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앗 이 느낌] 114 봄바람

흔들리며 명시조 감상 56

김명호 전문위원 승인 2024.04.18 11:18 | 최종 수정 2024.04.18 21:24 의견 0

봄바람

월암 노재연*

두견새 토혈 울음

진달래를 물들이고

핏빛의 꽃잎파린

붉은 바람 일으켜서

한사내

냉한 가슴에

모닥불을 지핀다

(출처: 노재연 시조집 『벼랑에 핀 꽃』)

*****

초장부터 옛 기억을 환기시킨다.

김소월의 ‘진달래꽃’ 서정주의 ‘귀촉도’ 고려가요‘동동’의 연원을 가진 두견새와 진달래의 이야기를 생각나게 하여 반갑기까지 하다. 온 천지가 분홍빛으로 물들어 봄 속에 파묻힌 전경이 아름답지만, 두견새의 토혈로 물든 슬픔의 또 다른 이면이다. 비장미란 이런 것인가.

종장에서 이별과 그리움을 넘어 정반합의 승화된 아름다움으로 긍정의 미학을 보여주고 있다.

세월이 흘러 열정도 식고 감정도 무디어진 절벽 같은 노구의 몸이지만, 다시 정열의 모닥불을 지피게 한다.

진달래의 향연이, 새싹이 움트는 기운이, 비록 슬픈 전설을 지녔지만, 한 사내의 마음을 움직이니 거대한 봄바람이 아니고 무엇이랴?

*월암 노재연 : 서울대 언어학과 졸, 시조시인, 시조집 '비움의 미학' 등 5권, 시조문학상 등 다수

사진 신정숙


글 김명호, 사진 신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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