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우식 칼럼]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본에 관한 연구논문 한국과 일본에서 출판

직지보다 138년 빠른 1239년에 금속활자로 인쇄된 『남명천화상송증도가』

문귀호 선임기자 승인 2024.04.02 07:31 | 최종 수정 2024.04.03 15:05 의견 0

그림 1. 2024년 1월에 창간된 강원대학교 국학연구소 학술지 『국학』 창간호에 게재된 세계 최고 금속활자본 『남명천화상송증도가』에 관한 연구논문의 표지와 국문 초록 이미지

『직지(直指)』 , 영어권에서는 『Jikji』로 통용되는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白雲和尙抄錄佛祖直指心體要節)『』은 2001년에 독일에서 구텐베르그가 1455년경에 금속활자로 인쇄한 『42행 성서(聖書)』와 함께 동서양의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 인쇄본으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었다. 아쉽게도 1377년 고려에서 인쇄된 『직지』는 프랑스 국립중앙도서관(BnF, The Bibliothèque nationale de France)가 소장하고 있어 우리나라는 『직지』를 금속활자로 인쇄한 나라로서의 명예만 가지고 있다.

필자는 2016년경 우연한 기회에 세계 최고 금속활자로 화제가 되기도 했던 증도가자(證道歌字)에 관한 논란을 접하게 되어 진위의 판별 방법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문제의 활자가 1239년 이전에 금속활자로 인쇄된 『남명천화상송증도가(南明泉和尙訟證道歌)』 라는 불교 서적을 인쇄한 금속활자일 것으로 추정되어 책의 이름을 따서 증도가자라고 명명된 것임을 알게 되었다. 증도가자에 관한 자료를 검색하기도 하고 논란의 중심에 서 있던 서지학자들과의 교류를 통해서 사건의 배경에 관해서 조금씩 정보를 얻게 되었다.

조사과정에서 필자가 대학 재학시절인 1980년대 초반에 여러 가지 『증도가』 판본 중에서 한 권(구 안동본, 현 공인본)이 1239년에 금속활자로 인쇄된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본이라는 주장이 있었던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논란의 중심이 되었던 『증도가』를 실제로 접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모든 판본의 이미지를 얻어 오랜 기간 면밀하게 비교 분석을 하면서 각 판본의 인쇄 방법과 인쇄 순서, 인쇄 시기를 특정할 수 있는 몇 가지 특징을 찾아낼 수 있었다. 그동안의 연구 내용을 종합해서 검토한 결과 『남명천화상송증도가』 공인본은 1980년대에 주장된 바와 같이 금속활자로 인쇄된 것임을 확신할 수 있게 되었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 적혀 있는 간기의 내용을 바탕으로 이 책은 1239년에 금속활자로 인쇄된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이러한 필자의 연구 결과는 국내 학술지에 20여 차례 연구논문으로 투고하였으나 서지학자들의 반대로 17차례나 게재 불가 판정을 받았다. 2022년부터 2023년까지 해외의 영문학술지에 4편의 연구논문을 발표하였고 2023년 6월 말 경북대학교에서 개최된 2023 AAS-in-Asia 국제학술대회의 스페셜 라운드테이블(Special Roundtable)에서 구두 발표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여러 가지 우여곡절이 있었으나 이번에 강원대학교 국학연구소에서 창간한 학술지인 『국학』 창간호(2024년 1월 발행)에 필자의 연구논문(세계 최고(最古) 금속 활자본, 『남명천화상송증도가(南明泉和尙頌證道歌)』 - 네 가지 판본의 인쇄 순서, 인쇄 시기 및 인쇄 방법의 규명 -)이 게재되었다. 현재까지 국내 학술지에는 6편의 연구논문이 게재된 셈이다.

2024년 2월 말에는 일본 동경외국어대학(東京外国語大学) 명예교수이며 일본 동경 간다 외국어대학(神田外国語大学) 조선어학부 교수를 역임하셨으며, 1993년에 한글발전공로자로 대통령 표창을 받으신 저명한 한국어학자 간노 히로오미(菅野裕臣, 1936년 3월 4일~ 2022년 10월 15일)선생의 추도학술논집에 “高麗・高宗26年印刷の世界最古金属活字本 『南明泉和尚頌証道歌』の発見 (고려 고종26년에 인쇄된 세계 최고 금속활자본 『남명천화상송증도가』의 발견)“이라는 제목으로 일본어 논문을 발표하였다 (그림 2). 필자의 일본어 논문의 마지막 페이지에는 한글 활자, 서체, 타이포그래피, 활자 인쇄사 분야의 전문가인 일본 국립대학법인 쓰쿠바기술대학(筑波技術大学) 류현국(劉賢國) 교수의 심사평이 함께 게재되어 필자의 연구 내용과 결론이 역사적 배경과 함께 충분히 수긍할 수 있는 내용임을 뒷받침하고 있다. 그림 3은 류현국 교수가 국내에서 출판한 대표적인 저서의 표지 사진이다.

