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의 역사와 함께 한 광주천
- 광주문화유산지킴이 회원과 시민의 2024년 첫 지킴이 활동-
-시민과 함께 광주천의 역사를 알아보다-
-2023년 9월 20일 중건 희경루-
고경임 시민기자
승인
2024.01.15 07:35 | 최종 수정 2024.01.15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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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5월 17일 ‘문화재’ 란 용어가 ‘국가유산’으로 바뀐다. 이에 1월부터 ‘대동문화재지킴이지도사회’도 ‘광주문화유산지킴이‘로 단체명을 변경하여 운영한다. 명칭변경 후 첫번째 활동을 광주문화유산지킴이로서 광주의 역사 현장과 함께한 광주천에서 시작하였다.
회원과 시민 35명은 2023년 9월 20일에 중건한 희경루에서 집결하여 석서정 아래 천변 자전거 도로 겸 산책길을 따라 박미경 회원(문화재지킴이지도사)의 광주천 역사이야기를 들으며 환경정화활동을 실시하였다. 함께 참여한 시민들은 광주에 살면서 광주천에 담긴 이야기가 생소하다고 했다. 우리 문화유산지킴이가 이런 활동을 통하여 홍보해야 할 과제라고 생각한다.
광주천은 무등산 장불재 아래 800m 지점에 위치한 샘골에서 발원하여, 무등산 줄기와 광주 시내를 거쳐 영산강에 합류하는 국가하천으로 총 길이는 약 24.4㎞. 옛 기록에 의하면 광주천은 건천(乾川), 조탄(棗灘) 등으로 불렸다. 또 상류는 금계(金溪), 하류는 대강(大江), 한강(漢江)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다.
향토사학자 박선홍에 의하면 조선시대 문헌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이름은 '조탄강'이라고 한다. 조탄보라는 제방의 이름도 여기에서 유래한다. 제방을 쌓기 전, 광주천은 꼬불꼬불 99곡을 이루었으며 강폭이 지금의 5배 이상이었다. 광주천변의 드넓은 하천부지는 시민들의 놀이터였고 빨래터였다. 추석이나 정월 보름이면 사람들은 하천부지 백사장에서 줄다리기를 했고, 불놀이와 농악놀이를 했다. 부녀자들은 빨래를 했으며 아이들은 멱을 감았다. 강변 백사장에 '말시바이(곡마단)'의 천막이 들어서면 트럼펫의 구슬픈 가락이 온 동네 사람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감쌌다고 한다. 그렇다면 '광주천'이라는 이름은 언제부터 사용이 된 것일까? 일제는 1913년부터 1917년까지 전국 주요하천 12개를 조사한다. 이 과정에서 제각각 다른 이름을 갖고 있던 전국 강들의 명칭을 각각 하나로 정리한다. 조선총독부는 조탄강을 '광주를 지나는 강'이니 '광주천'으로 부르기로 정한다. 1916년 6월 7일 '광주천'이라는 이름이 정식 기재된다.
광주천이 일군 드넓은 범람원, 취수원이자 해자로서의 기능을 했던 하천으로 지난 100여년간 광주 근대사(3・1운동, 1929년 학생독립운동, 4・19, 광주 최초의 공업단지, 5・18 등)의 공간이 광주천과 함께했다.
광주천의 옛모습을 지금은 볼 수 없다. 직강화사업으로 강폭이 좁아지고 수량도 줄어 폭이 넓고 수량이 풍부했던 광주천은 일제의 치수 중심 하천관리 정책으로 직강화되기 시작한다. 일제는 1926년부터 3년에 걸쳐 광주천을 굴착한 다음, 제방을 쌓는다. 광주천을 직강화하는 정비사업이 시행된 뒤인 1936년에는 전 구간에 걸쳐 광주천 개수공사가 실시됐다. 광주천 직강화 사업과 함께 사라진 또 하나의 풍경은 북구 유동과 임동 일대에 있던 '유림숲'이다. 광주천의 범람을 막기 위해 조성됐다는 이 유림숲은 모두 벌목이 됐다. 수령 350년 이상의 아름드리나무가 모두 사라졌다.
1970년대에는 광주천 주요 지류를 덮는 복개사업이 본격화된다. 양동복개상가 근처의 부분복개, 87년 경양지천 복개에 이어 1988년에는 천변주차장을 만들었고, 천변도로를 4차로로 차도와 보도를 만들었다. 1991년 동계천 복개, 1992년 서방천 복개, 1994년 극락천 복개에 이어 1997년 용봉천 복개까지 이뤄진다. 그 결과 광주천의 주요 지류들은 하수구로 전락하고 만다. 복개된 하천 위는 도로가 되거나 시장이 된다. 주요 지류가 하수구가 되고 도시인구가 증가하면서 오염은 가속화된다. 광주천의 큰 강폭은 옛 추억이 되고 거의 모든 구간이 개울 수준의 좁은 강으로 바뀐다.
광주천의 오염이 심해짐에 따라 광주시는 자연형 하천으로 광주천을 되돌리기 위한 조치에 나섰다. 1급수인 주암호 원수를 공급해 수량을 늘이고 수질을 개선하려는 사업을 시작했다. 환경운동단체를 중심으로 한 시민들의 광주천 살리기 운동도 꾸준히 계속되어왔다. 옛 광주천의 복원은 요원한 일이지만 강을 살리려는 노력들은 일부 수질개선과 천변 미화 등의 성과를 거뒀다. 1970년대 광주천 원지교 아래서 물놀이 하던 모습을 이제 여름철이면 주암호 원수를 끌어와 소태역 근처 광주천에서 볼 수 있다. 한강변에서 서울의 어린이가 물놀이 하듯 광주도 더욱 활성화 되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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