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전북 고창군 대산면 송양사(松陽祠) 춘제 추모 봉행 성료

선조에 대한 뿌리 의식으로 대한민국 국가유산 활용의 모범 될 터

임인식 시민기자 승인 2024.04.23 12:21 | 최종 수정 2024.04.23 14:25 의견 2

무송윤씨(茂松尹氏)대종회(大宗會)(회장 윤태후)는 고창 3위전(시조공, 대사성공, 장령공) 춘제 추모 봉행을 2024년 4월 23일 11시 송양사(松陽祠) 제전에서 지역 유림과 전국에서 참여한 문중 종인 등 2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봉행했다고 밝혔다.

제향은 전통 유교의례로 헌관 및 제집사 분정에 이어 ▶전폐례▶초헌례▶아헌례▶종헌례▶음복례▶철변두▶망료례 순으로 봉행했다.

고창(高敞) 3위전((시조공, 대사성공, 장령공) 춘제 추모 봉행은 관례에 따라 윤영선 심산 김창숙 선생기념사업회장(전 관세청장)이 초헌관, 윤병희 장령공파 회장이 아헌관, 윤세천 대사성공파 회장이 종헌관을 맡아 윤경상 무송윤씨 태안 종회장의 집전으로 봉행되었다.


무송윤씨(茂松尹氏)의 시조 양비(良庇) 공은 고려 예종 때 현리(縣吏)로서 과거에 급제하여 보승낭장(保勝郎將)·호장동정(戸長同正)을 지냈다. 윤양비 공의 선계(先系)는 윤경(尹鏡)으로 후당(後唐)에서 오계(五季)의 난을 피하여 한반도로 건너와 무송(茂松)[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성송면] 지방에 정착하면서 무송을 본관으로 삼았다. 이후 계대가 실전되어 윤양비 공을 시조로 하여 세계를 이어 오고 있다. 대사성공파(大司成公派)와 장령공파(掌令公派)가 있다.

무송윤씨는 영의정을 비롯한 대제학 3인과 수많은 문무백관과 여거사(윤충보 尹忠輔)를 배출하였고, 대동청년단을 조직하여 구국운동에 참여하였으며, 대종교 3대 교주(단애 檀崖 윤세복 尹世復) 및 한집안 7명의 독립운동가(석정 윤세주)도 배출한 명문 가문이다.

특히 동양의 전통사상 가운데 충(忠)·효(孝)·열(烈)은 유교 사회의 중요한 덕목으로 흥무(興茂) 공께서는 1732년 무장현감으로 부임하신 후 무장읍성을 보수 관리하고 해안선 연락망을 조직하여 왜구 침입에 대비하였고, 새로운 토지를 개간하여 국민의 삶을 향상시켰다.

효행면에서 어려서 부친을 잃은 찬성사 윤택은 국학대사성을 지낸 조부의 영향을 받아 효행 (맛있는 주머니 「해동속소학」, 허균의 편지와 사탕 한 알 「성소부부고」), 그의 아들 윤구생은 국가에서 가묘 설치의 명이 있기 전부터 가묘를 설치하여 조상을 받들어 효행을 실천하여 『고려사』의 「孝友列傳」에 등재, 찬성사의 증손 ‘윤회와 진주를 삼킨 거위‘를 통해서 동물 사랑과 인내를 교훈하였고, 전라도에 계신 어머니를 그리는 효행을 실천하였으며, 사경에 헤매고 있는 모친의 환부를 빨아 고름을 뽑아 소생시킨 윤순(尹洵, 1553~1611) 효행을 실천 등 많은 효자를 배출하였고,

열부로는 윤귀생(尹龜生)의 부인 효열부 고죽최씨(孤竹崔氏)는 지극한 효심으로 시부모를 봉양하고 자식들의 교육이나 생활 예절을 엄하게 지도하여 무송윤씨의 전성기를 구가하여 많은 인물을 배출하도록 한 인물이고, 정유재란으로 남편이 전사하자 따라 죽음으로 지조와 절의를 지킨 윤항(尹沆)의 부인 열부 나주나씨(羅州羅氏) (『삼강록(三綱錄)』), 화마에서 시어머니를 구하기 위하여 불길에 뛰어들어 산화한 윤인익(尹仁翼)의 부인 열부 덕수장씨(德水張氏) 등 수 많는 충·효·열부들이 배출되었으며, 청렴결백한 공직자를 많이 배출하여 청백리로 여강처사 윤충보(尹忠輔)의 증손 윤사익(尹思翼) 등이 있다.

초헌관으로 참석한 윤영선 전관세청장은 이렇게 충(忠)·효(孝)·예(禮)의 숭조 정신의 선양을 위하여 노력하여 왔다. 오늘 시조공 제향을 통하여 존경과 신뢰의 마음으로 우리 무윤의 영원한 발전과 우리의 본향인 고창이 크게 발전되기를 바란다. 고 인사말을 했다

아울러 고창군(高敞郡) 관계자는 “송양사 추모 제향을 통해 수준 높은 선비문화를 보유한 무송윤씨의 전통문화를 현대적으로 계승해 훌륭한 고창지역 자산으로 키워나가고, 조상의 정신을 계승하여 옛 선현들에 역사와 기능을 이해하고 전승·보존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라고 말했다.

또한, 충남 보령시 웅천읍 문헌사 제향은 매년 음력 3월 첫 정일(丁日)에 무송윤씨 대사성공 남포파 윤세웅 종회장과 윤필상 총무(충청남도정책특별보좌관, 보령시시설관리공단이사)가 조선초기 문신 병조판서와 예문관대제학을 지낸 문도(文度)공 윤회(尹淮 1380~1436) 공과 그의 손자이자 영의정을 지내시고 무송부원군(茂松府院君)에 봉해진 문헌(文憲)공 윤자운(尹子雲 1416~1478) 선생의 위패가 봉안된 사우로 충남 보령시 남포방제로 821-43 문헌사(文憲祠)에서 매년 보령시 후원과 문헌사 도유사 집전으로 엄숙하게 거행된다.

한편, 무송(茂松)은 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에 있던 옛 행정구역명이다. 무장면은 무송과 장사(長沙)가 합쳐진 이름이다. 백제 때에는 송미지현(松彌知縣)과 상로현(上老縣)이었고,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무송과 장사현으로 개명하였으며, 1417년(태종 17)에 두 현을 통합하여 무장현(茂長縣)으로 개편하였다. 1906년에 전라북도로 소속되었고, 1914년 군면 폐합으로 무장군이 폐지되고 무장면으로 축소되어 고창군에 편입되었다.

인구로는 전국 경향각지 2015년 통계청 기록으로 14,572명으로 되어있다.

▶ 사진제공 : 윤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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