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벽당의 꽃무릇

가사문학의 산실, 환벽당에 꽃무릇이 활짝 피었다.

이재은 전문기자 승인 2024.10.05 12:48 의견 0

환벽당은 광주호 상류 충효동 언덕 위에 높다랗게 지은 정자로 조선시대 때 나주목사 김윤제가 을사사화 때 고향으로 돌아와 건물을 세우고 후학에 몰두하던 곳이다. 서하당 김성원과 송강 정철이 대표적인 제자다. 초기에는 ‘벽간당’이라고도 지었으며 정철은 과거에 급제하기 전까지 이곳에 머물면서 공부했고 후에 김윤제의 외손녀와 결혼했다.

앞면 3칸·옆면 2칸으로, 옆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의 팔작지붕 건물이며, 원래는 전통적 누정 형식이었으나, 다시 세우면서 가운데 2칸은 방으로 하고 앞쪽과 오른쪽을 마루로 바꾼 것으로 보인다. 현판은 우암 송시열이 썼으며, 임억령과 조자이의 시가 현판으로 걸려있다.

환벽당 아래에는 작은 연못이 있다.

송시열이 쓴 '환벽당' 현판이 흐릿하게 보인다.

많은 동호인들이 찾아와 그림을 그리고 있다.

10월 첫날에 찾은 환벽당은 늦은 시기에 꽃무릇이 만개했는데 이는 관리하는 부서에서 예초시기를 적절하게 조절하여 인근의 불갑사, 선운사 등과 만개 시기가 겹치지 않도록 한 세심한 배려의 결과라고 한다.

다른 지역에서는 이미 지고 있는 꽃무릇이 여기서는 이제야 피고 있는 9월 26의 환벽당 모습.

환벽당 뒷쪽의 굴뚝,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곳에는 불을 지폈다고 하는데 지금은 굴뚝 바로 좌측에 있는 연도(煙道)가 막혀 불을 때지 못한다고 한다. 많은 탐방객들이 찾는 이 정자에 있는 두 개의 방은 늘 습하고 곰팡이가 끼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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