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만난 사람> 경주시의회 문화도시위원장 이진락

신라 49대 헌강왕릉 갑석 복원 주도한 왕릉 박사 경주시 이진락 문화도시위원장

김용목 승인 2024.02.01 11:07 | 최종 수정 2024.02.02 10:00 의견 1

문화유산 보존 관리의 문제점을 발견하여 학술 논문으로 발표하고, 그 성과를 만들어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헌강왕릉과 정강왕릉의 갑석을 복원을 앞두고 논문발표 10년 만에 그 결실을 보게 된 경주시 문화도시위원장 이진락 의원을 만났다.

경주시의회 이진락문화도시위원장

기자 : 정치를 하시는 분으로는 특이하게 이과와 문과 2개의 박사학위를 가지고 있다고 들었는데 어떤 분야입니까?

이진락 : 원래 전기공학 박사가 있었고요. 경주대학교 문화재과에서 신라왕릉 전기 탐사로 문화재 박사를 땄습니다. 엄밀히 따지면 문학 박사인데 고고학 전공이지요.

기자 : 현재 경주시 의원 중에서 최다 선수를 가진 분이라고 들었습니다.
언제 정치에 입문하셨고 몇 선이신지요?


이진락 : 1995년 제2대 경주시의원 입문해서, 3대, 5대, 거쳐서 지금 9대 4선이고, 중간에 제10대 경북도의원을 거쳤습니다. 4선이죠.

기자 : 그러면 도의원까지 5선입니까?

이진락 : 네.

기자 : 문화도시위원장을 맡고 계신데, 분야가 꽤 넓은 것으로 보입니다. 문화도시위원회는 어떤 분야를 담당하는지 말씀해 주십시오.

이진락 : 경주시정에서 문화관광 분야 그리고 또 문화재과 왕경조성과 도시재생 분야 그리고 도시개발국 전체를 담당합니다.

기자 : 실제로 문화유산 분야에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상임위에 지금 계시는 거네요.

이진락 : 네 그렇습니다. 문화유산 분야인 경주시의 문화재과와 왕경조성과에서 하는 사업을 주로 관장하고 있습니다.

기자 : 앞으로 경주의 문화유산 분야에 더 관심을 가져주시기를 당부드리면서, 왕릉의 갑석 문제에 대한 질문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문화유산 특히 문화재에 대한 논문을 발표하고 이렇게 구체적인 성과로 나온 예가 드문데 왕릉의 갑석이 잘못됐다는 것을 언제 발견하셨는지요?

이진락 : 2012년도 8월경에 발견했습니다.
헌강왕릉, 정강왕릉을 답사하다가 정강왕릉은 기단석 위에 호석이 2단이고 헌강왕릉은 기단석 위에 호석이 4단이 돼 있어서 뭔가 조금 이상하다라고 생각했는데, 전형적인 신라 왕릉은 보통 기단석 3단에 장대석, 장대석 위에 갑석이 있거던요.

그래서 관찰 도중에 정강왕릉과 헌강왕릉 주변 땅속에 갑석과 호석이 있음을 발견해서 조사하다 보니까 두 개 왕릉 다 원래 호석 구조가 3단 위에 갑석이 있어야 하지 않나 하는 의문점을 가지고 학술적으로 연구를 해서 학술지에 게재하였습니다.

기자 : 조금 어려운 부분인데 전기 탐사로 봉분 내부를 알 수 있다. 이런 부분을 일반인도 알 수 있게 좀 간단하게 설명해 주실 수 있습니까?

이진락 : 보통 신라왕릉은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금관총이나 천마총같이 적석목각분이 있고 헌강, 정강왕릉같이 통일신라 횡혈식 석실분이 있습니다.
석실분은 바꿔 얘기하면 외형상으로는 둥근 반원 모양의 흙무덤이지만 안에는 이렇게 직사각형 모양의 석실이 있고 공간이 비어 있습니다.

그래서 바깥에서 흙에다가 양쪽으로 전기를 흘리면 석실분의 공기층이 생긴 모양대로 전기 저항이 다르게 나오기 때문에 그 석실분 들어가는 입구의 공간을 전기 탐사로 발견할 수 있다는 원리입니다.
엑스레이 찍듯이 봉분 주변에서 전기를 흘리면 안에 흙이 있는 부분과 석실 안에 공간이 있는 부분에 어떤 전기 저항의 차이를 검출해서 찾는 겁니다.

기자 : 구체적으로 헌강왕릉하고 정강왕릉의 갑석이 언제 어떻게 어떤 과정에서 잘못됐다는 것은 혹시 조사를 하셨나요?

