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덕만 한국문화유산교육센터장
역사적 가치를 지닌 오래된 건물들이 철거되고, 전통 시장과 골목길이 사라지는 일은 이제 더 이상 낯선 풍경이 아니다. 개발과 경제 논리에 밀려 우리가 살아온 공간과 기억들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문화재로 지정된 일부 유산만이 보호받고 있지만, 그렇지 않은 많은 유산들은 존폐의 기로에 놓여 있다. 이제는 시민 스스로 유산을 지키고 보존하는 '시민유산 보호'의 중요성을 인식해야 할 때다.
시민유산이란 무엇인가?
시민유산은 국가나 지자체가 지정한 문화재에 국한되지 않고, 지역 주민들이 가치를 부여하는 모든 유형·무형의 국가유산을 포함한다. 오래된 동네 서점, 근대 건축물, 지역 축제나 전통 기술 등도 시민유산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유산은 단순한 물리적 공간을 넘어 공동체의 기억과 정체성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중요하다. 하지만 이들은 개발과 재개발의 흐름 속에서 보호받지 못한 채 쉽게 사라지고 있다.
시민의 힘으로 지켜야 한다
과거 유산 보호는 주로 정부 기관이나 전문가의 영역으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행정 절차와 예산상의 한계로 인해 국가가 모든 유산을 보호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이에 따라 시민이 직접 보존 활동에 참여하는 사례가 세계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영국의 내셔널트러스트(National Trust)이다. 시민들이 기금을 모아 유산을 매입하고 관리하는 방식으로, 현재 수천 개의 건축물과 자연유산을 보호하고 있다. 일본 역시 시민들이 나서서 근대 건축물을 매입해 공공 문화공간으로 활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시민유산 보호,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
우선 지역의 유산을 조사하고 기록하는 활동이 필요하다. 오래된 건물이나 장소의 역사적 의미를 찾아내고, 이를 보존할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또 시민들이 직접 참여하는 보존 기금을 조성해 특정 유산을 매입하거나 관리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를 위해 지역사회, 기업, 지자체가 협력하는 방식도 고려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시민들의 관심과 참여이다. 우리가 평소 익숙하게 지나치는 공간이 사실은 소중한 유산일 수 있다. 지역의 유산을 보호하는 것이 단순한 감상이나 보존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공동체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미래 세대에게 물려줄 소중한 자산이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미래를 위한 투자, 지속 가능한 유산 보존
국가유산 보호는 단순한 '보존'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활용과 연계될 때 그 가치가 더욱 커진다. 유산을 문화공간으로 활용하면 지역 경제 활성화에도 기여할 수 있다. 또한 교육 프로그램과 연계해 지역 청소년들에게 문화적 정체성을 심어주는 역할도 할 수 있다.
지금 우리가 지키지 않으면, 우리의 기억과 흔적은 사라질 것이다. 시민유산 보호는 단순한 과거의 보존이 아니라, 우리가 누구이며 어디에서 왔는지를 기억하고, 미래로 이어가는 과정이다. 이제는 시민이 직접 나서서 우리의 유산을 지키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