겔 창틀에 달아논 아내 사진보며

윤명철 논설위원 승인 2024.04.29 11:38 의견 0

겔(gel) 창틀에 달아논 아내 보며.

윤명철

아내 본다.

샛노랑 모래빛 품어

유독 새파란

사막 하늘에 걸쳐 논

천 조각 본다.

두고 온,

4000킬로 너머

새하양 해알 솟구치고

샛노랑 달빛들 번져오는

동녘에

남겨 둔

아내 얼굴 본다.

빗발친 화살풍 뚫고

올라 탄

불색 안장 위에서

황급히 잡은

연분홍 손길에 매달린

한 장

그림.

‘하늘(tengri)’

때론

찡그려도

먹구름 어른대도

빗줄기 쏟아내도

웃기만 하는 아내

부른 배 어루며

웃기만 하는 아내.

끝 내는

겁(劫)

같은 사막의 모래알 될

나.

기약없는 그리움에

넋마져 폐허 되는데도

여전히

늘 그 자리에서

웃기만 하는

아내.

틈나면

전갈 사냥 나가

빈 활줄 틩기다간

신기루 만들며 만들며

초록 그리움

그려 그려 넣는다.

너덜대는 그림처럼

늙어가는 나.

피안의 해후

고대하며

보고 또 본다.

망한 고구려에서 품고 온

아내 그림을...

2024, 4. 고구려 유민들이 죽은 사마르칸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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