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야구, 120년의 기록을 넘어 영원한 유산으로 기록하자

- KBO 리그, 40년 역사 속에 대한민국 스포츠의 중심으로 자리매김하다
- 희로애락을 함께한 120년의 야구역사를 이제는 체계적인 자료 정리와 보존이 필요하다

김오현 선임기자 승인 2024.11.01 02:38 | 최종 수정 2024.11.01 16:25 의견 2

기아타이거즈의 2024년 정규시즌과 한국 시리즈우승 단체기념사진(사진제공 기아타이거즈)

한국 야구는 1904년 미국 선교사 필립 질레트(Phillip Gillett)에 의해 황성 YMCA야구단 창단 이후 꾸준히 발전해 온 한국 야구는 1982년 6개 구단 창단과 함께 프로야구 시대를 열었다. 이후 42년 동안 국민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으며 대한민국 대표 스포츠로 자리매김했다.

한국프로야구 창립 총회, KBO 최초 6개 구단 엠블럼과 초대 감독들 사진, 개막전 식전행사 장면(사진제공 네이버 검색)

올해는 한국 프로야구 역사에 길이 남을 한 해로 사상 처음으로 1000만 관중을 돌파, 200경기 매진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까지 세우며 대한민국 프로스포츠 역사에 새로운 장을 열었다. KIA 타이거즈가 광주 기아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2024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 삼성 라이온즈를 7-5로 꺾으며 시리즈 전적 4승 1패로 우승을 차지했다. 이로써 통산 12번째 우승컵을 품에 안았고, 37년 만에 홈 광주에서 우승의 감격을 누리게 되었다.

영국인들이 볼을 치는 게임인 '라운더스'경기, 초장기 야구장 모습, 1846년 뉴저지주에서 열린 경기 모습, 현재 메이저리그의 경기 모습

▶ 미국에서 야구가 발전하고 세계로 퍼져나가다

야구의 정확한 기원은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았다. 1344년에 출간된 프랑스의 한 책에 성직자들이 야구와 흡사한 라 술(La soule)이라는 게임을 즐기는 모습이 등장한다고 한다. 미국 야구의 뿌리는 18세기 후반 영국에서 시작되었다. 그 당시 영국인들은 볼을 치는 게임인 '라운더스(야구와 비슷한 구기종목)'를 즐겼는데, 이것이 현대 야구의 원형이 되었다. 이러한 게임은 19세기 초에 미국으로 전파되었고, 이 새로운 게임은 빠르게 인기를 얻어 1845년에 야구의 최초 규칙이 만들어 지고 첫 번째 공식적인 야구 경기가 열렸다. 1869년에는 미국 최초의 프로야구 팀인 신시내티 레드 스타킹스(Cincinnati Red Stockings)가 결성되었다. 이 팀은 전국을 순회하며 경기를 치렀으며, 야구를 대중적인 스포츠로 확립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내셔널 리그와 아메리칸 리그 엠블럼, 한국인 메이저리거 샌디에이고 김하성 선수와 샌프란시스코 이정후 선수 모습

1871년에는 내셔널 리그(National League)가 설립되어 현대 야구의 기반을 다졌다. 1901년에는 이를 전신으로 하는 아메리칸 리그가 창설되어 양대 리그체제를 갖추게 되었다. 1903년에는 양 리그의 우승 팀간의 승자를 겨루는 월드(World) 시리즈(여기서 월드는 "월드신문사"의 이름으로 신문사에서 스폰서를 해주기 때문에 월드시리즈라는 이름이 쓰임)가 처음으로 치러졌으며, 1933년에는 올스타전이 처음으로 개최되었다. 이후 메이저 리그(Major League Baseball, MLB)는 미국 전역에 걸쳐 팀을 확장하고, 수많은 명장과 스타 선수들을 배출하면서 미국 스포츠계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현재, 메이저 리그는 30개의 팀 (미국 29팀, 캐나다 1팀)이 리그에 참가하고 있으며 전 세계에서 인정받는 스포츠리그 중 하나이며, 매년 열리는 월드 시리즈는 세계 각국의 야구 팬들에게 큰 관심을 받고 있다.

