뜻하는 순우리말을 적은 것으로 󰡔월인석보󰡕에는 ‘가ᄫᆞᆫᄃᆡ’라 했고 󰡔훈민정음주해󰡕에는 ‘가온ᄃᆡ’라고 했다. 󰡔朝鮮館譯語(조선관역어)󰡕에는 ‘가외:中秋’라고 했는데 ‘가ᄇᆡ〉가ᄫᆡ〉가외〉가위’로 변해왔다. ‘한’은 ‘크다’의 순우리말이므로 ‘한가위’는 ‘가을 한가운데 있는 큰 명절’이라는 뜻이 된다. ‘仲秋(중추)’는 󰡔禮記(예기)-月令(월령)󰡕에 ‘仲秋(중추)’」라는 구절이 있고, 秋夕(추석)은 󰡔周禮(주례)-春官(춘관)󰡕 注(주)에, ‘秋分夕月’이라는 구절이 있는데 모두 음력 팔월이다.

省墓(성묘)의 省은 屮(싹날 철)과 ‘보다’라는 뜻을 지닌 眉(눈썹 미)의 합자로서 “작은 풀이 돋아나는 것까지 자세히 살펴본다”는 의미가 있다. 성묘를 가면 조상의 묘를 돌아보고 비바람에 허물어진 곳은 다시 쌓고, 봉분에 자라는 쑥이나 가시나무 덩굴 등 잡초를 뽑아서 조상의 幽宅(유택)을 돌보는 것이다.

子貢(자공)이 孔子(공자)에게 여쭈었다.

"죽은 이에게도 앎이 있습니까? 아니면 죽은 이는 아무 것도 모릅니까?"

"나는 너에게 죽은 이에게도 앎이 있다고 말하고 싶으나 그렇게 말하면 孝子孝孫(효자효손)이 산 사람의 삶을 망치면서까지 죽은 이를 보내는데 빠져들까 저어하고, 죽은 이에게 앎이 없다고 하면 불효한 이들이 죽은 이를 내팽개칠까 두렵구나. 너는 죽은 이에 대해 알고 싶으냐? 네가 죽은 후에 천천히 알 것이니 그 때에도 오히려 늦지 않다."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효를 숭상해 온 민족이다. 성묘행렬만 보아서는 우리나라 사람 모두가 孝子(효자)요, 孝孫(효손)이라고 보아도 좋을 것 같다. 그러나 오늘, 살아계신 부모님께는 소홀하면서 죽은 조상을 지성으로 받드는 우리 마음속에는 조상을 섬기고 恭敬(공경)하는 순수한 마음보다 형식적 제사나 성묘를 통해 자신의 복을 빌고자 하는 마음이 더 큰 것은 아닐까?

한가위를 맞아 살아계신 부모님을 공경하는 孝(효)와, 祖上(조상)을 섬기는 省墓(성묘)의 의미를 되새기며 아이들에게 直系(직계) 조상의 諱字(휘자)라도 일러 주는 것이 어떨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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