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시루에 꽂는 서리화의 의미
만신들이 굿을 할 때 반드시 떡시루에 서리화를 꽂는다. 서리화라는 명칭은 나뭇가지에 서리가 내린 것처럼 생겼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그러면 서리화는 단순히 굿상을 아름답게 꾸미고, 신령들이 강림하는 통로인 꽃의 기능만 하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
옛날 문헌들을 보면 제사터가 되는 땅에 당(幢/아래로 늘어뜨린 긴 깃발)을 꽂았다고 한다. 전국 고찰에는 높다란 철심이 박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당(幢)을 세운 흔적으로 불교에서는 당간지주라고 불렀다.
나라의 중심이 되는 곳을 부도(符道)라 했으며 그곳에 단을 쌓은 것을 <천부단>이라고 하였으며, 이곳은 성역으로 신시(神市)라 불렀다.
신시에서 하늘에 제사 지낼 때 반드시 세우는 깃발이 모(旄)다. 이 모는 신이 하강하는 통로로 다른 말로 신대(神坮)라고 하는데, 이 신대를 세우는 사람이 제사장 겸 통치자들이다.
신대(神坮)의 기원은 <마리구> <모리구>에서 나온 것으로 모구(旄丘)가 된다.
마리구의 ‘마麻’는 삼신을 뜻하고, ‘리氂’는 쇠꼬리를 뜻하고, ‘구丘’는 언덕 또는 혈구(구멍)을 뜻한다. <마리구>를 풀이하면 “삼신의 가르침을 받기 위하여 혈구에 세우는 쇠꼬리”란 뜻이 된다. 그러면 떡시루에 꽂는 서리화는 단순히 꽃이 가지는 의미 이상으로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
신라에 불교가 들어올 때 큰 역할을 한 사람은 신라 최초의 불교 신자인 모례(毛禮)로 고구려 승려 묵호자를 3년 동안 굴을 파서 숨겨준 여인이다. 그녀의 이름, 모례(毛禮)를 풀이하면 소꼬리 들고 예를 표한다는 의미로 소꼬리를 들고 춤을 춘 무당이었을 것으로 추측한다.
『산해경』에 흰털이 난 소를 모우(旄牛)라고 하며 모우의 꼬리를 모(旄)라고 하였다.
『강희자전』 ‘旄旄牛尾 舞者所持以指麾 모모우미 무자소지이지휘’
모는 희고 털이 긴 소의 꼬리다. 춤을 추는 자가 쥐고 부르며 가리킨다.
즉 털이 긴 흰 소의 꼬리를 쥐고 흔들면서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는 말이다. 이렇게 쇠꼬리를 쥐고 흔들면서 하늘을 향해 춤을 추었다.
그리고 하늘의 뜻을 깨우쳐 사람들에게 알린 것이다. 이러한 의식을 무천(舞天) 또는 무무(巫舞)라 할 수 있으며 오늘날의 굿이다.
이 기록은 한웅천왕·단군왕검을 비롯한 고대국가 제사장들은 모우를 쥐고 하늘에 제사를 지내므로 자신의 통치를 정당화하고 위치를 굳건히 했다고 볼 수 있다.
그 당시 제사장인 무당이 쥐고 하늘을 향해 신을 청하던 모(旄)는 오늘날 풍물패 우두머리 전립의 상모(上旄)가 되었다. 상모란 모자 꼭대기에 달린 쇠꼬리라는 뜻이다. 풍물이란 풍이족의 문물을 줄인 말로, 풍이족인 한인천제를 따르는 무리가 풍물패다.
그러면 떡시루에 서리화를 꽂는 것은, 나라의 중심인 부도에 세워진 천부단에 모(旄)를 꽂는다는 의미가 있다. ‘서리’란 말은 ‘세우다’는 말, 즉 ‘설’이 풀어진 말이다.
우리가 ‘설날’이라 할 때 ‘설’은 바로 양(봄)의 기운을 바로 세우는 날이란 뜻이다. 설을 전후하여 반드시 입춘이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서리화를 꽂은 떡시루는 나라의 국경을 의미하고, 팥고물은 백성 또는 벽사의 의미를, 떡을 세 켜로 찌는 것은 삼신 또는 삼조선을 의미하는 것이다.
떡시루 한가운데 모(旄)의 상징인 서리화를 꽂으므로 삼신의 가르침을 바로 세운다는 의미가 되는 것이다. 또 서리화를 꽂은 무당은 제사장으로 지위를 확고히 하며 굿을 지배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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