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을 구한 3대성씨 풍천임씨, 사명대사 후예 울산 옥현재(玉峴齋) 춘계향사 성료

호국사상과 애민정신이 널리 퍼지는 계기와 韓·日외교사 연구에 새롭게 활용 되길

임인식 시민기자 승인 2024.04.21 22:16 | 최종 수정 2024.04.22 06:22 의견 4

대한민국 국민이면 임진왜란 때 승병으로 나라를 구한 호국대성 사명대사(사명당)을 모르는 사람은 없겠지만 속가(俗家)의 풍천임씨(豐川任氏) 후예들이 모여 매년 선조에 대한 예를 올리며 재실을 마련하여 선조숭봉과 함께 호국사상과 애민정신을 기리며 조선을 구한 3대 성씨답게 풍산류씨 서애 유성룡 선생, 덕수이씨 충무공 이순신 장군, 풍천임씨 유정 사명대사의 형(兄) 후손들의 울산 옥현재(玉峴齋) 춘계향사(春季享祀)가 4월21일(일) 유교의식으로 엄숙히 거행됐다.

이날 제향에는 풍천임씨 울산종친회 회장 임상빈/총무 임문관/ 종손 임홍석 주관으로 멀리 보령에서 참석한 풍천임씨 정승공파 대종회장 임시재, 사무총장 임두순, 풍천임씨중앙종친회 부회장 임인식(사단법인 한국국가유산지킴이연합회 부회장), 보령시종친회장 임화빈과 울산종친회 고문 임춘빈, 직전회장 임광식, 부회장 임상혁등 원근각지에서 참석한 종인 가족등 40여명이 참석했다.

전통 유교식으로 경건하게 제향된 사명대사의 증조부(曾祖父) 임효곤공(任孝崑公)과 사명대사의 형(兄)의 후손으로 서천군수를 지낸 17세 군수공 임민지공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냈다.

풍천임씨 재실로는 가장 아름답기로 소문난 옥현재(玉峴齋)는 울산광역시 남구 무거 2동 1574-6에 위치한 문중재실로 풍천임씨 선조가 울산에 입향하게 되신 민부전서 휘 자순공(子順公) 정승공 휘 향(珦)으로 이어져 효곤(孝崑), 종원(宗元), 수성(守成), 응기(應箕) 응규(應奎사명대사)로 내려오는 후손으로 사명대사의 형 진사 응기공(應箕공)의 5세손으로 서천 군수 휘(諱) 민지공께서 맨 처음으로 울산에 정착하게 되어 입향조로 모시고자 자손들이 선대의 유업을 계승 발전 시키기 위하여 마련한 재실이 옥현재이다.

한편, 밀양 표충사에 사명대사 관련 교지(密陽表忠寺四溟大師關聯敎旨)는 총 7점으로 사명대사에 내려진 교지 1점, 아버지 임수성(任守成)에게 내려진 교지 2점, 어머니 서씨(徐氏)에게 내려진 교지 1점, 할머니 박씨(朴氏)에게 내려진 교지 1점, 증조할아버지 임효곤(任孝昆)에게 내려진 교지 1점, 증조할머니 김씨(金氏)에게 내려진 교지 1점이다. 교지 7점 전부 사명대사가 아닌 법명인 유정(惟政)으로 기록되어 있다. 1990년 1월 16일 밀양 표충사 사명대사 관련 교지는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69호로 지정되었다. 2021년 6월 29일 밀양 표충사 사명대사 관련 교지는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개정에 따라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지정 번호가 삭제되었다.

또한 “사명대사 춘계향사”는 임진왜란 때 승병으로 나라를 구하는데 큰 공을 세운 서산‧사명‧기허 등 3대 선사의 충렬을 기리고자 조선 영조 20년(1744년) 왕명으로 시작된 국가 제향이다.

국내 유일의 불교 의례와 유교 의례가 함께 진행되는 향사는 매년 봄, 가을에 표충사에서 열린다.

무안면 고라리에서 태어난 사명대사는 선조 25년(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49세의 나이에 의병을 모집하고 서산대사 휘하에서 활약해 의승도대장이 됐으며, 1593년 경상도 선종 총섭에 임명됐다.

이후 체찰사 류성룡을 따라 명나라 군사와 연합해 평양성을 탈환하고, 도원수 권율과 의령 등지에서 수많은 전공을 세웠다.

1604년(선조 37) 국서를 받들고 일본에 가서 교토 후시미성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만나 강화를 맺고 포로가 되어 끌려갔던 조선인 3500명을 데리고 이듬해 돌아와 가의(嘉義)의 직위와 어마(御馬) 등을 하사받았다.

풍천임씨중앙종친회(회장 임갑순)에서는 이러한 봉인된 사명대사의 업적과 출가 승려지만 집안에 내려진 수많은 교지와 그동안 밝혀지지 않은 일본 행적등의 다향한 업적을 전문가들과 학술행사를 통해 조명하고 특히 고려절신 사명대사의 고조부 임향(任珦)에 대한 인물 평전을 보령시와 함께 발행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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