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 천년사 임나일본부 논쟁과 연관해

2010년도에 발표한 글입니다. 참고용

윤명철 논설위원 승인 2024.04.29 11:41 의견 0

2010년 4월에 발표한 글입니다.

윤명철

-- 임나일본부설 합의했지만..

왜곡 교과서 수정 강제력 없어

미래적인 역사상 설정 노력을

제2기 한일 역사공동위원회는 지난 3월23일 몇 가지 사안과 함께 ‘임나일본부’란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내용을 한일 역사학자들이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임나일본부설은 간단하게 정리하면 4세기쯤에 일본의 야마토 정권이 한반도 남부에 출병해 신라를 정벌하고 가야지방을 정복했으며, 562년 신라에 의해 파멸될 때까지 ‘일본부’라는 관청을 두고 통치했다는 내용이다.

그러니까 한반도 북부는 한사군(漢四郡)이 장기간 지배하고 남쪽은 일본이 200년 가까이 지배했으니 조선은 역사적으로도 식민지였으며, 또다시 일본의 식민지가 되는 것이 역사의 순리라는 논리이다. 사실은 오히려 반대상황일 수도 있는데도 이는 일제 때 어용학자들에 의해 정립된 이래 현재에 이르기까지 지긋지긋할 정도로 끈질기게 주장됐으며, 얼마 전까지는 비록 일부지만 일본의 교과서에 그 내용이 실리기까지 한 이론이다.

학설로서는 이미 생명력을 상실했지만 이번 한일 역사공동위원회에서 합의로 무가치성을 확인한 일은 몇 가지 큰 의미가 있다. 우선 임나일본부설은 일본이 강제적으로 부과한 식민지 질서와 그들의 군사적인 행위를 명분화시킨 정치적인 역사논리이다. 우리 지성계가 아직껏 극복하지 못한 식민사관을 이루는 기본토대이며, 핵심 가운데 하나였다. 그런데 이제는 일본학자들의 협조(?) 덕분에 불쾌한 식민논리와 비논리적인 식민사관을 적극적으로 극복하는 자세를 갖게 됐다. 한편 일본으로서도 비자발적이나마 정치에 종속됐던 제국주의의 지성사를 반성하는 계기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역사를 정치적으로 악용하는 소지를 방지하는 근거를 마련했고, 진실을 왜곡시키는 일이 무모함을 극우집단들에게 역설하는 힘을 얻게 됐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이번 일은 몇 가지 아쉬움을 남겼다. 조광 위원장의 말대로 이 합의가 일부 교과서의 내용을 수정하는 데 강제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다. 물론 일본은 검인정교과서를 채택하고 있지만 특정 교과서에 기술된 내용이 가진 상징적인 의미와 파급력을 고려해 본다면 안타깝다. 또 하나, 한일 역사공동위원회의 발족과 논의주제에서 드러나듯 우리는 습성적으로 방어적인 측면에서 접근하고 있다. 주변세력들에 의해 왜곡된 역사상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점에서 사실의 확인과 진실의 추구는 역사학자들의 도리이기도 하다.

이번 일을 계기로 우리 학계는 고대에 주민들이 한반도에서 일본열도로 건너가는 이유와 과정, 그리고 그들이 일본 고대국가의 원형을 만들어가는 데 실천한 역할 등을 구체적으로 연구하고 전파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서는 공동의 역사교과서를 편찬하는 과정에서 이런 부분을 적극적으로 논의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번 일을 성공적으로 완수한 한일 역사공동위원회와 역사학계가 앞으로 해야 할 일은 과거의 갈등을 전제로 한 역사문제의 이해와 조정역할을 넘어서는 것이다. 동아시아 공동체의 탄생이 불가피한 시대상황 속에서 과거의 역사 또한 동아시아 전체의 입장에서 바라보고, 아울러 공동체의 수립에 도움이 되는 미래적인 역사상을 설정해가는 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또 다른 역사왜곡인 중국의 동북공정은 우리의 장래와 동아시아의 미래에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이제 곧 고구려의 역사는 중국역사이며, 광개토대왕은 칭기즈칸과 마찬가지로 중국인이라고 서술한 교과서가 등장할 가능성이 크다. 동북공정을 극복하는 대안으로 설립한 ‘동북아역사재단’에서마저 중국전담실을 없앤 우린 머지않아 뒷북을 치면서 ‘한중 역사공동위원회’를 구성하고, ‘임나일본부설’과 마찬가지로 지루한 공론을 계속할지도 모른다. 한국 중국 일본에 걸린 시계는 세계 어느 지역보다도 빠르게 돌아가고 있는데도 말이다.

[267호, 2010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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