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과동정(良苽洞亭) 간원대인가 제봉의 별서인가

마을회관역할 한 마을공동정원
고경명 별서로도 부름

고경임 시민기자 승인 2024.04.15 06:53 | 최종 수정 2024.04.15 08:46 의견 1

광주문화유산지킴이 회원들은 4월 날씨답지 않은 더운 날씨에 광주시민과 함께 양과동정에서 지킴이 활동을 하였다. 기온은 높았지만 정자에 앉아 정취를 느끼기에 딱 좋은 날씨다. 바람도 살랑살랑 불고 연푸른 논밭과 나무들이 시 한수 읊기에 안성맞춤이다.

양과동정 지킴이 활동 후 깨끗하게 정화된 모습 <사진 김낙현>

◆ 양과동정은 정자가 언제 지어졌는지 누구에 의해 지어졌는 증명할 수 있는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으나 근거는 영사정 최형한(?~1504)이 지은 ‘제간원대’라는 시구이다. 최형한의 출생연대는 잘 알 수 없으나 교유하던 성현의 출생연도가 세종 21년(1439년)이다. 동 연배로 본다면 1440년 무렵 태어났을 것이다. 이 시를 지은 최형한은 1480년(성종 11) 진사에 올라 전교서(교서관) 정자를, 연산군 4년(1498년)에 사간원 헌납을 지냈다.

그리고 1484년 병으로 사직하였고 연이어 양친을 여의어 건지산 곁에 영사정을 지어 예를 다했다. 다시 관직에 나간 것은 1490년대 초반이다. 최형한이 고향에 머물렀던 1484년에서 1490년 사이 부모상 기간을 제외하고 양과동정에 오가며 선비들과 교유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양과동정은 1480년대에는 지어졌을 것으로 본다. 적어도 그가 오기 전에 정자가 지어졌다는 증거가 된다.

양과동정 거미줄제거, 마루닦기, 주변정활활동 모습

◆ 양과동정의 명칭으로 보아 개인 소유가 아닌 마을 공유 정자라는 뜻의 ‘동정(洞亭)’으로 되어있고, 또 그 용도가 개인 유락이 아닌 마을의 공회당으로 마을의 큰일인 동적, 향약 등의 업무를 여기에서 처리하였다. 지금의 마을회관의 역할을 했던 곳으로 마을 사람들이 모여 동네 일을 의논했던 자리인 샘이다.

◆ 영사정 최형한이 지은 제간원대(題諫院臺) 편액을 살펴보면 ”간원이란 이름이 어찌하여 생겼는가 운각(芸閣) 상대(霜臺) 대를 이어 나왔다네“라고 적고 있다. 그리고 ”간원대는 지금의 양과동정을 가리키고 예로부터 대각의 높은 신하들이 이 동네에서 많이 배출되어 나라를 위해 건의할 일이 있을 때 이 정자에 모여 상소를 하였기 때문에 간원대라고 이르기도 하였다“라고 풀이해 놓았다.

여기에서 운각은 전교서의 다른 이름이고 상대는 사헌부의 다른 이름이다. 최영한은 전교서 정자, 사헌부 장령을 하였다.영사정은 그의 호이자 지산제 옆에 있던 그의 누정이다. 본관은 영암이며 광주 출신이다. 1453년 식년 문과에 급제하고 1488년 옥과 현감으로 부임하여 영귀정을 지었으며 1498년사간원 헌납이 되었고, 1503년에 영암 군수로 나갔으나 다음 해 갑자사화 때 궁궐앞에서 대죄하다 굶어 죽었다고 한다.

◆ 양과동정에 많은 편액들이 있는데 제봉 고경명 장군의 편액도 있다.
제양과모정(題良瓜茅亭)을 살펴보면 “정자에 마을의 이웃들 친절하게 맞이하여 (중략) 이제까지 오고 가며 그 얼굴이 익숙하니 닭과 개도 나를 알아 경계함을 잊었도다” 에서 제봉이 가까운 압촌동에 살면서 이곳 양과동정을 별서처럼 이용하였을 것이다. 그래서 고경명의 별서라고 한다.

제봉 고경명은 1558년 문과에 급제한 뒤 교리 동래부사 영암군수 승문원판교 등을 지냈고 특히 시로 이름을 크게 떨쳤다. 문집으로 「제봉집」이 있고 무등산의 대표적인 유산기 「유서석록」이 있다. 제봉은 문인이지만 의병장으로서 더 알려졌다.
그는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호남에서 최초로 의병을 모집하여 장남 고종후 둘째 아들 고인후와 함께 금산전투에서 왜군과 싸우다 고경명과 고인후가 전사하고 장남 고종후는 진주성 전투에서 순절하였다. 3 부자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포충이라는 사액을 받았다. 이들 3 부자와 유팽로, 안영을 배향하고 있는 포충사는 양과동정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도 장성 필암서원과 함께 광주 전남지역에서 헐리지 않은 2대 서원이다.

이형만 지도사의 양과동정 이야기 <사진 김낙현>

◆ 광주문화유산지킴이는 국가유산지킴이지도사로서 함께 참여한 20여 명의 시민들에게 국가유산지킴이가 무엇인지 어떤 활동을 하는지 알아보는 시간을 갖고 주변정화활동, 모니터링 활동을 실시하고 참여소감을 글로 써보고 정자에 앉아 느껴보는 활동을 하였다.
시민 참여자 대부분은 자원봉사활동 사이트에서 봉사에 참여하고자 신청하였고 국가유산지킴이에 대해 모르고 참여하였으나 국가유산지킴이에 대해 알게 된 계기가 되었으며 다음에도 참여해야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지도사들은 많은 시민이 참여할 수 있도록 홍보방안을 마련해야겠다고 하였다.

함께 참여한 시민과 함께 기념촬영


참고문헌: 김희태, 「광주문화재단 누정총서9 부용정 양과동정」,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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