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세종 때에 시작된 '조선의 홍수 통제 시스템' : 수표와 수표교

-수표교는 장충단 공원으로 옮겨져 관리 (유형문화재 제18호)
-수표는 세종대왕기념관으로 옮겨져 관리 (보물 제838호)

이필열 승인 2024.04.17 21:38 의견 0

수표교(水標橋)는 원래 청계천 2가에 있었던 다리로서 수표가 새겨져 있는 청계천의 다리이다. 조선 세종 2년(1420)에 놓였으며, 당시에는 이곳에 소와 말을 매매하거나 대여해주는 말 시장이 있었다 하여 ‘마전교(馬廛橋)’라고도 불리었다. 광통교와 함께 한양 도성에서 가장 유명한 다리였다. 500년간 서울 도심에 있던 수표교는 1958년 청계천 복개 공사가 시작 되면서 뜯어져 1959년 장충단 공원으로 옮겨졌다. 장충단 공원으로 옮겨진 수표교는 화강암으로 만들었으며 길이 27.5m, 넓이 약 8.3m 최대 높이 3.4m로 실측 되었다. 다리를 받치고 있는 교각의 수는 총 45개이다. 교각의 윗단과 아랫단의 돌 모습이 다르다. 아랫단은 다듬지 않은 것이고, 윗단은 모서리를 다듬은 것이다. 그리고 물의 저항을 감소시키기 위해 교각의 돌들을 사선으로 세웠는데 윗단과 아랫단의 돌이 약간 엇갈려 놓여있다. 난간은 바깥쪽 귀틀석 위에 설치 하였다. 난간의 엄지 기둥은 총 11개이며 연꽃 봉오리, 연 잎 등의 조각으로 아름답게 만들었다. 2005년 청계천 복원 당시 원래의 다리 자리로 옮기려 했으나, 복원된 청계천의 폭과 원래 수표교의 길이가 맞지 않아서 옮기지 못 했고 대신 수표교가 있던 원래의 그 자리에 임시 다리를 세워 놓았다.

1958년 청계천 복개 공사로 장충단 공원으로 옮겨져 보관되고 있는 수표교의 모습이다


영조 36년(1760)에 다리를 개보수하면서 다리의 기둥에 ‘경(庚), 진(辰), 지(地), 평(平)’이라는 글씨를 새겨 두어 4단계의 물 높이를 관측하였고 하천 범람의 기준으로 삼았다. 이때부터 수중주석표(水中柱石標)라는 말이 회자 되어서 ‘수표교(水標橋)’라 부르게 되었다. 수표교는 광통교와 함께 청계천에 있던 가장 유명한 다리로 다리 밟기, 연날리기 등의 행사가 행해지던 대표적인 민속놀이 공간 이었다. 수표교는 도성민 들의 삶인 한양의 중심지였고, 또한 어가(御駕)가 지나가는 중대한 다리였다. 포도청과 군문의 중요한 순라 구역 중의 하나로 군사들의 경수소(警守所)가 수표교에 있었다. 사람들의 통행이 많았던 만큼 재미있는 이야기도 많이 전해지며 대표적으로 숙종과 장희빈의 만남에 관한 이야기가 남아 있다.

수표(水標)는 강우량을 측정하는 측우기와 함께 하천의 수위 정도를 파악하기 위하여 세종 때에 처음으로 제작 되었다. 수표는 하천의 수위를 과학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기구로 측우기와 함께 세종 때에 만들어진 대표적인 과학 기기의 하나이다. 1441년 (세종23)에 청계천 마전교에 수표를 설치한 이후 마전교는 이때부터 수표교로 불리기 시작하였다. 이때 설치된 수표는 나무로 제작된 것이었다. 처음에는 물 속에 돌을 놓고 그 위에 구멍을 파서 나무로 만든 기둥을 세웠다. 나무기둥에는 눈금을 새겨 수위를 알아 볼 수 있도록 하였다. 나무의 경우 만들기는 쉽지만, 수중에서 쉽게 썩는 문제가 있어서 성종 때에는 석표로 바꾸었다. 예조는 비가 올 때 마다 수표의 수심 정도를 왕에게 보고 하였다. 돌로 개수했던 성종 때의 수표는 남아 있지 않다. 현재 남아있는 수표는 1833년(순조33)에 화강암으로 만들어 다시 세운 것으로 세종대왕기념관에 보존하고 있다. 1985년 보물 제 838호로 지정 되었다. 수표는 화강석으로 제작되었으며 높이는 약 3.2m이다. 돌기둥의 양면에는 1척에서 10척까지 눈금을 새겼고, 뒷면에는 3척마다 작은 구멍을 파서 3척에는 갈수(渴水), 6척에는 평수(平水), 9척에는 대수(大水)를 표기하였다. 평수 6척은 보통 수위였으며, 대수 9척은 하천 범람의 위험 수위를 나타냄을 알 수 있다.

세종대왕기념관으로 옮겨져 관리하고 있는 보물 제 838호 수표의 모습이다


세종 때에 제작한 수표가 성종 이후로 석표로 바뀌어서 1833년(순조33)에 다시 만들어 세운 수표가 세종대왕기념관에 보관되어 있고, 수표교는 1958년 장충단 공원으로 옮겨져 있다. 지금은 이렇게 아쉽지만 수표와 수표교가 각각 떨어져서 관리가 되고 있다. 조선 세종이 1442년에 세계 최초의 측우기를 만들고, 그 이전 해인 1441년에 수표를 만들어서 백성들의 홍수 피해를 덜어주려고 노력한 조선의 홍수통제시스템이 수표와 수표교 이다.

수표교가 있던 원래의 자리인 청계천에는 임시다리가 설치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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