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국립현대미술관 “임옥상: 여기, 일어서는 땅(~3.12까지)”전시회 가보시기를
“보리밭(1983년)”작품과 한흑구의 수필 “보리(1955년)”를 생각하며
임덕수 편집인
승인
2023.03.06 17:27
의견
0
국립현대미술관에서는 현재 “임옥상: 여기, 일어서는 땅(~3.12까지)”의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전시 작품 중에는 “보리밭(1983년 작)”이 두 점 있다. 보리밭에는 농부가 그려져 있다. 이를 보면서 한흑구님의 수필 “보리(1955년)”가 생각나서 몇 자 적어본다.
수필가 한흑구(1909∼1979)님이 쓰신 수필 중에 “보리”라는 글이 있다. 진실한 분이다. 수필 한 편을 쓰기 위해 2년, 3년을 생각했단다. 일제 때 항일운동을 하다가 옥고까지 치른 분이다. 이는 단순한 보리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보리. 너는 차가운 땅속에서 온 겨울을 자라 왔다./ 칼날같이 매서운 바람이 너의 등을 밀고, 얼음같이 차디찬 눈이 너의 온몸을 덮어 엎눌러도, 너는 너의 푸른 생명을 잃지 않았었다.……너, 보리는 논과 밭과 산등성이에까지, 이미 푸른 바다의 물결로써 온 누리를 뒤덮는다. 낮은 논에도, 높은 밭에도, 산등성이 위에도 보리다. 푸른 보리다. 푸른 봄이다.
너, 보리는 그 순박하고, 억세고, 참을성 많은 농부들과 함께 자라나고, 또한 농부들은 너를 심고, 너를 키우고, 너를 사랑하면서 살아간다./보리, 너는 항상 순박하고, 억세고, 참을성 많은 농부들과 함께, 이 땅에서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1955년)”
보리는 추운 겨울과 싸우기 위해서 땅속에서 굽히지 않는 의지와 인고로써 견디다가 봄을 맞이한 것이다. 한흑구 선생님의 ‘보리’는 항일운동과 조국광복의 줄기찬 의지의 상징물로 묘사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광복 후 30여년이 지난 1980년대에 그려진 임옥상 작가의 “보리밭” 작품을 보노라면, 보리밭은 더 푸르고 싱싱하건만 보리밭에 그려진 농부는 분노하고 슬프다 못해 패잔병처럼 풀이 죽어있는 모습이다. 저래서는 안 된다. 우리 모두는 한흑구 수필가께서 말 한대로 보리처럼 꿋꿋이 푸르게 살아나야만 한다. 우선 전시회장에 많이 가보시기를 권한다.
글 사진 임덕수
ICPSCⓒ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