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이라면 누구나 역사, 문화왜곡에 대해서 반감을 가진다. 이러한 일반의 정서와는 달리 왜곡의 문제는 쉽게 개선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대다수 국민들은 국가와 전문가들에 의해 정보를 제공받음으로 그 사실을 모르기 때문이다.
필자는 2020년부터 충남 예산군 대흥면 동서리 182 소재 <동서리 미륵불>이 망태할아버지로 둔갑되어 소개, 관리되고 있음을 문제 삼았고, 올해 4월 7일 본지에 “망태할아버지가 된 미륵불 이라는 기사를 올렸다.
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예산군은 <동서리 미륵불>을 ‘망태할아버지’라 왜곡하고 있는 마을주민과 『예산군지』의 기록에 따라 본래 소유사찰인 송림사(예산군지에는 일제 때 동서리로 옮겼다 적고 있음) 간에 해결하라는 식으로 한 발을 빼고 있다. 여기에 대해서 안내판이라도 바꾸라는 기자의 요구에 담당자는 쉽지 않다며 책임을 회피했다. 문화재관리의 담당부서와 전문학예사를 두고 있는 예산군에 ‘부서와 담당자의 역할이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와 유사한 사례는 충남 청양군 청양읍 학당리 240-16에도 있다. 청양교육지원청 앞, 대로 건너편 길옆에 다음과 같이 소개되고 있는 ‘임바위’이다.
-둥그런 바위에 사람 모양이 새겨져 있다고 해서 인바위라고도 하고 또는 임을 그리는 전설이 있다고 해서 임바위라고 부른다. 이 바위는 금실 좋고 열심히 살았던 한 부부가 백년해로 하지 못하고 남편이 일하러 갔다가 호랑이에게 물려 죽었는데, 그 사실을 모른채 부인은 남편을 한없이 기다리며 울다가 바위가 되었다는 애달픈 사연이 동네 사람들에 의해 전해 내려오고 있다. 그래서인지 이 바위를 자세히 보면 여인의 상반신이 새겨져 있는 마애불 모습을 하고 있다.-
『청양군지』에는 “교육청 입구 팽나무 아래 바위에 음각보살상이 터를 지키고 있는데 애틋한 부부의 사랑이야기가 담겨져 있다”고 적고 있다. 이를 근거로 2022년 6월 13일 청양군 ‘2022년 제2회 전통민속마을제 심의위원회’에서는 ‘예로부터 지켜온 고유의 전통민속마을제로 인정받아 청양읍 학당1리 임바위제 1곳을 신규로 지정했다고 한다.
여기에 대해 청양신문에 ‘임바위’로 검색해 보았다. 1997.04.11. △금실 좋았던 한 부부가 피치못 할 사정에 의해 백년해로하지 못한 애달픈 사랑얘기가 전해 내려오는 인바위(임바위)는 청양읍 학당리 청양교육청앞 도로변 팽나무아래에 있다. -둥그런 바위에 사람의 상반신이 음각되어 있는 인바위는 우리지방 사람들의 아름다운 심성, 인심과 풍습, 선인들의 생각을 대변하고 시대와 민중에 따라서 생각하고 꿈꾸는 것이 반영되는 문학의 원초적인 형태를 지켜온 전설의 현장으로 우리에게는 정신문화의 귀중한 유산이다.
2000.06.29△청양읍 학당리 청양교육청 건너편-팽나무 옆에 놓여진 ‘임바위’는 둥그런 형상에 상반신 여신상(마애불)이 음각으로 새겨져 있으나-임바위는 가난하지만 더할 수 없는 부부애로 살아가던 어느 부부의 애틋한 사랑이 전설로 전해져 오고 있는 지역의 향토유물로 향토문화재로서의 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2006.11.27. △한국향토설화연구회 서기석 회장은 “부부간의 애틋한 사랑을 담고 있는 임바위는 설화문학적 측면에서 그 가치가 높은 문화재로 평가되고 있다”
2010.08.16. △청양읍 송방리의 임바위. 오랜 옛날 넉넉지 못한 젊은 부부의 애틋한 사랑이 전설로 내려오고 있다. 산에 나무하러 갔던 남편을 기다리다 결국 호랑이 밥이 된 사실을 알고 젊은 아내가 슬픔에 못이겨 바위가 됐다는 전설이 있다. 한편에서는-청양 출신으로 한국향토설화연구회장을 맡고 있는 서기석 회장은 임바위의 설화를 백제 부흥군 때로 보고 있다. - 백제 부흥군 당시 정산 두륜윤성이 함락되자 많은 백제유민과 부흥군들이 한티재를 넘어 청양(당시 고랑부리)의 우산성을 중심으로 재결집, 전열을 정비했고 그 중심에는 복신 장군이 있어 무한천을 근거로 서북방 여러 성을 규합, 위세를 떨치게 된다. 청양의 남정네들 또한 거의 복신 장군의 휘하였다. 그러나 나당연합군의 위세에 우산성도 함락, 군사들은 최후의 항전을 치렀던 임존성(예산 대흥)으로 이동하게 됐다. 그때 비록 몸이 병신이 되어서라도 혹시나 돌아올 날을 애타게 기다리던 것이 고랑부리 여인네들이었다. 가슴 졸이던 고랑부리 골짝 골짝의 여인들이 하나, 둘 임존성이 멀리 보이는 길목인 이곳 아리고개 마루에 모여 들어 북쪽 하늘을 바라보며 더욱 애간장을 태웠다. 그 이후 언제인지도 모르게 아리고개 길목 한쪽에 전에 없던 바위가 한(恨)인 듯 북서쪽 하늘을 응시하는 간절한 몸짓으로 솟아났고, 그 이후 고랑부리(청양) 사람들은 그 바위를 임바위 또는 ‘인바위’라 부르게 됐다. 196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안적골(송방리의 옛 지명) 여인들은 일년에 한 번 이 바위에 제물을 차리고 치성을 올리며 명복을 빌었다고 한다.
