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오죽헌탐방

화폐에 등장한 신사임당과 이이의 배경지
신사임당의 향기가 묻어나는 오죽헌

이종철 선임기자 승인 2024.05.06 10:42 의견 0
오죽헌 이이 동상
오죽헌 전경
오죽헌입구

매홀역사문화포럼의 행사로 오랜만에 오게 된 강원도(江原道)이다.
이제 강원도는 강원특별자치도로 불린다. 먼저 강릉 오죽헌(烏竹軒)으로 들어섰다. 강릉 오죽헌은 검은 대나무가 집 주변을 둘러싸고 있어서 오죽헌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오죽헌은 우리나라 가옥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 중의 하나이다. 조선 중기 사대부 주택의 별당 모습을 살필 수 있는 곳으로 보물 제165호로 1995년에 복원되었고 한다.

오죽헌에 들어서니 먼저 율곡 이이의 동상이 서 있다. 동상 아래에서 만난 글귀가 내 눈에 들어왔다.

- 이득을 보려거든 옳은 것인가를 생각하라.

길을 걸어 자경문(自警門)을 들어섰다. 자경문은 오죽헌의 안팎을 가르는 문이다, 율곡은 어머니를 여읜 후 금강산에 들어갔다가 유학에 뜻을 두고 일 년 만에 돌아왔다. 그때 강릉 외가로 와 외할머니 앞에서 스스로 경계하는 글이라는 의미의 자경문(自警文)을 지었는데 거기서 따온 이름이다. (문 앞의 설명에서) 자경문을 읽으며 마음을 가다듬어 보았다.

성인이 되고자 쉼 없이 노력한다.

마음을 정하는 데는 먼저 말을 적게 한다.

놀아버린 마음을 거두어들여 바르게 한다,

매사에 공손하며 섬기고 조심한다.

독서 공부에는 생각이 앞서야 한다.

재산과 명예에 마음을 두지 않는다,

해야 할 일이라면 정성을 다한다,

천하경영에 억울한 희생이 없어야 한다.

아무리 포악한 사람이라도 감화시킨다.

때가 아닌 잠을 자는 것을 경계한다.

수양과 공부는 서두르지 않고 계속한다. ... (자경문(自警文))

오죽헌의 안채와 사랑채를 관람하였다. 안채는 안주인이 생활하던 공간이고 사랑채는 바깥주인이 거처하던 공간이다. 문득 사임당이 쓴 시를 만난다. 사임당이 서울 시댁에 있을 때 고향에 홀로 계시는 친정어머니를 그리며 지은 시이다, 사임당이 어머니를 그리는 마음을 느낄 수 있다.

산 첩첩 내 고향 여기서 천리

꿈속에도 오로지 고향 생각뿐

한송정 언덕 위에 외로이 뜬 달

경포대 앞에는 한 줄기 바람

갈매기는 모래톱에 헤어졌다 모이고

고깃배는 바다 위를 오고가겠지

언제쯤 강릉 길 다시 밟아가

어머니 곁에 앉아 바느질할까 ...(어머니를 그리며/ 신사임당)

오죽헌을 들어서 왼쪽 마루방은 율곡이 여섯 살 대까지 공부하던 곳이며 오른쪽의 온돌방은 1536년에 신사임당이 용이 문머리에 서려 있는 꿈을 꾸고 율곡을 낳은 곳이다. 몽룡실(夢龍室)이라고 부르는 이 온돌방에는 신사임당의 영정이 모셔져 있다. (건물 앞 설명에서)

오죽헌 안에 커다란 베롱나무가 있다. 베롱나무는 강릉시의 시화(市花)로 꽃피는 기간이 100일이나 된다고 하여 백일홍이라고도 한다. 이 베롱나무는 고사한 원줄기에서 돋아난 새싹이 자란 것으로 나이가 600살이 넘는다고 한다. 신사임당과 율곡 모자(母子)가 어루만졌을 이 베롱나무는 오죽헌을 지켜주는 수호목(守護木)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한다. (나무 앞 설명에서)

길을 걸어 오죽헌을 나오니 왼쪽에 커다랗게 오만원권과 오천원권 지폐의 신사임당과 율곡 이이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 오죽헌(烏竹軒)은 조선 초기 강릉의 선비 최치운이 지은 것으로 전한다. 그의 아들 최응현 의 외손(外孫)에게 상속되어 오다가 1975에 강릉시로 이관되었다. 경내에 율곡 이이의 사당인 문성사와 율곡기념관 강릉시립박물관과 율곡 인성교육관을 지으면서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건물 앞 설명에서)

● 신사임당(申師任堂, 1504-1551)은 조선 시대의 예술가이다. 자수 시문 그림 등 여러 방면에 재능이 뛰어났는데 특히 그림을 잘 그려 생존 당시에 이미 이름이 널리 알려졌다. 초충도, 산수도, 묵포도도 등 다양한 소재를 다룬 그림과 간결하고 단정한 필치의 초서, 전서 등의 글씨와 유대관령망친정(踰大關嶺望親庭) 등의 한시가 전한다. (건물 앞 설명에서)

● 이이(李珥, 1536-1584)는 어머니인 신사임당에게 학문을 배워 13세에 진사 초시에 합격하고 29세에 식년 문과에 장원급제하여 벼슬길에 나아갔다. 호조 좌랑에서 시작하여 황해도 관찰사 대사헌을 거처 호조, 이조, 형조, 병조판서 등을 지내며 국정 운영에 참여하였다. 천도책(天道策), 성학집요(聖學輯要), 격몽요결(擊蒙要訣) 등의 저술을 남겼다. 오죽헌에서 태어나 자랐던 이이는 외할머니인 용인 이씨를 뵙기 위해 자주 강릉을 다녀갔다. (건물 앞 설명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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