1904년 YMCA 야구단을 가르친 선교사 필립 질레트, 독립운동가이자 YMCA 야구단을 이끌던 여운형과 연기를 하던 송강호 배우, 우리나라 최초의 야구단 YMCA 야구단의 모습

▶ 한국 야구의 역사

한국야구는 1904년 선교사 필립 질레트(Phillip Gillett)가 YMCA에서 야구(野球)를 가르치며 한국 야구가 시작되었다. 조선인 선수로만으로 팀을 꾸린 휘문고보(설립자가 명성황후의 조카 민영휘)가 1923년 펼쳐진 일본고시엔 대회에서 8강에 진출해서 조선 야구의 명예를 드높였다.

1946년 한국과의 친선 야구경기에서 한국이 한점 이라도 내면 야구공을 제공하겠다고 제안을 했던 잉거프리센 소령과 이때 받은 공으로 청룡기 야구가 시작되었다(사진제공 TVN)

1946년, 해방 1주년을 맞아 열린 미국과 한국의 친선 야구경기에서 특별한 약속을 했다. 당시 한국 야구팀은 야구용품이 부족해 어려움을 겪고 있었는데, 미국 측에서 한점(야구공 10다스, 당시 서울집 두채 값 )이라도 내면 야구공을 제공하겠다는 제안을 했던 것이다. 한국 팀은 절대 이길 수 없는 상황이였지만 예상을 깨고 미국 팀과 접전을 펼쳐 3점을 얻었고, 약속대로 야구공 30다스(360개, 약 9만원)를 받았다. 이 야구공 덕분에 한국은 첫 전국중등학교야구선수권대회(현, 청룡기)를 개최할 수 있게 되었고, 이는 한국 야구의 꿈나무들이 자라날 수 있었던 토대가 되었다. 특히 1970년대에는 고교 야구의 황금기로, 전 국민적인 관심을 받으며 야구 열기가 최고조에 달했다.

광주기아챔피언스필드에서 야구를 관람하는 관중과 야구장 전경(사진촬영 이창규)
2024년 기아타이거즈가 한국 정규시즌 압도적 우승과 열두 번째 한국시리즈까지 우승하고 기뻐하는 선수들 모습(사진제공 KBO)

1982년 한국 프로야구는 국민 정서와 여가 선용을 위함이지만 실제로는 3S(스포츠, 섹스, 스크린)정책의 정치적 의도와 기업들의 이해관계 속에서 출범한 KBO 리그는, 6개 구단으로 시작해 이제 10개 구단 체제로 변모했고,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큰 성장을 이뤘다. 40년이 넘는 역사 동안 수많은 스타 선수를 배출하고 다양한 기록을 경신하며 한국 야구의 위상을 높여왔다.
한국 야구는 굴곡진 역사 속에서도 끊임없이 성장하며 우리 국민의 자긍심으로 자리매김했다. 이제는 한국 야구 120년의 역사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보존하여 미래 세대에게 물려줌으로써 한국 야구가 더욱 발전하고 세계적인 스포츠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기아타이거즈를 응원하는 팬들의 모습과 챔피언스필드의 전경
광주기아챔피언스필드에서 기아타이거즈를 응원하는 팬들의 모습(사진촬영 김종서)

🔳 참고문헌

1. 이재국, ['최초 프로야구단' 6개 구단 이야기], 네이버 스포츠, 2022.

2. 싹 다 치워, [야구의 역사와 유래], 네이버블로그 모두 다 싹!!!, 2024.

3.최태성, [벌거벗은 한국사, 프로야구는 어떻게 천만 관중을 사로잡았나], TVN스토리,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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