2014.06.14. △청양읍 중앙로, 아리고개 한쪽에 있었던 이 바위가 어느 날엔가 이곳으로 옮겨져 있다.-남편과 자식과 오라비를 기다리는 백제 여인들의 애달픈 비원이 이 바위에 뭉쳐 있다 하여 임바위(인바위)라 부른다.-나당연합군에 맞서기 위해 떠나간 자식과 오라비와 남편을 기다리며 아리고개 산마루에 모여 매일같이 고개 넘어 돌아올 가족들의 안녕과 무사귀환을 빌었으며, 이제나 저제나 승리의 깃발을 휘날리며 요란한 말발굽소리로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던 고랑부리현(청양)의 여인들. 행여나 어느 깊은 산골에 살아 숨어 있다 야밤을 타 돌아오지나 않을까, 아리고개 언덕 황톳길을 밟고 엉금엉금 기어 오지나 않을까, 목을 길게 늘여 북쪽 하늘만 바라보던 백제 유민들의 한과 원을 고스란히 돌 속에 묻은 채 기다림으로 애태우던 고랑부리 골짝 골짝의 소박한 여인들의 가슴이며 심장이 서려있는 바위다.-백제인의 한이 묻어있는 망부석 임바위는, 위와 같이 증거는 없으나 구전으로 내려오는 몇 개의 얘깃거리를 지니고 있다. 6‧25사변 때는 바위 속에서 나온 태극띠를 두른 젊은이들이 국군 30여명을 살렸다는 일화와, 일하러 간 남편이 호랑이에게 물려 죽은 줄도 모른 채 금실 좋았던 부인은 남편을 한없이 기다리다 바위가 되었다는 설화 등이 전해져 오고 있다.
2020.08.28. 학당리 주민들 임바위 첫 안녕제-백제인의 한이 묻어있는 망부석 임바위는 둥그런 바위에 사람 모양이 새겨져 있다 해서 인바위 또는 임을 그리는 전설이 있다 해서 임바위라고 부른다. 금실 좋고 열심히 살던 한 부부의 이야기로 일하러 간 남편이 호랑이에게 물려 죽은 줄도 모른 채 한없이 기다리며 울다가 바위가 된 아내의 애달픈 사연이 구설로 전해 내려오고 있다. 실제로 바위에는 여인의 상반신이 새겨져 있는 마애불의 모습이 형상화 돼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2022년부터 마을 제를 지낸다.
마을제를 기획한 청양군 ‘농촌공동체과 공동체 기획팀’ 담당자에게 전화로 물어 보았다. 담당자는 “마을 주민들의 화합을 위해 기획했고, 심사위원들이 선정했다”는 원론적인 답변으로 일관하였다. 여기에 대해 군지와 안내판 등에 ‘음각마애불’ ‘부처바위’ 등으로 표현되고 있고, 실재로도 불상을 조각한 것이 맞다. 따라서 사람이 바위가 되었다는 전설도 나름의 가치가 있다. 하지만 분명하게 새겨져 있는 불상에 대해서 고증을 하여 문화재를 바르게 알리는 것도 중요하지 않겠나 했더니 개선하겠다는 의지보다는 통상적인 답변에 그쳤다.
이처럼 <예산 동서리 미륵>이 ‘망태 할아버지’가 되고, 새김이 분명한 <청양 마애불>이 ‘임바위’가 되는 두 사례 모두 지자체가 주도한 사업들로 문화재가 왜곡된 것이다.
시간대 별로 ‘청양신문’의 기사를 인용한 것은 지역의 문화재가 어떻게 왜곡되어 가는가를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이러한 사례들은 전국에 비일비재 하다고 본다. 따라서 지자체들은 문화재와 관련된 사업을 할 때 당해 문화재를 철저히 고증하여 사실을 밝힌 다음 전설은 전설대로 거기에 맞는 스토리텔링을 해야 한다.
백번을 양보 하더라도 ‘임바위’ 전설은 백제부흥운동에서 부부금슬 이야기로 변질되어 오히려 가치를 떨어 뜨리는 실패한 스토리텔링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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