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 충렬사(南海 忠烈祠), 이순신 장군의 충의와 넋을 기리는 사당

- 남해 충렬사는 순국 후 이순신 장군의 시신이 모셔졌던 곳에 세워진 사당이다
- 남해 충렬사는 충무공의 노량 앞바다를 지키고 있는 수호신의 사당이다

김오현 선임기자 승인 2024.10.18 11:42 | 최종 수정 2024.10.18 11:49 의견 0

​​​남해 충렬사 외삼문 전경(사진촬영 박승현)

남해 충렬사(南海 忠烈祠)는 경상남도 남해군 설천면에 있는 조선시대 임진왜란의 마지막 노량해전에서 장렬하게 전사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충의와 넋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고, 1973년 사적 제233호로 지정되어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았다. 아름다운 자연환경 속에 자리한 충렬사는 남해대교와 함께 남해 2경으로 매년 많은 사람들이 찾는 역사 탐방 명소이기도 하다.

​​​남해충렬사 앞의 표지석(아래 사진), 삼도통제사 이태상비(위좌 사진), 외삼문(위중 사진), 충민공비(위우 사진) 등의 모습

▶ 남해 충렬사(南海 忠烈祠)

종 목 사적
명 칭 남해 충렬사
지정일 1973. 06.11
소재지 경남 남해군 설천면 노량리 350번지

남해 충렬사(南海 忠烈祠)는 임진왜란이 끝나던 해 노량해전(露梁海戰)에서 순국한 충무공 이순신의 충의와 넋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사당으로 노량충렬사(露梁忠烈祠)라고도 한다. 통영(統營)의 충렬사(忠烈祠)와 함께 ‘충열(忠烈)’이란 현판을 처음부터 같이 사용해 왔으며 인조 때 지어졌다. 충무공이 전사한 후 그의 시신이 한 때 이곳에 모셔졌는데 인조 10년(1632년) 유림들이 옛 터에 작은 집을 짓고 제사를 지냈던 것이 최초의 사당이다. 충무공이 순국한지 60년이 되던 효종 9년(1658년)에 좁고 초라한 옛집을 헐고 새집을 지었다. 그 후 현종 4년(1663년)에 통영 충렬사(統營 忠烈祠)와 함께 임금이 내려준 현판을 받게 되었다. 이런 사실들을 기록한 충무이공묘비(忠武李公廟碑)가 사당 곁에 있으며, 비문은 현종 2년(1661년)에 송시열(宋時烈)이 썼고, 1663년에 박경지(朴敬祉) 등이 세운 것이다.

호국사찰 남해 역사의 산실인 화방사과 화엄사 부도전에 있는 자운스님의 부도, 이충무공전서의 거북선 도안의 모습(사진제공 네이버 검색)

옛날에는 이 사당 곁에 호충암(護忠庵)이란 암자가 있었는데, 화방사(花芳寺)의 승려 10명과 승장(僧將) 1명이 번갈아 와서 사당을 지켰다고 한다. 또한 공이 죽은 후 자운(慈雲)이란 승려가 공을 사모하여 쌀 수백섬을 싣고 와서 공을 위해서 수륙재를 지낸 것으로도 유명한데 자운(慈雲, 화엄사 승려로 충무공의 군사고문 역할을 하였으며, 거북선 제작에도 관여했다는 이야기가 있음)스님은 원래 충무공의 밑에 있던 승수군 대장이었다. 충렬사는 충무공의 노량 앞바다를 지키고 있는 수호신의 사당이라 할 수 있다.

경내에는 비각(碑閣)·내삼문(內三門)·외삼문(外三門)·관리사 등이 있고 사당 뒤의 정원에는 1598년(선조 31) 11월 19일 충무공이 노량 앞바다 전투에서 순국하자, 처음 이곳에 시신을 임시 묻었던 자리에 봉분(封墳)뿐인 가분묘(假墳墓)가 남아 있으며, 1948년 정인보(鄭寅普)가 쓴 충열사비(忠烈祠碑)가 있다. 1965년 당시 대통령 박정희(朴正熙)이 ‘충렬사(忠烈祠)’와 ‘보천욕일(補天浴日)’ 현판을 다시 썼다고 한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가묘 전경

▶ 관음포(觀音浦)

관음포(觀音浦)는 경상남도 남해군 고현면 북쪽 바닷가에 있는 포구이다. 일명 이락포(李落浦)로 불렀으며, 관음포(觀音浦)라는 지명이 언제부터 붙여졌는지 알 수 없으나 《고려사》에 의하면 고려 말 1383년 5월에 해도원수 정지장군(海道元帥 鄭地將軍)이 관음포(觀音浦)에서 왜선 17척을 격침한 대첩을 '남해관음포대첩(南海觀音浦大捷)'이라고 적고 있다. 지명유래는 불성지(佛聖地)의 의미가 담겨 있는 관음의 포구였기에 관음포(觀音浦)라는 지명이 붙여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관음포대첩(觀音浦大捷)은 왜구들이 고려 수군에 대한 두려움을 갖게 하였고, 세계 해전사에서 함포(艦砲)로 적을 물리친 최초의 전투라는 큰 의의를 지니고 있다.

비각과 보천욕일 현판(위 사진), 이순신 장군의 위폐를 모셔놓은 사당(아래 사진)

1598년 11월 18일~19일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三道水軍統制使 李舜臣)이 지휘한 노량 해전에서 왜구를 크게 물리친 격전지(激戰地)라는 큰 의의를 지니고 있다. 노량해전(露梁海戰)으로 더 잘 알려진 임진왜란의 마지막 격전지로 충무공 이순신이 순국한 곳이다. 선조 31년(1598년) 조선과 명나라의 수군이 도망가는 왜적들을 무찌르다 관음포(觀音浦) 앞바다에서 최후의 결전을 벌였다. 이 때 이순신 장군은 적의 탄환에 맞아 최후를 마쳤다. 이에 관음포(觀音浦) 앞바다는 이순신이 순국한 바다라는 뜻에서 '이락파(李落波)'라고도 부르며, 마주보는 해안에는 이락사(李落祠)가 있다. 그 후 순조 32년(1832년)에 왕명에 따라 제사를 지내는 단과 비, 비각을 세웠다. 1965년 큰 별이 바다에 떨어지다라는 뜻인 '대성운해(大星殞海)'와 '이락사(李落祠)'라는 액자를 경내에 걸었다. 이락사(李落祠)와 관음포(觀音浦) 앞바다는 임진왜란의 명장 이순신의 공로와 충의가 담긴 역사의 옛터일 뿐 아니라 전쟁극복의 현장이기도 하다.

남해 충렬사 내삼문의 전경
이순신장군의 5대 손인 이태상 삼도통제사가 재실공간으로 세운 청해루와 편액들...

아름다운 자연 속에 자리한 남해 충렬사는 노량해전에서 순국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리는 곳이다. 남해를 방문한다면 꼭 한번 들러, 이순신 장군의 숭고한 정신을 느끼고, 우리 민족의 위대한 역사를 되새겨 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 참고문헌

1. 신성민, [거북선 원형은'연선', 제안자는'자운대사], 현대불교, 2023.

2. 설나그네, [남해여행 3], 네이버블로그 설나그네의 여행&산행 이야기, 2024.

3. 최응천, [나만의 문화유산 해설사 자료], 국가유산청,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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