그림 2. 2024년 2월 일본에서 출판된 菅野裕臣(Kanno Hiroomi)교수 추도 학술논집의 표지와 “高麗・高宗26年印刷の世界最古金属活字本 『南明泉和尚頌証道歌』の発見 (고려 고종26년에 인쇄된 세계 최고 금속활자본 『남명천화상송증도가』의 발견)“이라는 제목의 일본어 논문의 첫 페이지

그림 3. 한글 활자, 서체, 타이포그래피, 활자인쇄사 분야의 전문가인 일본 국립대학법인 쓰쿠바기술대학 류현국 교수의 대표적인 저서의 일부

강원대학교 국학연구소가 창간한 『국학』에 소개한 『남명천화상송증도가』 네 가지 판본의 이미지 비교 분석 결과의 일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그림 4는 제29장 후엽의 이미지로 언뜻 보기에는 같은 책처럼 보일 정도로 유사하다. 실물 크기 또는 확대된 이미지로 비교하게 되면 각 판본의 특징과 판본 간의 차이가 드러나게 된다.

그림 4. 『남명천화상송증도가』 네 가지 판본의 이미지 비교. 공인본과 삼성본은 보물로 지정되어 있으며 대구본과 반야사본은 문화재 지정 신청 중이거나 지정이 보류된 판본이다. 공인본이 금속활자본으로 추정되는 판본이다.

그림 5에는 제6장 후엽에서 동일한 위치에 인쇄된 글자 27자(9행 x 3열 = 27자)를 각 판본에서 집자하여 비교한 결과로 상단에 인출된 순서를 번호로 표시하였다. 인출된 순서는 글자 모양의 차이, 획 굵기의 변화, 획 탈락의 정도, 목리문(나뭇결)의 유무와 크기, 먹 색상의 차이 등을 바탕으로 합리적인 판단이 가능하다. 결론은 공인본 → 반야사본 → 대구본 → 삼성본의 순서로 인출된 것으로 보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다. 공인본의 먹색과 글자의 획이 나머지 판본에 비해서 옅고 가는 것을 바탕으로 판단하면 금속활자본으로 목판으로 인쇄된 다른 판본의 모본임을 알 수 있다. 또한 공인본에는 나머지 판본에서 나타나는 목리문(나뭇결)이 관찰되지 않는 것도 금속활자 인쇄본임을 방증하고 있다.

그림 5. 『남명천화상송증도가』 제6장 후엽의 동일한 위치에 인쇄된 글자 27자(9행 x 3열 = 27자)를 각 판본에서 집자하여 비교한 결과로 상단에 인출된 순서를 번호로 표시하였다. (인쇄 순서: ⓵ 공인본 → ⓶ 반야사본 → ⓷ 대구본 → ⓸ 삼성본)

이러한 결과를 조선시대 금속활자 제작 시기와 더불어 시대순으로 정리하면 그림 6과 같이 표현할 수 있다. 서지학자들은 『남명천화상송증도가』 금속활자본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오래된 결론을 유지하는데 급급하면서도 『남명천화상송증도가』를 인쇄하는데 사용된 금속활자를 『증도가자』라고 모순된 주장을 하고 있다. 과학 분야에서는 과거에 내려진 결론도 새로운 증거가 나타나면 언제든 뒤집힐 수 있고 그것은 매우 당연한 일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학문도 발전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필자가 경험한 국내 서지학계의 폐쇄성은 전 세계에서 으뜸이 아닐까 생각된다. 필자가 영문이나 일본어로 작성하여 투고한 논문은 철저한 심사를 거쳐 대부분 통과 되었으나 유독 국내 학술지에서는 매번 같은 심사위원이 투고자의 자격을 거론하거나 인신공격성 심사평과 함께 게재 불가 통보를 받는 것이 일상이 되어 버렸다. 심지어는 심사평을 복사해서 붙여 넣는 일도 있었다. 우리나라 학문 풍토의 앞날이 심히 걱정스럽다.

그림 6. 『남명천화상송증도가』 네 가지 판본의 인출 시기를 조선시대 금속활자의 제작 시기와 비교하여 정리한 결과

『직지』보다 138년 이른 1239년에 금속활자로 인쇄된 『남명천화상송증도가』 공인본은 국내에 소장되어 있으며 보물로 지정된 상태이다. 다만 보물 지정 당시에 『남명천화상송증도가』 공인본은 금속활자본이 아닌 목판본으로 판정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필자가 밝혀낸 금속활자본의 특징을 바탕으로 공개적인 재조사를 실시하여 『남명천화상송증도가』 공인본이 금속활자본으로 인정된다면 『직지』보다 138년, 쿠텐베르그 『42행 성서』보다 216년 빠른 시기에 인쇄된 세계 최고 금속활자본을 보유한 나라가 될 수 있으며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의 노력으로 영어권 뿐만 아니라 일본에서도 『남명천화상송증도가』 공인본이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본일 개연성이 높다는 사실은 많이 알려지게 되었다. 현재도 2편의 영문 논문이 심사 중이며 조만간 채택 여부에 대한 결론이 나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의 진가를 우리나라의 자칭 전문가들의 손으로 폄훼하는 일이 사라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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