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의병활동의 거점 '창의소(쌍산의소)' 는 한말 최대 항일 의병 유적지

- 대동문화재지킴이지도사회 회원들 화순 쌍산 항일 의병유적지를 다녀오다 -

고경임 시민기자 승인 2023.04.29 05:29 | 최종 수정 2023.04.30 06:13 의견 0

국도29호선 화순에서 보성군 미력면 쪽으로 28km 가다보면 쌍봉사 이정표가 보인다. 이곳에서 쌍봉사까지 4km, 왼쪽에 쌍봉사가 보이고 오른쪽 농로길를 따라 구불구불 산길을 올라가면 항일 의병활동 유적지인 전라남도 화순군 이양면 증리 증동 마을에 도착한다. 중동 마을은 높이 580m인 계당산 아래에 있다. 계당산은 화순군 동북쪽으로부터 백아산, 모후산, 두봉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의 말단부, 동쪽으로는 전라남도 보성군 복내면과 접하고 있다. 의병활동하기 좋은 지리적 위치임을 알 수 있다.

화순 쌍산 항일의병 유적은 전라남도 화순 지역 출신의 양회일(梁會一)이 이끈 의병 부대의 창설지이자 주둔지로 1907년 양회일[?~1908]이 거병하고 의병 운동을 전개하였던 곳으로 ‘쌍산의소’라고 부른다. ‘쌍산의소’라 명한 이유는 계당산의 별칭이 쌍산이기 때문이다. 당시의 흔적이 거의 원형 그대로 남아 있다.

막사터에 앉아 한말 의병활동 이야기를 나누는 회원들

화순 쌍산 항일의병 유적은 이양면 쌍봉리의 양화일 순의비, 증리 증동 마을 안쪽의 호남 창의소 터, 남동쪽의 무기 제작소, 마을 뒤편의 의병 막사 터와 화약 원료인 유황 등을 보관했다는 유황굴로 구성되어 있다. 이 유적은 동네에서 구전으로 알려져 오다가 1991년 학계의 주목을 받았고, 1994년 전라남도 기념물 제153호로 지정되었다가 2007년 8월 3일 사적 제485호로 격상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사적으로 재지정되었다.

사적이 산중에 숨어있어 찾는 이가 드물긴 하지만 봄철에 답사하기에 안성맞춤인 곳이다.

지천에 얼레지가 고개숙여 의병들의 넋을 위로하고, 수줍은 진달래가 찾는이를 맞이하고, 의병들의 환생인 듯 제비꽃, 남산제비꽃, 각시붓꽃, 금붓꽃, 솜방방이, 이름모를 들꽃들이 기다리고 있다.

◆ 의병장 양회일의 행적을 기리는 순의비는 1948년에 전라남도 화순군 이양면 쌍봉리 쌍봉 마을에 건립하였다. 이곳에 순의비를 세운 것은 그가 이 마을 태생인 까닭이다. 그의 생가는 이 마을 안쪽인 전라남도 화순군 이양면 쌍봉리 404이며, 그의 묘소도 이 마을의 앞산에 위치해 있다. 비문은 대한 제국 시기의 학자인 김영한(金甯漢)[1878~1950]이 찬술했는데 양회일의 행적을 기록한 『행사 실기』에 실려 있던 것을 옮겨 새긴 것으로 행적을 간략히 소개하고 있다.

◆ 쌍봉사와 증리 가운데 마을을 잇는 도로 중간에서 동쪽으로 나 있는 길을 따라 1㎞쯤 오르면 증동 마을이 나오는데 호남 창의소 터는 이 마을 안에 있다. 마을은 현재 5호 가량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지만 한때는 30여 호에 달했다고 한다. 쌍산의소가 결성될 무렵에 마을은 의병 지휘부와 의병 숙소 등으로 이용됐다. 현재 민가로 사용 중인 전라남도 화순군 이양면 증리 60은 이백래(李白來) 의병 부대와 합세해 호남 창의소를 차렸던 장소로 알려져 있다.

의병장 행사 양회일 선생이 1906년 12월경 당시 이 집에 살고 있던 임노복을 찾아와 의병활동을 최초로 결의했던 곳으로 2006년 화순군에서 토지를 매입하고 결의장소인 민가를 복원하였다.

◆ 무기 제작소는 증동 마을 남동쪽 500m쯤 떨어진 전라남도 화순 이양면 증리 89에 있다. 높이 1m, 길이 7m의 축대가 남아 있는데 건물터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주변에는 철을 만드는 과정의 부산물인 슬래그(slag)가 널려 있다. 쌍산의소에서 자체적으로 무기를 제작했던 장소였을 것이다. 이에 필요한 철광석은 계당산 동쪽인 전라남도 보성군 복내면 화정동에서 조달했다고 한다.

숨은 골짜기에 무기제작소가 있다

◆ 유황굴은 마을에서 임도를 따라 약 2㎞, 걸어서 30분 정도의 거리, 증동 마을 북서쪽 산기슭인 전라남도 화순군 이양면 증리 산184 일대에 있다. 유황굴은 유황을 채굴했던 곳은 아니다. 화약의 원료인 유황을 보관했던 장소로 현재는 굴은 보이지 않고 흔적만 남아있다.

흔적만 남은 유황굴 앞엔 얼레지꽃만 가득하다

◆ 의병 막사터는 쌍산의소 시절에 의병들이 머물렀던 의병촌이다. 계곡이 끝나는 지점이라 유사시 포위당할 위험이 있으며 남쪽이 열려 노출되기 쉽고 터가 좁은 한계가 있어 증등 마을 뒷산에 별도의 숙소 및 훈련장을 꾸렸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 터는 계당산 북쪽으로 전라남도 화순군 이양면 증리 산12와 산13 일대이다. 산비탈과 임도를 1㎞가량 올라가면 ‘막터’, 혹은 ‘진터’로 불리는 자연석을 장방형으로 쌓은 흔적이 수십여 개 남아 있다. 상당한 고지임에도 옆에 개울을 끼고 있어 당시 의병들이 식수원으로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지석강의 발원지가 바로 이곳이다.

막사터 앞에서 한말 의병들이 외쳤을 만세를 외쳐본다

◆ 대한제국 시절 의병들은 유격 전술에 의존했던 까닭에 자주 이동을 해야 하는 특성이 있었다. 이 때문에 그들의 활동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유적을 찾기 어려운데 화순 쌍산 항일의병 유적은 당시의 실상을 보여주는 아주 드문 유적이라는 데 큰 의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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