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에 가면 금척(金尺)설화가 있다

-경주의 문화유산을 찾아 떠난 여행에서 만난 금척설화-
-금척설화를 품은 금척리 고분군-

고경임 시민기자 승인 2024.01.22 07:46 의견 1

가족과 주말여행으로 오랜만에 경주를 찾아 첫날 저녁 동궁과 월지에서 가까운 곳에 숙소를 정했다. 숙소에 들어서자 제일 먼저 보이는 것은 빨간색 표지에 금척(金尺)이란 글씨가 가득 채워진 책이었다. 궁금증에 주인장 허락도 없이 책을 손에 들었다.

금척은 경주시에서 발간한 책으로 금척에 대한 설화를 담고 있다. 신라 왕이 선인으로부터 황금으로 만든 자를 하나 얻었는데 사람이 죽거나 병들었을 때 이 자로 몸을 재면 죽은 사람은 살아나고 병든 사람도 당장 나았으므로 나라의 보물로 삼았다고 한다. 그런데 중국에서 이 소문을 듣고 사신을 보내 금척을 구하려고 시도하였다. 이에 신라 왕은 금척을 내어주지 않으려고 산을 30여 개나 만들어 이곳에 금척을 감추었다고 한다. 설화 내용은 조선 현종 당시 경주 부윤으로 재직 중이던 민주면이란 관리가 경주지역 일대에 전해지던 작자 미상의 「동경지」 란 책을 수정・증보해서 간행한 「동경잡기」에 전해지고 있다.

경주시청에서 발간한 책자 '금척'

◆금척은 신라뿐만 아니라 조선왕조 「태조실록」 등 여러 문헌에도 등장하는데 조선 태조 이성계에 의한 왕조 창건의 정당성을 미화하고 정당화하기 위해 창출된 내용으로 널리 퍼져 조선 건국과 관련한 금척이야기는 성종의 명으로 성현이 주도해 1493년 편찬한 「악학궤범」에 전한다. 이에 따르면 몽금척(夢金尺)이란 이름으로 궁중에서 행사가 벌어질 때 연출된 무용의 한 악장으로 자리 잡기까지 하였다고 한다.

◆경주에서 영천 방면으로 향하는 국도를 따라가다 보면 건천읍 다다르기 전 도로 양편에 산재한 고분군을 만나게 된다. 이곳이 경주시 건천읍 금척리 고분군이다.

경주 금척리 고분군


◆ 금척설화에서 금척원이란 지명의 유래를 보면 금척원의 ‘원’은 역원(驛院)이라는 표현에서 드러나듯 역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지방관의 현지 부임을 비롯한 공문서 전달과 교환 등 중앙과 지방간의 내왕을 맡은 담당자들에게 마필(馬匹)을 공급하던 곳이 역이며 그에 딸려서 그들의 숙식을 비롯한 제반 편의를 제공하던 공공의 숙소를 원이라고 불렀다. 금척원은 역없이 원만 운영하던 조그마한 규모였거나 아니면 사적으로 운영하는 숙소였는지 모르겠다. 여하튼 금척원은 금척이란 지명에서 유래한 사실만은 확실하다. 그렇다면 금척이란 지명은 금척리 고분군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설화에서처럼 금척을 감추었던 것에서 유래했다고 볼 수 있다.

◆ 금척리 고분군은 대릉원과 같은 시기인 5세기경 조성되었고 적석목곽분에 부장 유물도 금제 귀걸이, 곡옥이 달려 있는 목걸이, 은으로 만든 허리띠 등이다. 규모나 질적 수준은 대릉원고분군에 미치지 못하지만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 금척리 고분군을 제외하고는 지방에 비슷한 양상을 보이는 곳은 없다. 대릉원과 금척고분은 그 나름의 상당한 독자성을 갖고 있는 집단으로서 상호 치열하게 정치적으로 경쟁하던 관계였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 금척은 글자 그대로 황금을 소재로 해서 만들어진 자를 말한다. 길이, 부피 무게를 나타내는 이른바 도량형 (度量衡) 가운데서도 가장 기본이었다. 그래서 모든 것의 기준이 된다는 의미를 지닌 ‘척도(尺度)’라는 단어도 만들어졌다. 자는 단순히 길이를 재는 단위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은 물론 일체의 경제행위와도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있다. 토지를 비롯한 모든 물품의 크기를 재어 세금 부과 등의 기준으로도 쓰이기 때문이다. 이 때 균등한 도량형이 필요해서 크기가 쉽게 변화하지 않고 조작이 불가하도록 금동이나 철 등 단단한 금속을 소재로 자를 만들었다. 삼국시대 및 통일신라의 자들은 모두 나무로 된 것들인데, 중앙정부에서 기준이 되는 표준척을 단단한 금속으로 만들어 각급 관청에 배포하면 그를 모방해서 나무로 만들어 사용했을 것이다.

금척 모형

금척은 희소성으로 금척이 갖는 위상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신라가 황금의 나라였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금척의 존재는 당연한 일로 보인다.


참고문헌: ‘금척’ 경주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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