禪도, 無도 空도 지워지는 사막

사마르칸드에서 비오는 날 혜초의 마음을 떠올리며

윤명철 논설위원 승인 2024.04.20 17:03 | 최종 수정 2024.04.21 11:28 의견 0

禪도, 無도 空도 지워지는 사막

윤명철

끝없이 지워지는 곳.


아무리 많고, 독한 사연도

다 지워지는 곳.


수 천 년.

느릿 느릿

꾹 꾹

혀 빼물고 거품 물다 죽는

어미들 보면서도

黙 黙

수 백 대 이어가며

모래바다에 찍어오는

쌍봉 낙타의

두 쪽 난 발자국들도.

날랜,

수 백 수 천

수 만 마리

힘 펄펄 넘친 말들

두 눈 알만 내놓고

초생달 벼린 ‘月刀’ 휘두르는

수 천, 수 만 전사들 태운 채

수 백 년

수 천 년 파인

쇠편자 자국들도.

한 점 남김없이

지워버려.

없음이 아니라 비워진

떨림(鳴)조차 지워버린

사막에서

끊음(禪) 찾아

먼 동방 떠나온 청년 승

길고 긴 걸음

이제사 그치며

헤진 몸땡이로 모래알 된다.

鳴도

不도

無도

空도 아닌

지움을 택하면서...

2025년, 3월 10일

사마르칸드의 비오시는 밤 . 젊은 혜초 떠올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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