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겨울 고추밭 터에 앉아

윤 명철

고맙구나.

잘 자라서

너도 살았고.

사람들도 살았고.

고라니들도 살았고

고추벌레들도 살았고

잎 새들 스쳐가는 한 여름 바람들도 살았고.

이제 죽어서

언 땅에

비록

마른 가지로 박혀있지만

빈 땅 채우고.

쓸쓸한 마음들 댈래주고.

살아서 제 할 일 다했다는

존재를 알리고.

거기에

노추(老醜)도,

죽은 것도

어쩌면 아름다울 수 있다는

未知의 사실까지 살짝

확인시켜 주니.

고맙구나.

살아 고추여.

죽어 고추여.

2월 2일. 한 낮 양지바른 텃 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