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 대한 여러 표현 중에 ‘돌아가셨다’는 말이 일반에 널리 사용된다. 즉 왔던 곳으로 되돌아갔다는 의미로서 죽음에 대한 분명한 통찰이 아닐까 싶다. 생로병사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모든 생명체에서 일어나는 변화이며, 우주의 법칙이다.
모든 생명체는 현재 자신이 인식하고 있는 자기라는 존재를 영원히 유지하려 하지만 결코 죽음을 벗어날 수 없다. 그러나 한 발짝만 물러나 생각해보면 태어남이 있어 죽음이 따르듯, 죽음은 태어남을 전제로 하는 게 아닐까. 이러한 변화의 연속은 결국 삶과 죽음은 본질에서 결코 다르지 않다는 생사일여(生死一如)로 귀결된다.
하지만 자연의 순리이자 법칙인 생사일여는 쉽게 동의를 얻지 못한다. 그래서 생사가 있다고 착각하는 단멸적관념은 사후세계를 산정한다. 소위 말하는 인간 탐욕의 극치 ‘영원한 생명과 무한한 풍요’의 천국과 불행의 극치인 ‘끔찍한 고통’의 지옥이다. 병원 등 의료사업이 날로 성장하고 있는 것을 보면 천국에 대한 확신 보다는 지옥의 불안이 더 큰 게 아닐까 우스운 생각을 해본다.
적어도 우리민족은 돌아가셨다는 말처럼 죽음에 대한 인식은 생사일여의 입장에 가까웠다고 본다. 당나라 때 편찬한 『隋書』 동이전에 따르면 “시작과 끝은 슬퍼 울지만 장례는 북을 울리고 춤을 추며 음악으로서 보낸다(初終哭泣 葬卽鼓舞作樂以 送之). 이후 『예기』에 바탕을 둔 조선은 축제형식의 장례식을 법으로 금하고 지방수령들에까지 그 책임을 물었다는 실록의 기사가 빈번하다.
《세종실록》 세종13년 8월 2일 갑오, 사헌부에서 아뢰기를,
“무식한 무리들이 요사스러운 말에 혹하여, 질병이나 초상이 있으면 즉시 야제(野祭)를 행하며, 이것이 아니면 이 빌미[祟]를 풀어낼 수 없다고 하여, 남녀가 떼를 지어 무당을 불러 모으고 술과 고기를 성대하게 차리며, 또는 중의 무리를 끌어 오고 불상(佛像)을 맞아들여, 향화(香花)와 다식(茶食)을 앞에 벌려 놓고는 노래와 춤과 범패(梵唄)가 서로 섞이어 울려서, 음란하고 요사스러우며 난잡하여 예절을 무너뜨리고 풍속을 상하는 일이 이보다 심함이 없사오니, 수령들로 하여금 엄하게 금하고 다스리되, 만일 범하는 자가 있으면 관리와 이(里)의 정장(正長)·색장(色掌) 등을 함께 그 죄를 다스리게 하옵소서”
그러나 장례를 하나의 축제로 승화시켰던 문화는 최근까지 남아 있었다. 진도다시래기(황해도 생여돋움, 안동의 대돋음, 남원의 대울림, 신안의 달밥애)가 그렇고 상여 뒤를 따르는 오방색 만장이 그렇다.
죽음을 슬픔이 아니라 만남과 헤어짐의 일상으로 이해했고, 갔으면 언젠가는 다시 오겠지 하는 바람과 믿음의 바탕은 형식의 문제를 삼았던 조선을 거치면서도 생명을 부지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죽음은 검은색 일변도의 온통 애도와 슬픔으로 가득한 예의 없는 예의로 변했다. 예의 없는 예의란 우리문화의 잣대가 아니라 국적이 불분명한 이상한 장례식이 되었다는 것이다.
4.19혁명 63주기, 수유리 4.19묘지를 찾았다.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 것은 ①희생자들에 대한 애도, ②그들의 정신을 높이 받들고 명예를 기림, ③그 정신을 이어 더 좋은 세상을 만들려는 각자의 다짐 등일 것이다. 그렇다면 죽음은 마지막 사라짐의 슬픔이 아니라 누구나 맞이하는 미래이며, 더 나은 내일의 희망이다.
우리선조들이 그랬던 것처럼 죽음의 본질에 다가서는 장례문화가 다시 부활되었으면 하는 가능성이 희박한 마음을 피력하며,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오방색 만장을 응용한 펼침막이 ‘4.19혁명기념’일 같은 국가행사에 걸렸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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