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호(九尾狐)의 진실
예전에 아리랑TV에서 모 포털사이트의 네티즌들이 뽑은 가장 무서운 귀신 Best Five에 대한 해설을 부탁한 일이 있었다. 네티즌이 가장 무서운 귀신으로 처녀귀신을 뽑았으며 다음으로 구미호(九尾狐)였다. 이어서 저승사자, 삼신할머니, 서낭당귀신이었다.
우리는 구미호(九尾狐)에 대하여 막연하게 꼬리가 아홉 개 달린 여우로 사람을 홀리고, 무덤을 파헤쳐 송장에서 간을 빼 먹는 무시무시한 여우귀신 정도로 알고 있을 뿐이다. 또 그런 내용을 주제로 한 구미호(九尾狐)란 드라마도 방영된 적도 있다.
그러면 우리는 구미호에 대하여 얼마나 알고 있을까?
과연 구미호는 실제 존재했던 동물이며, 우리 조상들은 구미호를 어떻게 생각하였을까 살펴볼 필요가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구미호는 실제로 존재했던 동물로 기록에 나타나며, 많은 기록에서 사람에게 해를 입히는 여우가 아니라 상서로운 동물로서 나타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렇게 상서로움을 나타내는 여우가 언제 꼬리가 아홉 개 달린 여우귀신이 되었을까?
여우를 족칭으로 처음 사용한 사람은 오회라고 한다. 오회는 순임금과 사촌이자 동서로 제곡고신의 딸인 아황과 요의 딸 여영의 공동남편이었다고 문자학회에서 말한다.
오회가 아황과 결혼하고 난 뒤 얻은 호정(狐鼎)에 새겨진 여우모양의 금문에서 여우 ‘호(狐)’자가 탄생하게 된 것이라고 금문학자들은 주장한다.
여우는 영악하고 꼬리가 많은 영물로 여겼다. 또 여우는 용의 여의주 같은 구슬을 가지고 있는데, 그 구슬을 빼먹고 위대한 영웅이 되었다는 이야기들이 있다.
조선시대 유명한 풍수가인 <이의신>도 여우와 입맞춤할 때 입 속으로 넣어준 구슬을 삼켰다고 한다. 구슬을 삼키는 순간 하늘을 보지 못하고 땅을 보았기 때문에 지리에 능통한 풍수가 되었다고 한다.
그 외 정철, 이황, 송시열 등이 여우의 구슬을 빼먹고 훌륭한 학자가 되었다고 전한다.
여기서 여우의 구슬은 바로 용의 여의주와 같은 신기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고 여긴 것이다. 용의 여의주와 같은 능력이 있으므로 여우가 사람으로 변신할 수가 있으며 그 구슬을 먹은 사람은 아주 뛰어난 영웅이 되는 것으로 여겼다.
여우는 까마귀와 더불어 동이족의 대표적인 동물이었다.
늙은 어미를 봉양하는 새라고 하여 까마귀를 반포조(反哺鳥)라고 칭송했듯이, 여우 역시 죽을 때 자기가 왔던 곳으로 고개를 돌리고 죽는다고 하여, 근본을 잃지 않는 동물로 신령스럽게 여겨왔다.
허신(許愼)의 <설문(說文)>에도 역시, 「여우에게는 세 가지 덕(德)이 있는데 색깔이 중화(中和)인 점과 앞은 작고 뒤는 큰 것이 그것이다. 죽을 때 수구(首丘)를 한다.」라고 하여 여우를 긍정적인 이미지의 동물로 표현하고 있다.
중국 당나라의 구양순(歐陽詢)이 편찬한 <예문유취(藝文類聚)>에서, 임금의 인정이 하늘에 감응되어 나타난 길한 조짐을 그린 <(서응도瑞應圖)>의 설명으로 「육합(六合), 하늘과 땅과 동서남북)이 하나로 되면 구미호가 나타난다.」라고 되어 있다.
송나라 태종 때 만들어진 중국의 역대 설화집인 <태평광기(太平廣記)/서응편(瑞應編)>에 여우(구미호)가 신이 되면 사람을 잡아먹는 속성을 잃어버린다고 하였다.
또 「구미호는 신성한 동물이다. 몸체는 적색이고 네 개의 다리에 아홉 개의 꼬리가 달려 있다. 청구에 출현한다. 구미호를 먹으면 요괴나 독충을 피할 수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오월춘추월왕무여외전(吳越春秋越王無余外傳)>을 보면,
「아홉 개 달린 구미호를 우왕(禹王)이 아내로 맞이하였는데 그 이름이 여교(女矯) 라고 하였다.」는 기록도 있다.
