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義)가 숨 쉬고 있는 광주공원

국가유산지킴이지도사들 찾고 알고 닦기하기

고경임 시민기자 승인 2024.02.05 08:12 의견 0

1월 활동에 이어 2월에도 ‘광주문화유산지킴이‘는 시민참여자와 함께 40 여명이 광주공원을 찾았다. 새해 첫 번째 절기 입춘날의 지킴이 활동, 비소식이 있었는데 다행히 비는 없고 포근한 날씨에 활동을 순조롭게 이루어졌다.

◆ 광주공원 역사 현장을 찾은 시민과 국가유산지킴이지도사들

참여한 시민들에게 ’문화재‘란 명칭이 5월 17일부터 ‘국가유산‘으로 변경된다는 이야기를 시작으로 국가유산지킴이 활동에 대한 이야기, 위촉교육에 대한 이야기, 활동 시 주의사항 등을 안내하고 2팀으로 나누어 지도사의 광주공원의 역사이야기와 더불어 정화활동을 실시하였다.

활동안내(사진 김낙현)

1팀은 성거사지오층석탑-심남일의병장순절비-용아와 영랑 시비-현충탑-사적비군-광주향교-사마재터-희경루 순으로 2팀은 광주향교-사적비군-현충탑-용아와 영랑 시비-심남일의병장순절비-성거사지오층석탑-희경루 순으로 진행되었다.

성거사지오층석탑, 희경루, 현충탑에서(사진 김낙현)

◆ 일제강점기 광주공원

을사늑약 체결되고 1906년 일제는 사직산과 성거산을 점령하고 포대를 설치하고 1908년에는 한말 호남 의병과의 전투 중에 죽은 일본 병사를 애도한다며 현충탑을 세운다. 광주인들의 지킴이였던 거북 머리 위에 일제에 저항했던 호남 의병들 대신 일본군을 위한 현충탑의 건립은 만행이 아닐 수 없다.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일제는 성거산에 공원을 조성하면서 1913년 자신들의 개국시조인 천조대신을 받드는 신사를 짓는다. 광주공원 정상, 지금의 현충탑 자리였다. 신사로 인해 조선인이 겪었던 가장 큰 고역은 참배였다. 특히 많은 기독교인들이 종교적 이유로 참배를 거부했고, 숭일·수피아 학교는 문을 닫는 수난도 겪는다. 1929년 11월 3일 광주학생독립운동이 일어났던 날도 일제는 메이지 왕의 생일이라고 해서 조선 학생들의 신사 참배를 강요했다.

◆ 의가 숨 쉬는 광주공원

광주공원은 일제의 잔재만이 남아 있는 공간은 아니다. 그곳은 주권을 찾기 위한 몸부림의 현장이었고, 민주주의를 지켜내기 위한 현장이기도 했다. 광주를 포함한 전라도는 한말 최대 의병항쟁지로 의로움의 고장, 의향이라 불린다. 광주향교는 1896년 기우만 의병부대의 집결지였으며, 광주천 서천교 밑은 호남창의회맹소 대장 기삼연 의병장이 처형된 장소였다. 어등산은 나주출신 김태원 의병장과 광주 출신 조경환 의병장의 순국지이고, 김원국 의병장이 체포된 곳이다. 31사단 뒷산인 삼각산은 양진여 의병 부대의 거병지다. 또한 광주는 3・15 부정선거에 항거한 전국 최초 시위지로 4・19 혁명의 단초가 된다. 그리고 광주공원은 5・18 민주화운동 당시 시민군의 훈련장이자 편성지로 이곳 시민회관이 시민군의 본부였다.

◆ 광주공원에 서려있는 의향의 자취

광주공원에서 의향의 자취는 쉽게 찾을 수 있다. 1907년 기삼연의 호남창의회맹소가 해체되자 1908년 잔여 병력을 모아 대장이 된 후 함평을 근거지로 나주, 영암, 무안, 강진 등 전남 서남부 지역을 장악하며 일제 및 일제의 앞잡이를 응징했던 한말 의병장 심남일의병장순절비, 서울, 부산과 더불어 4・19 혁명 전국 3대 발상지 중 하나인 광주를 기리기 위한 4・19 의거 영령추모비, 4・19 문화원, 아름다운 시어로 시대의 아픔을 노래한 용아와 영랑의 쌍둥이 시비, 5・18 당시 "나는 이 병든 역사를 위해 갑니다."라는 일기를 남기고 도청으로 향하여 도청에서 숨을 거둔 신광교회 목사의 아들 류동운(당시 20세)의 작은 비, 5・18 사적지 표지석이 서 있다

사적비군, 거북머리부근, 사마재터, 심남일의병장순절비(사진 박정세)

◆ 활동마무리

해설이 있는 지킴이 활동을 마무리하며 참여자들의 소감을 듣는 시간을 가졌다.

시민 참여자는 국가유산에 대한 해설을 들으며 줍깅도 하니 유익한 시간이었다 광주에 오래 거주하면서도 광주공원에 문화유산이 있었다는 걸 처음 알게 되어 보람되고 뿌듯하다, 활동을 통해 국가유산의 가치를 알고 소중하게 보존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등 활동에 만족해했으며 다음 활동도 참여하겠다고 하였다.

또한 70년대 말 광주공원에 유치원이 있었다는 사실을 그 시절 실제 이곳 유치원에 다녔던 시민의 이야기를 듣고 알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이형만 지도사는 희경루 삼행시를 멋스럽게 읊었다.

희경(喜慶)은 함희상경(咸喜相慶) 다 좋아

경사는 광주복호 이름이요

루대망실 백수년에 복원되니 희경일세

참여자들의 소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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