이진락 : 예 아마 95년도에 태풍으로 인해서 헌강왕릉에 도굴공(盜掘孔)이 드러나서 문화재연구소에서 96년도경에 발굴 조사를 했습니다.

그때 헌강왕릉의 묘실 입구는 남쪽, 상석은 동쪽이지만은 묘호실 입구는 남쪽이라는 게 밝혀졌고, 그 뒤에 복원을 했기 때문에 전기 탐사를 해보니까 헌강왕릉이나 정강왕릉 둘 다 상석은 약간 동쪽으로 치우쳤지만 실제 묘도입구는 남쪽에 있는 것을 전기 탐사로 밝혔습니다.

기자 : 그럼 결론적으로 정강왕릉 2단 헌강왕릉 4단으로 돼 있는 것을 둘 다 3단으로 복원하신다는 이야기네요.


이진락 : 예. 보통 전형적인 신라 왕릉이, 3층 석탑이 있듯이 다른 미의 왕릉이나 전북 신당리 고분 같이 호수 3단이 기본 원칙인데, 정강왕릉은 갑석도 없고 호석만 2단, 헌강은 4단이기 때문에 둘 다 3단이라는 데 착안을 했고, 실제 주변에 부재를 조사하니까 3단이라는 것을 밝혔습니다.

그리고 단지 헌강왕릉이 4단이 돼 있는 거는 일제시대 때 조선총독부의 기록 사진을 보니까, 1920년대에는 3단이었다는 것이 밝혀지고, 아마 그 20년대에 누군가 모르게 4단으로 잘못 복원했다는 것을 밝혀냈습니다.

기자 : 그럼 이번에 두 왕릉의 잘못 조성되어 있던 갑석이 원형 그대로 복원이 된다는 이야기인데 현장을 방문해 보니까 정강왕릉은 입구부터 야자매트를 깔아서 공사가 거의 끝났고, 헌강왕릉은 아직 공사중인 것으로 보이던데...

신라 50대 정강왕릉

이진락 : 헌강왕릉은 4단에서 1단 깎아 3단에서 갑석을 얹고 복원하는데 지금 동절기라 땅이 얼어 공사도 지연되고 있고, 아마 내호석이라고...

헌강왕릉은 특이하게 생겨 호석 안에 내부 호석이 한 겹 더 있습니다.
거기에 대한 문화재 고증 때문에 좀 늦어져서 2,3월에 아마 마무리 복원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4단 면석을 3단으로 낮춘 헌강왕릉 현장을 방문한 이진락위원장

기자 : 신라 왕릉으로 박사학위를 받아서 왕릉 박사라고 불리고 계신데 실제 왕릉의 진위 여부나 장소 비정, 이런 것들 민감한 부분이기 때문에 말을 아끼고 계시는 것으로 들었습니다.
언젠가 시간이 되면 그런 이야기들을 한번 들을 수 있는 날이 올까요?


이진락 : 네 그렇습니다. 신라 56왕 중에서 지금 왕릉의 안내판을 세운 곳은 36곳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도 실제 고고학적으로 밝혀진 것은 흥덕왕릉과 태종 무열왕릉밖에 없고 나머지는 1730년대 이후에 경주 김씨 일족들에 의해 비정되었고, 또 일부는 해방 이후에 일부 학자들이나 문화재 당국에서 정해졌기 때문에 거기에 대한 상세한 것은 아마 좀 더 역사학계와 고고학계가 서로 토론을 거쳐서 합의점을 찾아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기자 : 네. 앞으로 신라왕릉 분야를 시리즈로 해서 여러 가지 도움을 주시면 좋겠고요.
출판을 준비하고 계시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책이고 언제쯤 나올지에 대해서 말씀해 주십시오.


이진락 : 원래 2024년도 상반기에 낼 예정이었고요.
주로 신라왕릉에 지금까지 밝혀지지 않은 사실들, 조금 전에 말씀하신 호석의 구조 그리고 또 원성왕릉이나 흥덕왕릉 등 신도에 있는 여러 가지 조각상들, 또 십이지상들 사자상이나 여러 가지 석인상 또 화표석 같은 풀리지 않는 의문점에 대해서 중국 황제릉이나 일본 천황릉역 등을 비교해 가면서 보다 객관적으로 한번 밝혀보고자 하고 있습니다.

기자 : 그러면 한 2, 3개월 안에 신라 왕릉에 관한 책이...

이진락 : 예 곧 나올 겁니다. 제목은 여러 가지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여튼 신라왕릉의 비밀이라든가, 또 신라 석각의 양식 그리고 한중일 고대 능묘의 묘제나 능묘 석각에 대한 비교, 이런 식으로 시리즈로 쓸 예정을 하고 있습니다.

기자 : 곧 나올 책 기대하겠습니다. 오늘 인터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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