<규원사화 단군기> 2세 부루(夫婁) 단군 편을 보면,
「이 때 신령스러운 짐승이 청구(靑丘)에 나타났는데, 털은 밝고 희고 꼬리가 아홉 개인 짐승이 서책(書冊)을 입에 물고 상서(祥瑞)함을 드러내는지라, 이에 임금께 글을 지어 그 상서로움을 아뢰니, 고시씨에게 상을 내리고 음악을 연주하여 나라 안을 모두 기쁘게 하며 ‘조천무(朝天舞)’를 만들어 추게 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 제17세 여을(余乙) 단군 시대에도,
「이상한 짐승이 태백산(太白山) 남쪽에 나타났는데, 꼬리는 아홉이며 털은 흰데 늑대 같았으나 물건을 해치지는 않았다. 이 해에 제후들을 크게 모아 놓고 진번후(眞番侯)에게 상을 주었다.」란 기록이 있듯이 구미호가 나타나면 상서로운 징조라고 하여 기뻐하고 잔치를 벌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산해경/대황동경>에도 구미호 이야기가 있다.
「청구국(靑丘國) 있는데 꼬리가 아홉 달린 여우가 산다.』라고 되어 있으며, 곽박의 주(注)에는 “호(狐)는 세상이 태평하면 출현하여 상서(祥瑞)로움을 보인다는 여우”」라고 하였다.
서왕모(西王母)는 중국 신화에 나오는 불사약을 가진 신녀(神女)다. 우리의 마고를 패러디한 중국 신으로 곤륜산 요지에 산다고 한다. 서왕모를 그린 중국 사천성에 있는 전각화를 보면, 동쪽, 즉 좌청룡 자리에 구미호 그림이 새겨져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면 중국에서도 동이의 영향으로 구미호를 상서로운 동물로 여겼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상서로운 동물로 여겼던 구미호가 후대에 와서 아홉 개의 꼬리 덕분에 자손의 번창을 상징하는 동물로 격하되더니만 급기야 귀신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동이가 중원의 중심세력에서 밀려나면서 하화족(夏華族)에 의하여 동이의 정체성이 말살되고 동이의 정체성은 하화족의 정체성으로 왜곡되면서 민족을 상징하는 동물들도 변질 왜곡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 결과 상서로운 동물로 여겼던 구미호는 귀신으로 왜곡되었다.
<산해경/남산경>에서는 「청구산(靑丘山)이라는 곳이 있는데, 이곳에 어떤 짐승은 생김새가 여우 같은데 아홉 개의 꼬리가 있으며 그 소리는 마치 어린애 같고 사람을 잘 잡아먹는다.」라고 부정적인 이미지로 기록된 것을 보면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여기서 청구란 바로 치우천왕이 신시를 열었던 곳으로, 배달나라의 수도였다.
구미호(九尾狐)란 꼬리가 아홉 개 달린 여우를 말하는데 이것은 구황족(九皇族)으로 불렀던 동이족을 나타낸 말이라 추측한다. 즉 구황족(九皇族)은 구한족(九桓族)으로 구이(九夷)를 나타내는 말이다.
그 당시 구이족이 더 넓은 중원에서 한번 움직이면 천지가 움직였다고 한다. 이런 구이족의 기세에 눌려 숨도 제대로 쉬어 보지 못한 하화족(夏華族)이 주(周)나라를 건국하고부터다. 동이족을 중원의 중심에서 밀어내면서 구이족에 대한 흔적을 지우고, 구이족의 전통문화를 한족 문화로 바꾸기 위하여 시작된 역사와 문화의 왜곡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중국의 역사 왜곡은 벌써 수 천 년 전부터 시작되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동북공정으로 시끄럽던 지난 시간이 어제 같은데 우리는 벌써 까맣게 잊어 버리고 있다. 구미호가 꼬리가 아홉 개인 여우로 사람을 홀리고, 무덤을 파헤쳐 간을 빼먹는 사악한 여우라고 알고 있는 지금의 현실이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중국 후한(後漢)시대 반고(班固:32∼92)가 편찬한 경서(經書)인 <백호통의(白虎通義)>를 보면 「임금의 덕이 지극하면 백성은 물론 새나 짐승에까지 미치게 되어 구미호(九尾狐)가 출현한다.」고 하였다.
이렇게 상서로운 동물이 어쩌다 이렇게 귀신으로 전락하였는지 상서로운 동물인 구미호에게 죄스러움을 느껴야 한다.
대한민국은 언제 대통령의 덕이 지극하여 구미호가 다시 나타날 수 있을지, 부디 구미호가 나타나 온 나라가 대통령의 덕을 칭송하고 잔치를 벌이는 날이 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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